* 본 글은 사실을 기반으로 쓰였지만 사생활이 노출되는 부분은 각색되었습니다.
B는 지금까지 만나본 학생들 중 가장 영어를 잘한다. 물론 영어 말하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읽기, 쓰기, 문법은 부족한 편이나 말하기에 비해 부족한 것이지 학년에 맞춰 잘 따라가고 있는 수준이다. 이 아이와 대화를 할 때는 영어를 배운 한국 학생이 아니라 외국 아이와 대화하는 것 같다. 나와 대화를 할 때 생소한 표현이 들리면 대충 문맥상 알아듣고 다다음 문장쯤에서 바로 응용해본다. 전혀 모르겠는 표현이면 주저하지 않고 뜻을 물어보고 다다다음 문장쯤에서 바로 사용한다. 새로운 표현에 대한 자기의 이해가 틀렸는지 맞았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용 방법이 맞으면 넘어가고 틀리면 맞는 뜻을 말해주는데 말해주면 바로 이해하고 다음엔 맞게 사용한다. 길어지는 대화 중 잠시 집중력이 떨어져도 놓치는 영어가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들과 영어로만 대화를 했고 그중 유학생, 엄마표 영어를 한 학생, 외고 학생, 해외에서 일을 오래 한 성인 학생 분들도 있었지만 전부 이 아이만큼 말을 하진 못 했다. 고등학생 때 미국에 가서 7년을 살다 온 학생도 영어로 나와 이렇게 대화하진 못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엄마표 영어”와 비슷한 방식으로 영어를 시작한 아이였다. 아이는 “얼마 전까지 한국어로 된 영상을 볼 수 없었다.”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영어 교육 방식을 자세히 물어봤다.
B의 엄마가 “엄마표 영어”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B의 엄마도 엄마표 영어에 대한 반감이나 적어도 의문이 있는 학부모였다. 영어가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하긴 했지만 영어책을 열심히 읽어준다든지 “집중 듣기”, “듣고 따라 하기” 등 엄마표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익숙한 영어 "자기 주도" 학습들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 이 교육방법을 “엄마표 영어”라고 하는 이유는 아이 영어 실력에 기여한 중요한 선택들을 부모가 했고 그 선택의 실천 내용이 학원이 아닌 집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Case “B”
B의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 TV 시청을 철저히 제한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요즘 실제로 수업을 가면 적어도 거실에 TV가 나와있지 않은 집들이 많다. B도 마음대로 TV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영어로 된 영상이나 영화 등은 B에게 항상 허락되었다. 영어 DVD나 영어 유튜브, 영어로 된 넷플릭스 영상들은 제한 없이 볼 수 있었다. B는 친구 집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신기하게도 친구 집에 가면 한국어로 된 프로그램들이 틀어져있기 때문이었다. 영어로 된 영화나 영상이 B에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B는 영어로 된 영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기억하는 첫 순간부터 영어로만 영상을 봤던 B는 화면 속 그림으로 내용을 유추하는 법을 빠르게 배웠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내용을 유추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영어가 익숙해져 영상의 내용이 이해가 됐다.
한글로 된 영상은 친구 집에 갔을 때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제한이 많았기 때문에 “영어 영상물은 시간제한 없이 허락한다.”는 엄빠의 딜은 성공적이었다. 한국어로 된 영상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면 “영어로 봐.”라는 엄마 말에 ‘싫어, 나중에 한국어로 보지 뭐.’하고 생각하면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B에게 그 선택은 없었고 집에 TV도 없었기 때문에 아주 당연하게 영어로 영화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즐겨봤다. 불편함은 또래 친구들이 보는 한국 프로그램을 몰라 대화가 통하지 않던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야 느껴졌다. 이 부분을 B는 부모님께 말했고, 이미 영어 듣기 말하기가 충분히 완성된 B에게 부모님은 한국어 영상을 허락했다.
B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한글을 완전히 떼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한글을 떼고 학교에 들어가니 아직 서툰 아이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부모는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다. 물론 중학생이 된 B는 지금 한글이나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중요한 포인트
B는 1년에 한 번 방학을 이용해 해외에 한 달 정도 가서 영어만이 있는 환경을 경험했다. 사실 13년 동안 영어 회화를 가르쳐본 결과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은 평생의 영어 실력에 있어 아주 결정적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도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영어권 외국에 한 달이라도 가서 영어에 파묻히면 영어가 확실히 는다. 그냥 어느 정도가 아니라 “대폭” 는다. 물론 양쪽 다 예외도 있지만, 이렇게 다녀온 아이들은 보통 완벽하지 않아도 영어권 나라 아이들처럼 말하고, 한국에서만 영어를 배워서 잘하는 아이들은 문법이 완벽해도 한국인이 영어 하듯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발음의 문제만은 아닌 뭔가가 있다.
B도 아주 화목한 가정을 가졌고 그걸 B도 잘 안다. 주변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자신의 가족은 뭔가 다르다는 걸 B는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자신은 운이 좋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나에게 자주 한다. B도 가족과의 대화가(특히 엄마뿐 아니라 아빠와의 대화도 많다는 것이 중요하다.) 많고, 부모님과의 깊은 소통이 어렵지 않다.
결론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은 많지만 B처럼 하는 아이는 드물다. 그리고 지금도 B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밌어서 영어로 된 유튜브, 틱톡, 넷플릭스 영상들을 찾아보고 두꺼운 영어책을 어렵지 않게 종이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읽는다.
한국어 영상 X, 영어 영상은 시간제한 없이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1년에 한 번 한 달씩 영어권 국가에 가서 영어를 배운 경험
한국어*로 편안하고 깊은 대화를 자주 하는 가정(간혹 한국에서 아이에게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는 가정이 있는데 이 방법에는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즐겨 듣는 영어 오디오북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가 이 시기를 무탈하게 겪어낼 것이라는 것에 나는 약간의 의심도 없다. 부모님과 싸웠다, 엄마가 혼냈다고 말하며 시작하는 수업일이 이전보다 늘었는데 전혀 걱정이 없다. 안타깝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학생이 말하는 부모와의 갈등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편안한 경우가 흔할 리 없다. 대부분 아이가 느끼는 학업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인성교육(성교육, 생명 존중 교육 등)이 공교육 내 거의 전무한 한국에서 이런 스트레스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이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다. 사춘기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세상을 만드는 시기다. 지금까지 어른들과 주변 사회에서 취득한 세상의 조각들을 편집해서 그것과 다른 나만의 세상을 구축해나가고 그 안에 둘 가치들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겨우 10년 전후를 살아온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이 생소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불안한 마음으로 해나간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만났을 때 작은 인간(아이들) 뿐 아니라 큰 인간(어른들)도 건강하게 이겨내는 일이 어렵다. 당장 터지지 않아도 쌓일 텐데 그 상태 그대로 작은 인간은 큰 인간이 된다. 때문에 부모의 잔소리에 기죽어있는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B의 경우에는 균형을 지킬 수 있다. 아이의 스트레스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 적절한 훈육과 잔소리는 유아/청소년 교육과를 졸업하지 않았어도 사춘기를 지나온 어른이라면 이렇게 구분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