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엄마

실패사례 1)

by 예나

C를 생각하면 울컥한다. 가끔 아이들은 자신의 순수함만으로 감동을 주는데 이 아이는 그게 컸다. 내가 예술을 전공해서 그런지 예술 쪽으로 뛰어나거나 남다른 창의력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서 미술수업을 하면 그 특별함에 가슴이 설레고 소름이 돋는다. 이 아이는 엄청난 예술적 재능이나 눈에 띄는 창의력은 없지만 아이의 순수함이 빛이 나서 웃음이 나오고 매번 수업을 특별하게 끝내는 7살 아이였다. 그 아이가 만들어준 손가락 주사위는 수업을 끝낸 지 2년이 지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런 아이가 학업 스트레스로 피곤한 눈빛을 보이면 화가 치민다. 7살 아이가 학업 스트레스라니, 믿고 싶지 않은 한국 현실이다.


C는 꽤 좋은 영어를 한다. 양보다 질인 스타일이다. 마구 내뱉기보단 어디선가 들은 패턴을 자주 쓰고 스스로 응용해보기도 한다. 항상 맞는 표현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말하고자 하면 뭐든 꺼내본다. 과묵한 아이임에도 언어를 배우기에 정말 좋은 성격을 가졌다. C는 신중하고 시끄럽지 않은 성격이라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생각이 안 나면 한국어로 툭 뱉는 게 아니라 머리를 움켜쥐며 혼자 가만히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쉽더라도 용케 근처 단어를 찾아 하고자 하는 말과 비슷한 표현을 영어로 만들어낸다. 좋은 환경 아래라면 정말 영어를 잘할 수 있는 아이 같은데, 안타깝다.



Case “C”

C의 집에는 책과 책장이 정말 많다. 내가 그 풍경이 신기해 직접 세어봤는데 책장 개수로 셀 수 없어 작은 책장은 빼고 큰 책장이 붙어있는 벽면의 수로 세어야 했다. 들어가 본 방은 사면이 책장‘만’ 있었고 거실에도 TV 대신 커다란 책장이 마주 보는 양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영어책과 한글책의 비율은 1:1 정도이고 엄마 아빠가 읽을 만한 책은 손이 닿지 않는 가장 윗부분에만 약간씩 보였다. 보이는 책의 97%가 아이 책이었다.


C의 아빠는 첫 만남에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누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는데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약간의 눈길도 주지 않는 부모는 처음이었다. 아예 호다닥 숨는 아빠들은 많았지만 C의 아빠는 그냥 앉아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C의 엄마는 나에게 처음으로 “엄마표 영어”라는 단어를 말한 부모다. 그때 나는 그게 뭔지 몰랐으니 “엄마표 영어”를 해왔다는 말에 그냥 고개 끄덕하고 말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읽은 엄마표 영어 교육서에 소개된 영어책이 정말 많이 있었다.


처음 영어 테스트를 하고 상담을 한 날, 엄마는 아이의 영어 교육을 어떻게 해왔는지 묻는 나에게 자신의 얘기부터 했다. 영어가 항상 어려웠고 잘하고 싶은데 안됐고, 이젠 나이가 많고 늦은 것 같아 포기했다는 말. 그래서 더욱 내 아이는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말, 애랑 해외여행을 다닐 때 아이가 영어를 잘해서 편하면 좋겠다는 말. ...다시 한번 어떻게 아이가 영어를 해왔는지 물었더니 이번엔 자신만의 영어 교육 철학을 이야기했다. "영어는 한국어처럼 자연스럽게 가르쳐야 한다는 마인드다."라고 했다. 결국 그날 아이가 어떤 영어 교육을 받아왔는지는 들을 수 없었다. 수업을 몇 번 한 후에야 엄마표 영어를 해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외에 문법과 어휘력 위주의 영어 학원을 하나 더 다니고 있었다.




아이는 절대 내 앞에서 학원이나 수업이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자주 "오늘은 피곤하다.", "오늘은 이거 하기 싫다."라는 식의 표현은 했어도 평소 스케줄이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8살이 되는 생일을 몇 달 안 남겨둔 아이가 다닌 학원의 개수는 운동이나 바둑 등을 포함해서 5개,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과외가 2개였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3~4개 정도의 수업이 있었다. 물론 유치원을 제외한 7살 아이의 스케줄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숙제를 하고 있고, 항상 학원을 갈 준비가 되어있는 아이가 어떻게 이런 스케줄이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물론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가 보통 사람들보다 시간을 두배로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유치원과 학원과 과외 수업을 들으면서도 먹고 놀고 쉴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수도 있다. 두배로 늙는 게 아니라면 나도 그런 초능력을 간절히 가지고 싶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나는 감히 이것이 이미 부모에게 반 정도 강요된 반응이라고 추측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런 식의 거짓말을 하라고 직접 시키진 않겠지만, 이런 일상에 지쳐하는 아이에게 실망의 눈빛만 한번 보내도 사실 많은 아이들은 부모를 위해 괜찮다고 거짓말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무거워서 이 글을 계획한 만큼 길게 적을 수가 없다. 결론만 얼른 말하자면, 그래도 아이에게 엄마는 나쁜 엄마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는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수업을 하면서 글로 쓰기도 하고 말로 하기도 하고, 자주 그러더라.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할 수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항상 좋아할 수는 없다. 언뜻 봐도 무뚝뚝한 아빠를 잠시 목격해서 그런지, 나에게는 그나마 아이에게 애정표현을 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갔다. 엄마가 아이를 학업 문제로 심하게 혼내는 모습을 수업 전후에 2번 정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전혀 개입할 수 없었다. 내 아이가 아니고 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생각해보니 조금 후회가 된다. 아이 엄마에게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런데 공부할 때는 저랑 하는 게 훨씬 더 좋대요."라고 말해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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