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의 여왕이라 불리는 곤충 학자 루이 저 로스차일드 박사의 실험은 유명하다. 벼룩들을 작은 유리컵에 넣어 뚜껑을 닫고, 벼룩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 후 뚜껑을 열었지만 유리컵 밖으로 튀어나오는 벼룩은 없었다. 벼룩은 원래 자기 몸의 100배 이상을 뛸 수 있는데, 자기가 뛸 수 있는 한계를 스스로 낮춰버린 것이다. 동물원의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도 벼룩의 유리컵 뚜껑을 닫는 것과 유사하다. 새끼 코끼리가 태어나면 다리를 말뚝에 줄로 묶어놓는다. 처음에는 새끼 코끼리가 말뚝을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점차 자라면서 묶인 줄에 적응한 코끼리는 끊을 힘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줄을 끊지 못한다.
이처럼 벼룩이 유리컵을 튀어나오지 못하고 코끼리가 줄을 끊지 못하는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학습된 무력감’이라 한다. ‘학습된 무력감’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실패 경험을 받아들여서 도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속적인 실패’가 아니라 ‘실패를 받아들임’에 있다.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사람은 달라진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시련과 위기를 이겨냈다고 말한다. 유대인 엄마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시련과 위기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조금은 가혹해 보일 수 있지만 아이가 커서 겪게 될 실패들을 두려워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유대인 엄마들은 밥을 굶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심정을 느껴보도록 하기 위해, 아이에게 기아 체험을 시키고 아프리카로 자원봉사를 가도록 한다. 밥을 굶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프리카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직접 느껴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 엄마처럼 아이를 굶기거나 시련을 일부러 만들어 주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아이가 시련을 겪었다고 해서, 실패를 했다고 해서 체념하게 만들거나 스스로의 한계를 긋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영국의 소통 전문가 폴 스톨츠는 “앞으로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보다 역경지수(AQ)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역경지수가 높아서 실패를 하거나 시련이 와도 이를 잘 이겨낸다고 한다. 유대인 엄마들은 아이의 역경지수를 높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에게 시련이 오거나 실패를 하더라도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게 하며, 너무 자만한 아이는 자제시켜준다.
시련을 피하려고만 하는 아이와 엄마도 있다.
우리 반에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말 그대로 장난꾸러기였다. 옆 친구를 계속 쿡쿡 찌르는가 하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는 장난까지 서슴없이 하였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 아이가 장난으로 앞자리에 앉은 여자 아이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버린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당장 사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사과를 대충하고 집에 가버렸다. 다음 날이 되어서 그 아이는 등교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께 혼날까 봐 무서웠는지, 여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에게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는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선생님, 우리 애가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고 있네요. 바꿔줄 테니까 잘 타일러서 학교 나가도록 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나는 다소 황당했다. 장난을 친 아이가 오히려 학교에 오지 않아 이를 잘 타일러야 하는 상황인 것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와 통화해서 여자 아이가 사과를 받아주어서 이제 괜찮다며 타일렀다. 다음 날 그 아이는 다행히도 등교했다. 이 남자아이는 역경지수가 낮은 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도 아이에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힘든 일이나 시련을 거의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은 본인에게 들이닥치는 실패나 좌절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칭찬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은 어려운 상황을 피하려고만 한다.
특히 이렇게 실패나 시련을 매우 힘들어하는 모습은 아이들이 시험을 볼 때 많이 볼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이 시험 점수가 낮게 나오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확 짜증을 내기도 하고, 좌절해버리기도 한다. 왜 틀렸을까 고민해보면서 다시 풀어보라며 시험지를 다시 나눠주면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아이들은 시험지를 구겨버리거나 찢는다. 아니면 시험지 위에 쓰인 점수를 펜으로 벅벅 칠해서 알아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틀린 문제들을 다시 보고 다음번에는 틀리지 않도록 해도 아이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실패나 시련을 피하거나 거부하려고만 한다.
반면에 실패를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아이도 있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도 태연한 척한다. ‘어차피 나는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좌절이 오면 그 속에서 배울 것을 찾고 시련을 이겨내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그냥 낙담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뭔가 해보려는 의지나 용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 아이들에게 조금만 노력해보면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해줘도, 아이들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며 포기해버린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크고 작은 시련들을 많이 경험할 것이다. 때로는 실패도 찾아올 것이다. 나도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시련과 실패가 있었다. 그 속에서 어떻게 해결할지를 생각했고,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아이들에게 이런 마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엄마들은 아이가 힘든 일을 겪고 있거나 실패를 했을 때, 아이들과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보며 좌절하고 낙담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함께 위인전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을 함께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시련과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냈는지를 배우고, “그들에게 이렇게 수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었구나. 지금 내 시련은 시련도 아니네.”하는 용기도 주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이런 힘든 일과 시련, 그리고 실패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도 있다. 바로 운동이다. 수영이나 등산을 해 보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힘든 과정을 겪어보는 것이다. 축구나 농구 등의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해 보면서 최선을 다해도 경기에서 질 수도 있다는 경험도 해 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욱 발전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가짐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스포츠와 운동을 평소에 즐기는 건강한 아이들은 정신도 건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 중에는 가족끼리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도 하고, 주말마다 하이킹을 다니는 가족도 있다. 나도 등산과 마라톤을 좋아한다. 산에 오를 때에는 숨이 차고 힘이 들지만, 정상에 올라서 느끼는 공기는 너무 좋다. 그리고 마라톤 역시 중간에 포기하고 싶고 위기의 상황도 오지만 도착점에 발을 디뎠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면 온 가족이 함께 뛰는 경우를 많이 본다. 유모차를 끌고 뛰는 엄마도 있다. 아이와 함께 자주 산에 올라보거나 마라톤을 한 번 해 보자. 처음에는 아이들이 투덜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정상에 서서, 도착점에 골인해서 행복한 모습을 한 번 보여줘 보자. 아이도 어느새 따라서 도전을 즐기고 성취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일찍 시련이 올수록 더 배울게 많다고 한다. 아이들이 실패를 겪거나 시련을 겪고 있으면 더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들이 있다. 반면에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우냐. 뚝 그치지 못해?”, “이런 일은 누구나 다 겪는 거야. 신경 쓰지 마.” 등의 말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이가 괴롭고 힘들어하는 ‘감정’은 보듬어주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힘든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고민해보고, 용기와 희망의 말을 많이 해 주어야 한다. 엄마가 해 주기 어렵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책이나 운동을 평소에 습관적으로 접하게 하여 아이가 스스로 힘든 일을 겪어도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을 만들어 주면 아이는 더욱 단단하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