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관심]-내 아이가 힘이 든다면
학교에 엄마들이 찾아오면 열의 아홉은 누구 엄마인지 알아볼 수 있다. 아이와 생김새가 똑같이 닮은 엄마도 있고, 외모는 달라도 말투가 비슷한 엄마도 있다. 아이와 걸음걸이가 비슷한 엄마, 웃는 모습이 닮은 엄마, 뭐 한 가지라도 닮지 않은 엄마는 없다. 나는 이런 엄마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이는 어른들을 닮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흡수력이 굉장히 빠르다.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보는 어른은 부모님과 선생님이다. 1년 동안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지내다 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학급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의 성향, 말투 등을 닮기도 한다. 교과전담을 했던 해가 있다. 교과전담은 한 학년 전체 학급의 수업을 들어간다. 수업을 하다 보면 어떤 반은 쾌활한 반이 있고, 조용하고 발표도 하지 않는 반도 있으며, 친구들과 떠들고 돌아다녀 정신없이 지나가는 반도 있다. 이런 반 분위기가 1년 내내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한 학기 정도 지나다 보면, 목소리가 작고 조용한 담임선생님의 반 아이들은 조용해지기도 한다. 반면에 쾌활하고 호탕하신 담임선생님 반의 아이들은 쾌활해지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이들은 선생님을 많이 닮는데, 매일 밤낮으로 보는 부모는 어떻겠는가. 특히 태어나서부터 십 년 넘게 함께 살아온 엄마의 말투와 행동, 습관은 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나도 아이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려 노력한다. 내 표정과 성격을 학급 아이들이 닮는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이다.
인수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항상 인사를 잘 하고, 성실하며 차분한 성격을 가진 소위 모범생이라 불리는 아이다. 인수는 운동도 잘 해서 축구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도 하였다. 대회에 나가면 엄마들이 응원을 오는데, 나는 멀리서도 인수 엄마를 알아보았다. 생김새는 조금 달랐지만, 인사를 나에게 하면서 미소 짓는 모습이 인수와 똑같았다. 엄마는 대회 내내 차분하게 서서 아들을 지켜보시다가 웃으며 조용히 가셨다.
엄마들 중에 간혹 자기 아이의 성향을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본인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면 대략 아이가 파악이 될 거라 말해주고 싶다. 만약 아이의 지금 모습을 달라지게 하고 싶다면, 엄마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아이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고, 가장 많이 배우고 닮는 대상은 엄마다. 엄마가 먼저 웃으면 아이도 웃는다. 엄마가 먼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면 아이도 친구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스스로는 달라지지 않으면서 아이를 달라지게 하고 싶다는 것은, 콩을 심고 팥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물론 아이는 스스로 달라지기도 한다. 엄마가 방임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할 때, 아니면 특별한 사건이나 큰 일을 겪었을 때에나 말이다. 대부분 아이들은 엄마를 거울처럼 따라 한다.
외동아들을 가진 엄마가 있었다. 이 엄마는 장녀였고 남편도 외동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해서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아이가 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는데 충격적이었다.
“나 오늘 체육시간에 축구하는데 자살하고 싶었다.”
아이는 별생각 없이 말했을 수도 있지만, 듣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심각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실제 자살을 하고 싶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정도로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아이는 친구 사귀는 것을 어려워했다. 아이의 엄마도 평소 본인이 친구 사귀기에 대해 큰 흥미가 없고, 아빠도 외동으로 자라면서 친구를 많이 사귄 건 아니었다. 아이가 자신들을 닮는 것 같아 고민이었다.
아이의 사회성을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억지로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의 성향을 닮은 데다가 외동인 그 아이는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맺는 방법을 잘 모른다. 엄마가 지금까지 친구 없이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아이도 그렇게 두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엄마는 아이와 함께 다른 엄마들,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같은 반 엄마들끼리 반모임을 한다. 엄마들이 반모임을 하면서 자주 모이는 이유가 있다.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엄마들끼리의 친해지는 것도 목적이지만, 반모임을 할 때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온다. 그래서 아이들끼리 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다. 엄마들은 아이들끼리 놀 수 있는 환경을 이렇게 직접 만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놀 친구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엄마들끼리 친하거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학교에서도 친하게 지낸다. 사회성은 글이나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서 아이와 함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랑 자주 싸우는 송민이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벌써 세 번째 친구에게 시비를 걸어 싸웠다. 엄마와 전화통화로 상담도 했지만,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다. 송민이는 평소 거친 말을 자주 쓰는 아이 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송민이가 학교에서도 욕을 자주 쓰고 말이 거친 편인데 집에서도 그러나요?”
“네. 자꾸 그래서 욕할 때마다 혼내주긴 해요.”
이렇게 대화하다가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송민이 엄마와 아빠 역시 거친 말을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새끼’, ‘닥쳐’ 등의 말은 애교였다. 그러니 아이도 학교에서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런 거친 용어들을 부모님부터 자제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욕이나 비속어는 누군가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를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가까운 친구, 부모들에게도 배운다. 아이 앞에서는 말을 조심하라는 이유가 있다. 습관적으로 욕이나 비속어가 튀어나오는 부모도 있다. 아이에게 직접 하지 않아도 혼잣말로 욕을 하기도 한다. 아이는 항상 옆에서 다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심지어 자고 있는 것 같아도 부모가 싸우는 소리, 하는 말을 다 듣고 있기도 한다.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다. 나의 장점만 닮았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닮는다. 아마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유전과 환경의 힘이다. 엄마가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든지 아이는 바뀐다. 아직 아이는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하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인 내가 조금만 먼저 달라지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도 힘든데 나를 먼저 바꾸라는 말이 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날 닮은 분신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홍길동전을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홍길동이 자주 사용하는 분신술이 있다. 홍길동의 분신들은 스스로 각자 움직이는 것 같지만, 홍길동의 생각에 따라 행동한다.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하는 행동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생각해 오고 보여준 행동들을 닮는다.
아이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면, 엄마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 보자.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고 싶다면 엄마가 아이와 함께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게 지내보자. 지금도 아이는 엄마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 한 번 ‘즐겁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해보자. 그러면 아이도 어느새 즐겁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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