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흔히 강남 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교육열’이다. 강남은 교육 일번지라고 일컬으며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전국의 아이들이 모이고, 강남 엄마들은 교육열이 엄청난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실제로 경험하고 보고 들은 바로도 교육열이 엄청나다고 느껴진다. 강남 엄마들은 수시로 모여서 교육에 관한 여러 정보를 항상 공유하고 함께 공부시킨다. 이런 엄마들 중에 ‘돼지엄마’라고 불리는 엄마가 있다. ‘돼지엄마’는 이제 인터넷 사전에서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말이 되었다. 그 뜻은 ‘돼지가 새끼들을 끌고 다니듯이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자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엄마들의 대표를 뜻하는 은어’이다. ‘돼지엄마’는 학부모들을 몰고 다니면서 과외 그룹을 짜거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돼지엄마’가 되기 위한 조건은 막강한 정보력, 경제력 그리고 자녀의 좋은 성적이다.
실제로 강남 엄마들은 모일 때마다 유명한 학원에 관한 이야기, 대학 입시에 관한 이야기 등을 많이 한다. 그리고 함께 팀을 짜서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기도 하고, 직접 유명 강사를 초빙해서 그룹 과외를 시키기도 한다. 어떤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엄마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아이들의 교육이다. 엄마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정보들을 얻어서 아이들이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나도 학교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학부모 상담을 하면 학원과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이가 지금 어떤 학원에 다니고 있고, 반 친구 누구와 팀 과외를 하고 있는 등에 대해 말한다. 그러면서 나보고 선행학습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어떤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물어보는 엄마들도 있다.
엄마들은 자녀 교육에 관해서 굉장히 민감하다. 요즘 유행하는 공부나 학원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남들이 시키는 공부나 학원들은 따라서 시키려 한다. 논술이 유행일 때에는 논술학원으로, 스토리텔링이 유행일 때에는 스토리텔링 학원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그리고 “영어학원은 어디가 좋다더라.”, “수학은 여기가 잘 한다더라.”는 등의 소문에 엄마들은 쉽게 흔들린다. 이런 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해서 마케팅을 하는 학원도 있다.
강남 학원장들의 말에 따르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이용하여 상술을 부리는 학원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학원들이 선행학습을 과도하게 홍보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학년 구분 없이 아이들을 똑같은 교재와 진도로 한꺼번에 수업할 수 있기 때문에, 학원 수익이 엄청나게 커진다고 말한다.
선행학습은 예습과 다르다. 예습은 학교에서 배울 내용들을 한 번 ‘스스로’ 살펴보고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대개 예습은 학교 진도보다 한 두 단원 정도 앞서 간다. 반면에 선행학습은 초등학생이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뛰어 넘어 배우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영재교육을 받고 있거나 초등학교 과정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면 모르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 선행학습을 시키기 전에는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학교 단원평가나 수행평가 결과를 확인해보고 담임교사와도 상담을 해 본 뒤 결정해야 한다. 현재 학년 수준의 것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무작정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선행학습만 하면 안 된다. 특히 수학, 영어, 과학 과목은 단계별로 차근 차근 공부해나가야 하는 과목이다. 건물을 세울 때 1층이 부실한데도 불구하고 계속 2층, 3층을 쌓는 것과 같다. 언젠가는 무너져버린다. 실제로 6학년 아이들 중에 벌써부터 자기는 수학을 포기했다며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는 아이도 있다. 수준에 맞지 않는 수학과 씨름하다가 지레 겁을 먹고 수학은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에 포기해 버린다.
나도 어렸을 때 선행학습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는 미분과 적분 설명을 듣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들은 미분과 적분은 정확히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그 당시에 외웠던 공식들은 다 까먹어서 고등학교 때 새로 공부했다.
학원이나 주변 엄마들의 소문을 듣고 아이들을 이리 저리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아이들은 결국 많은 일에 싫증을 많이 느끼는 아이가 된다. 피아노 학원을 한두 달 배우다가 그만두고, 검도 학원을 며칠 배우다가 그만두고, 이제는 수영을 배워보고 싶다는 아이가 있다. 엄마는 “아이가 쉽게 싫증을 내고 다니기 싫다고 해서 무조건 학원을 바꿔주는 것이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봐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꾸준히 해서 성취를 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싫증을 빨리 느끼는 아이들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한두 달 배우다가 때려치우는 것은 배움이 아니라 체험이다. 아이들을 체험 인생으로 살게 해 서는 안 된다. 배운다는 것은 꾸준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쉽게 싫증내거나 어려워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각종 정보에 휘둘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정보들 중에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택해야 한다. 아이의 기질과 성격, 그리고 아이의 꿈과 목표에 맞는 정보들을 제공해야 한다. 요즘은 각종 정보들이 넘치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이 중요하고 맞는 정보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수 많은 정보들 중에 믿을 수 있는 객관적 정보만을 선택해서 재구성 하는 것을 ‘큐레이션(Curation)’이라 한다. 엄마는 아이 교육에 관한 정보를 큐레이션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엄마가 원칙을 세워야 한다. 학원을 보낼 때에도 목표를 세우고 보내 보자. 예를 들어 아이가 영어로 된 동화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영어학원에 보내보는 것이다. 아이에게 이것 저것 시켜본 다음에 하나씩 학원을 끊는 습관은 좋지 않다. 아이에게 좋고 나쁜 배움은 없다. 다만 꾸준히 하는 경험을 배우는 것도 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이 가치를 아이가 스스로 찾게끔 조금은 기다려 주자.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해 조급해 하고 불안해 하는 마음이 크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이고, 친구관계나 생활 습관들도 아이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불안해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어른들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자주 발생한다. 어른들은 완벽하지 못하면서 완벽한 아이로 키우려는 부모들이 간혹 있다. 아이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는 부모도 있다.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자녀가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학부모가 많다. 본인보다 공부를 더 잘 해서 성공했으면 좋겠고, 음악, 미술도 잘하고 영어도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런 바람에 엄마들은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아이를 보낸다. 하지만 그 결과를 지켜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것은 결국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 저기 발만 담궈 보는 식의 배움으로는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안 배워 본 것이 없다. 피아노, 태권도, 미술, 서예, 바이올린, 영어 등을 배우며 바쁘게 살아왔다. 이렇게 배운 것들이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해서 배운지 않은 것들은 지금 관심조차 없다. 아이들이 진짜 배우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먼저 시켜보자.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면 아이가 태권도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디까지 배울 것인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지켜봐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도중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응원해주고 목표를 떠올려주면서 동기를 부여시켜주자.
“너 태권도 배워서 건강해지고,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자기 방어도 배우고 싶다고 했지?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엄마가 응원해 줄테니까 한 번 열심히 배워보자.”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의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우리 모두를 자랑스럽게 해 줄 거다.”라고 말하며 슐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자주 했다고 한다.
“오늘 밤에는 어떻게 공부할 거니?”
“내일은 무엇을 할 거니?”
위와 같은 독려와 질문에 슐츠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들여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안 된다. 더 이상 팔랑귀나 조급증 엄마가 되지 말고, 엄마의 신념과 원칙대로 아이를 키우자. 아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데 정해진 답은 없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이에게 이것 저것 집어넣지만 물이 차오르는 게 잘 보이지 않는다. 물만 붓는다고 해서 독이 차오르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의 독을 잘 가꿔서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속에 채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엄마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