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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남 yenam Oct 08. 2017

12. 아이는 엄마의 관심으로 움직인다

 영미는 교실에서 항상 혼자였다. 밥을 먹을 때에도 혼자 먹고, 쉬는 시간에는 혼자 책을 읽는다. 체육 시간에도 친구들과 어울려서 활동하지 못하고, 현장학습 같은 데를 가도 혼자 뒤에서 따라다닌다. 영미는 “자기는 오히려 혼자가 편하고 친구들과 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영미가 계속 신경쓰였다. 따돌림도 아니고 영미 스스로가 혼자서 생활하는 게 편하고 좋다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체육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소외된 영미 눈에 눈물이 맺혀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영미와 이야기했지만, 자기는 괜찮다고만 했다. 하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영미는 나에게 자기 엄마와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 언니가 시험 기간이라 집에서는 한 마디도 못해요. 아주 답답해 미치겠어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영미의 집안 분위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매일 그렇지는 않겠지만 집에서 말 한 마디 안하는 분위기, 언니의 시험과 공부에 관심을 쏟느라 영미에게는 소홀한 분위기 속에서 어쩌면 영미는 상대방과 지내는 것보다 혼자 있는게 편해져 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영미는 학교에서까지 친구와 말 하는 것도 싫어졌을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영미 엄마는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하고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가기 싫다는 수학여행도 억지로 가게 시키고, 스카우트 활동도 시키셨지만 영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영미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집안에서 엄마와 함께 하는 따뜻한 대화라 생각되었다.

 엄마들은 여러 자녀를 키우기는 게 쉽지 않다. 특히 한 자녀에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다른 자녀는 소외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관심을 꺼버리면 그 자녀는 멈춰버린다. 자신의 생각을 멈춰버리고, 말문도 닫아버리며 행동을 꺼버린다. 요즘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개인주의 성향을 넘어 이기적이고, 친구들을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부족하다. 친구들과 말이 안 통해서 대화하기 싫다는 아이도 있고, 혼자서 있는 게 오히려 편하다는 아이도 있다. 이 아이들은 혼자 다니면서도 외롭지 않은 척 한다. 외롭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나에겐 보인다.

 또 한 아이가 있었다. 4학년이었던 숙희는 학교에서 유명한 아이었다. 여자 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선생님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난폭한 아이로 유명했다. 나는 그 소문을 듣고 개학 첫 날부터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잘 구슬리고 대화하면 나를 따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숙희는 심각해보였다. 아이들이 조금만 숙희에게 실수를 하거나 자신에게 기분이 나쁜 말을 하면 폭력을 쓰거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였다. 이런 행동들이 반복되자 아이들은 숙희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숙희는 더욱 난폭해졌다. 결국, 하루는 숙희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날 숙희 엄마가 상담을 하러 교실로 찾아왔다.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엄마는 숙희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계셨다. 아니, 숙희의 상태를 알아도 모르는 척 하고 계신 것 같았다. 다만 엄마는 숙희의 따돌림 문제만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잘 타이르고,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마무리하고 엄마를 일단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 나는 숙희를 따로 불러 상담을 했다. 숙희는 따돌림 당하는 것에 매우 화가난다고 말했다. 따돌린 친구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고, 그 아이들을 죽여버리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나는 숙희에게 “따돌린 친구들을 용서 못할 정도로 화가 많이 났구나. 친구를 죽이고 싶어? 그럼 화가 풀릴 것 같아?”라며 숙희의 마음을 공감해주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숙희는 마지막 충격적인 말 한 마디를 했다.

 “걔네들 내가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릴거에요!”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학교에 계신 전문 상담교사와 숙희 문제에 대해 의논하였다. 앞으로 계속 수업과 관계없이 숙희가 힘들어하거나 분노가 표출될 때 상담실에 가서 상담선생님과 함께 여러 놀이치료를 하기로 하였다. 숙희는 상담교실에 갔다오면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는지, 수업 중에 화가 나거나 힘들 때면 상담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마다 상담실에 가서 재밌게 놀다 오라며 보냈다. 그리고 숙희가 상담실에 가서 없는 틈에 다른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학교폭력에 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숙희는 상담실에서 풍선에다가 얼굴을 그리고 터뜨리는 놀이, 찰흙으로 사람이나 물건을 만든 뒤 손으로 쳐서 무너뜨리는 놀이 등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생활이 몇 달이 이어졌다. 상담선생님과 지금까지 상담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숙희는 엄마와의 애착 형성이 되어 있지 않아요. 그래서 엄마의 말을 믿지 않고, 선생님도 믿지 않으며 누구의 말도 믿지 않고 있는 거예요.”

 숙희 말에 의하면 엄마가 동생을 낳고 자기와는 말도 걸어주지 않고, 놀아주지도 않을뿐더러 화만 내신다고 하셨다. 숙희 엄마는 동생을 낳고 기르느라 숙희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아빠는 일을 하고 매일같이 늦게 들어오셨다고 한다. 숙희에게는 자기의 관심을 받아 줄 어른이 집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숙희는 점차 공격적으로 변했던 것이다.

 엄마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인근 학교에서 운영되는 엄마와 자녀 관계, 소통에 관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숙희 엄마와 아이를 추천하였다. 상담선생님도 숙희 가족이 가장 시급하다며 동의해주셨다. 그렇게 엄마와 숙희는 함께 매주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그렇게 숙희는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이 보이면서 5학년으로 올라갔다.

 숙희가 5학년이 되고나서 5월 쯤이었다. 어느 날 숙희가 나를 찾아왔다. 숙희는 나에게 학종이 수십 장을 직접 묶어 만든 메모장을 주고 갔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메모장’이라는 제목이 뭔가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 메모장을 쓱 넘겨보다가 마지막에 쓰여 있는 숙희의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울렸다.

 “학교 폭력을 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숙희의 5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숙희가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고 하셨다. 공격성도 많이 줄었고, 조용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는 것이었다. 숙희는 만화 캐릭터를 정말 잘 그리는 아이었다. 4학년 때에도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으면, 쉬는 시간에 혼자 만화 캐릭터를 그리곤 했었다. 

 숙희가 변한 것은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5학년이 되며 스스로 성장하기도 했고, 새로운 학급 친구들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숙희가 변하게 된 건 엄마가 숙희에게 관심을 가져주기 시작하면서라고 확신한다.

 엄마의 관심은 이렇게 아이를 달라지게 한다. 아이의 행동은 엄마의 관심에 따라 달라진다. 학교에서 친구와 잘 어울리고 문제없이 지내는 아이들은 엄마라는 존재가 기댈 수 있는 존재, 항상 관심을 가져주는 존재로 생각한다. 기댈 수 있고 관심을 가져주는 존재가 없는 아이들은 불안하다. 아이의 행동은 정확하다. 매일같이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아이에게 관심을 더욱 가져주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우울해 하는 아이에게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주자. 아이는 관심으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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