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롭게 쉬고 있던 일요일 오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번호 맨 뒷자리가 112로 끝나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예상대로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안녕하십니까? 〇〇경찰서 아동청소년계 입니다. 수민이 담임선생님 되시지요? 다름이 아니라 수민이가 주말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아 가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벌써 가출을 해?’ 라는 생각을 하면서 경찰과의 통화를 끝마치자마자 수민이 엄마와 통화했다. 수민이 엄마 말로는 금요일 오후에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말하고는 이틀째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민이는 평소 학교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던 관심 대상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수민이는 소위 노는 아이들과 함께 무리 지어 어울리며 다니는 아이 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이 무리의 아이들은 복도 계단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고 다른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 아이들을 각 교실로 해산시켜야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가 결국 수민이는 가출까지 한 것이다. 나는 수민이 엄마와 통화하면서 그 무리의 아이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수민이가 누구 집에 있는지 연락해보라고 했다. 일요일 저녁, 다행히 수민이가 집에 돌아왔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런데 다음 날, 수민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해 봤지만 수민이가 아까 학교에 간다고 나갔다는 것이었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수민이가 어슬렁거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당당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의 표정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 수민이를 보니 화가 났다. 바로 수민이에게 소리쳤다.
“너는 초등학생이 벌써부터 집을 나가? 학교도 오고 싶을 때 오고! 니가 대학생이야?”
수민이는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 했다. 나는 수민이를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와 따로 이야기를 했다. 수민이에게 더 이상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차분히 이야기했다.
“아까는 선생님이 화가 나서 소리쳤어, 미안해. 주말에 친구 집에서 잤다면서 왜 엄마한테 연락 안 했어?”
“그냥 연락하기 싫었어요.”
“엄마가 3일 내내 걱정하셔서 경찰서에도 연락하고 나한테도 연락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집에 들어가기 짜증 나요.”
나는 수민이와 대화하면서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친구를 잘못 만나서 가출했겠지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수민이를 상담실에 있는 전문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하도록 했다. 그 날 오후 상담 선생님께서 수민이와 상담한 내용을 이야기를 해주셨다.
“수민이 말을 들어보니 엄마가 너무 강압적으로 아이를 대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수민이 엄마하고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은데요?”
나는 수민이 엄마더러 학교에 오셔서 상담 선생님과 한 번 이야기 나눠보도록 부탁했다. 며칠 뒤 수민이 엄마는 상담실에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한참을 울다가 스스로 수민이에 대한 양육 태도를 바꿔보겠다며 말씀하시고 돌아가셨다.
그 날 이후, 수민이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표정이 밝아지고 학교에도 늦지 않았다. 어느 날 수민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갑자기 엄마 얘길 했다.
“요즘 엄마가 제 말을 다 들어주세요. 놀고 싶다면 놀게 해 주고. 너무 좋아요.”
수민이 엄마는 그동안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안 돼’라는 말만 했다. 조금씩 허용해 줄 것은 허용해주기 시작하자 수민이는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아이의 태도가 이렇게 한 순간에 확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민이는 그 이후 한 번도 가출하지도 않고 큰 문제없이 1년을 보냈다.
우리 아이가 어느 날 문제 행동을 보이고 엄마의 속을 썩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를 한 번 생각해 보자. 혹시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강압적이고 명령과 복종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아이는 부족하니까 아이라고도 한다. 아이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허용의 관점에서 바라봐 주는 태도, 아이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이해해주는 태도를 갖고 있는지 한 번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건 방임이다. 아이 스스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서 엄마와 약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조금만 잘못 해도 듣기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야단치는 엄마도 있다. 심지어는 작은 실수나 잘못에도 아이를 때리는 경우가 있다. 엄격한 것과 야단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아이를 야단치고 체벌하는 것은 반성보다 반항의 감정만 싹 틔운다. 아이와 꼭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해서 약속을 엄격히 지키는 책임을 이해시켜주고 그 외에는 아이가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3학년인 인성이는 수학 단원평가에서 문제를 틀릴 때마다 엄마에게 야단과 잔소리를 듣는다.
“넌 항상 꼭 틀리더라. 다른 애들보다 더 좋은 학원에서 잘 배우고 문제집도 푸는데 만점 한 번을 못 받냐.”
인성이는 줄넘기도 잘해서 줄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도 받고, 그리기 대회에서도 상을 받는 못하는 게 없는 아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인성이에게 더욱 채찍질만 한다.
언제 인성이 엄마와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나는 슬며시 엄마에게 인성이가 학원을 너무 많이 다녀 피곤해하니 조금만 줄여보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인성이가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다 자기 잘 되라고 하는 건데, 나중에 대학 잘 가고 성공하면 그땐 나보고 감사하다고 말할걸요?”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인성이 엄마의 말씀에 너무나 안타까웠다. 주변에 보면 이런 엄마들이 많다. 아이의 지금 감정과 상황은 뒤로 하고, ‘학생은 힘들어도 무조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를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자기의 힘든 감정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아이에게는 어떤 식으로도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당장 엄마가 시키는 대로 따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며 자아가 생기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서, 아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누군가의 명령이나 강압에는 반발하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아이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이러한 반발심은 반항과 같은 직접적인 말로써 표현되는 경우도 있고, 문제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는 위에서 얘기한 수민이처럼 가출이나 비행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내성적인 아이들은 자해나 우울증으로 빠지기도 한다.
학부모와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가 문제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간혹 있다. 그때마다 나는 평소에 집에서 아이와 대화를 얼마나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를 묻는다. 대화 속에서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아이의 문제행동은 엄마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너무 억압되어 있거나, 너무 방임되어 있는 극과 극의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많이 보인다. 억압되어 있는 아이는 엄마를 너무 무서워하거나 싫어하기도 하고, 방치되어 있는 아이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거나 깔보기까지 한다.
엄마의 태도는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보이는 태도에 따라 아이는 달라진다. 강압적인 태도로만 아이를 대하면 언젠가 그 아이는 튕겨나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무관심한 엄마의 아이에게서 안정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아이에게 긍정적인 관점으로 허용할 것은 허용해주면서 아이의 의견을 지지해주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다면, 분명 아이는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좋은 엄마의 태도를 보이고자 한다면 어떤 엄마가 되길 바라는지 솔직히 한 번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