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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옝옝 Feb 22. 2023

고전 문학, 왜 읽으시나요?

<하루 한 편, 세상에서 가장 짧은 명작 읽기> 읽고


소설을 왜 읽나? 시간 아깝게.

소설과 드라마.

이 두 가지는 진짜 할 거 없어서 시간이나 때우고 싶을 때 찾던 것들이었다. 보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도파민에 뇌나 절일 뿐이지… 그저 시간 낭비, 오락적인 것으로만 치부해왔다.



책 좋아한다면서 그동안 고전명작을 읽지 않은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주지 못하는 독서는 내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고, 그래서 실용서만 가려 읽었다. 그래도 <데미안>, <주홍글씨> 이런 멋지구리한 책은 언젠가 읽어보고 싶긴 했는데, 왜 읽어야 하는지 명분을 모르다 보니 읽을 동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고전 명작에 관심이 생겨 입문서를 몇 권 빌렸는데, 그 속에서 답을 찾았다 :


고전 속 인물들은 바로 우리 모습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삶의 고비마다 사랑하고 웃고 울고 고뇌하며 흔들렸다.
우리는 그들의 인생을 커닝할 수 있다.
철학서가 직접적인 안내서라면, 명작 소설은 친구 같은 조언자다.



인생이 뭔지 알아야겠다고 철학서는 찾아 읽으면서 명작 소설은 멀리해온 나를 크게 혼내는 듯했다.


책에는 고전 명작 서른여 권의 줄거리와 각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소개되어 있다. 너무 생략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은 줄거리 요약이 딱 좋았다. 특히 각 장 마지막의 작가 해설이 심금을 울려서 원작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빌려본 세 권의 입문서 중에 이 책이 가장 좋았다.




나머지 두 권은 이 책들인데,       


16컷의 귀여운 만화로 줄거리를 요약한 점은 좋았다만 비약이 너무 심해서 오히려 ‘이런 걸 왜 읽지…?’ 하는 반감이 들었다. 혹시나 읽어보려는 분들께는 개인적으로 비추하는 바이다.



생각해보면 드라마도 시나리오, 즉 책에서 비롯되는 건데, 책은 되고 뮤지컬도 되고 연극도 되면서 드라마만 안 된다는 내 오랜 고정관념을 돌아보게 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TV 못 보게 한 영향이 무의식 깊숙한 곳에 남은 건가? 고정관념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는데, 잘 읽은 책 한 권이 이렇게까지 생각을 깨울 수도 있구나. 신기했다.



백수로 지내보니까 그동안 얼마나 퍽퍽하고 빡빡하게 살았는지 깨닫고 있다. 좋은 거 갖지 않더라도, 큰 거 이루지 않더라도 스트레스 안 받고 여유롭게 사는 인생이 최고구나.. 왜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지, 왜 함부로 불쌍하다 여기면 안 되는지도 알았다. 내 인생이 그 사람 인생보다 결코 더 낫지 않을 수 있는데. 명작 입문서 읽으면서 참 별생각을 다 한다.



이렇게 또 한 번 내 세계의 벽을 허물고 땅을 넓혀가나 보다.





• (지킬박사와 하이드)


선을 상징하는 지킬 박사, 악을 상징하는 하이드. 두 인물은 우리 안에도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선과 악, 위선과 양심, 겸양과 교만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간다. 하물며 어떤 때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악에서 멀어지고 선에서 가깝게 하는 내 안의 제동장치가 있다면 바로 ‘부끄러움’이 아닐까.


선을 지킨다는 것은 내 안에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곧 내가 나에게 드는 회초리다. 부끄러움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결하는, 내 마음에 판사의 권한을 부여하는 시간을 수시로 가져봐야겠다. 결국 가장 두려운 상대는 나 자신이니까 말이다.



• (멋진 신세계)


이 소설은 모든 편리가 행복의 척도는 아니며, 욕망이나 걱정, 불안이 거세되고 불행을 차단한 채 얻은 행복이 인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가족의 개념이 사라지면 부모에게 효도할 필요도 없고 육아의 고민도 사라질 것이다. 사랑이 없어지면 질투도, 짝사랑의 괴로움도, 그리움으로 잠 못 드는 밤도 없을 것이다. 늙지 않을 수 있다면 나이 듦에 대한 공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질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다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꿈을 이루기 위해 애써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은 자동차처럼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슬픔의 늪을 통과한 기쁨, 불행의 그늘을 통과한 행복이 진짜다. 실패의 터널을 통과한 성공만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며, 죄악의 유혹을 통과한 양심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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