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영국의 뗄 수 없는 문화의 연관성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지?
여느 주부처럼 저녁식사 메뉴를 고민하던 중 자주 찾는 요리 관련 한국 웹사이트에서 영국 음식이라며 Chutney를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어라? 처트니라면 영국 음식이 아니라 인도 음식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상세정보에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진 음식이고 영국으로 넘어가 치즈와 빵에 곁들이는 소스가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가 여태까지 생각했던 처트니는 멕시코 음식점을 가면 기본으로 나오는 살사 소스, 한국으로 치면 밑반찬 같은 느낌인데 ‘영국식 레시피’라는 프리미엄을 달고 고급 음식처럼 팔리고 있는 게 묘하면서도 반가웠다.
Chutney는 인도식 발음으로는 찻니(영어로 쓰자면 Chatnee와 비슷하다)라고 불린다. 본래 인도 Hindi의 말로 ‘입맛을 돋우기 위한 - to lick or to eat with appetite’ 뜻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신선한 우리나라 ‘장아찌 반찬’과 비슷한 느낌이다. 마치 한국에서 백반을 시키면 반찬이 세트로 딸려 나오는 것처럼 인도 음식점에서 Dosa를 시키면 찻니가 기본으로 딸려 나온다. 많은 웹사이트에서 찻니는 소스라고 말하는 데, 내가 느끼기에는 소스라고 하기에는 약간 헤비 한 느낌이다. 항상 빵이나 밥과 함께 먹기 때문에 잼 혹은 소스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어떤 채소나 과일이든 찻니의 주재료가 될 수 있는데 우리가 자주 찾는 인도 레스토랑에서는 보통 코코넛, 민트, 토마토, 망고 찻니와 삼바르(Sambar : 인도식 매운 스튜)가 기본으로 나온다. (참고 : Wikipedia)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약 90년 기간의 인도제국(영국의 식민제국)으로 인하여 인도-영국은 문화적으로 연결고리가 많다.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크리켓(Cricket)’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셜록홈스를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Cuppa : a cup of tea’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국 사람들은 차를 사랑하는 것 같다. 영국의 차 문화는 17세기 네덜란드 찰스 2세가 먼저 포르투갈에 차를 전파한 뒤,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영국으로 시집을 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세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아쌈 지방에서 자라는 차가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차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애프터눈 티’는 영국 귀족 사회에서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였는데 그 사이 4~5시 사이 즈음 공복을 채우기 위해 차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한 것이 지금은 사교의 목적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도 사람들도 ‘Chai’를 사랑하는 데, 인도에서도 애프터눈 티타임이 있다. 인도에는 본래 차를 마시는 전통이 없었지만, 1930년대 초반 홍차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영국 내 소비량 초과로 새로운 소비처로 주목한 곳이 인도 시장이었다. 인도 내 홍차 소비증대를 도모하기 위한 홍보 대대적으로 펼치면서 차문화가 시작되었다. 영국의 밀크티가 인도에서는 차이(혹은 짜이)로 변화하여 지금은 인도의 국민음료가 되었다. 작년 시부모님을 뵈러 인도(뭄바이)를 처음 방문하였는데 가족 모두 아침 8시에 일어나 간단한 쿠키를 곁들인 Breakfast tea를 마시고, 4시에 다시 온 가족이 모여 Afternoon tea를 마시던 게 인상 깊었다. 인도의 차이는 각 지역마다 레시피가 다르지만 영국의 밀크티와 가장 다른 점은 차를 우려내지 않고 끓인다는 점이다. 시댁에서 가장 좋아하던 차는 ‘마살라 밀크티 (Masala Chai)’인데 밀크티에 카다멈(Cardarmom)과 여러 향신료가 추가된 차이다. (참고 : ‘문기영의 홍차 수업’)
인도의 모든 국민이 사랑하는 스포츠 크리켓(Cricket). 17세기 잉글랜드 남부 지역에서 시작해 영국의 국기로 정착한 구기 스포츠로 배트와 공을 사용해 11명으로 이루어진 두 팀이 공격과 수비를 돌아가면서 공을 배트로 쳐 득점을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국에서 널리 즐기는 게임으로 럭비와 함께 최고 인기 스포츠 자리를 다툰다.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에서 크리켓은 종교와도 같을 정도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이다.
포맷에 따라 다르지만 한 경기당 가장 짧게는 3시간, 가장 길게 5일까지 지속된다. 경기 방식은 야구와 비슷한데, 내가 느끼기에는 약간 발야구와 비슷했다. 사실 나는 아직 룰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굉장히 느긋한 경기라서 나는 아직 한 번도 끝까지 본 적은 없지만, 남편은 본인이 좋아하는 팀이 경기를 할 때면 잠을 줄여서까지 게임을 시청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도에 크리켓이 퍼진 것은 영국 식민지 시절이다. 그 시대엔 실제로 이런 일까지 있었다. 가혹한 세금을 내라는 영국 총독부 관련 인물이 인도 어느 마을 사람들이 크리켓을 열심히 하는 걸 보고 흥미를 가져 영국 크리켓 팀과 경기를 가지자고 제의했다. 만일 영국 팀이 지면 이 마을 1년 치 세금을 전면 면제하고 반대로 인도 팀이 지면 세금을 2배로 내게 한다는 조건으로. 그래서 벌어진 경기에선 실제로 인도 팀이 이겨 약속대로 1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준 적까지 있다. - 이 내용은 후에 ‘Laggan’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기까지 하였다. 주연은 ‘세 얼간이’ (Three idiots)’으로 유명한 잘생긴 Aamir Khan이 맡았다. 평점도 높고 꽤 재미있던 영화였어서 가끔 지인에게 추천하는 인도 영화 중 하나이다.
크리켓은 인도에선 일종의 자존심이다. 인도-파키스탄전을 할 때면 그 열기는 마치 한일 축구를 보는 것 같다. 인도 크리켓 프로리그(IPL)의 크리켓 선수 연봉이 평균 388만 달러 (한화 약 45억)으로 세계에서 미국 프로농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크리켓을 잘하면 출세길이 열린다’고 말할 정도라니 얼마나 영향력이 큰 지 알 수 있다. (일부 내용 출처 : 나무 위키)
이외에도 인도에서는 미국식 영어가 아닌 영국식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 영국처럼 차 운전자 위치가 오른쪽에 있다는 점, 영국의 대표 음식으로 피시 앤 칩스 다음으로 ‘치킨 티카 마살라’가 꼽힌다는 점 등 인도 제국의 역사가 아직까지 일상에 스며들어 남아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상에 프랑스 식민지의 역사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예로 쉽게 ‘반미(Bánh mì : 19세기 중 프랑스로부터 바게트가 전해져 20세기에 베트남식 샌드위치로 발전)’와 ‘반플랑(Bánh flan : 베트남식 Crème caramel, 베트남에서는 얼음과 함께 먹는 것이 특징이다)을 볼 수 있다.
또한 한국도 슬픈 역사가 있지 않은가, 일제 치하의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일본식 외래어’ (땡땡이, 기스, 노가다, 쓰레빠, 나시 등)를 사용하고 있으며 아직 털어내지 못한 일제강점기의 잔재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고등학생 때 역사(특히, 근현대사) 과목을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에 저항했던 역사 때문이다.
그래서 ‘식민지의 역사’라고 하면 어두운 역사, 끔찍한 과거, 치욕적이었던 시간들만 떠올랐는데, 인도-영국, 베트남-프랑스의 식민지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어 그들의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된 모습을 보면서 역사란 것이 별게 아니고 그냥 우리의 일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에게 그 시기는 외면하고 지워야 할 기억이 아닌 그들에게는 그저 일상에 일어났던 일, 그리고 받아들여야만 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 에드워드 카 (Edward Hallett Carr) -
(+ ) 흥미로운 사실은, 8월 15일 인도는 독립기념일, 한국은 광복절로 공휴일 날짜가 겹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기 때문인 것 같다.
( ++ ) 남편이 전에 크리켓 월드 매치 중 농담으로 한 말이 기억나는데, 영국은 인도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갔는데 크리켓 우승까지 뺏길 수 없다고 하여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