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와 효년 사이의 갈등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나의 버팀목이자 자랑이었고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늘 우리 집이 좋았고, 화목한 집안이라 생각했고 남들은 싸워도 우리 집은 안 싸운다는 그런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의 고민 일부에 가족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려서는 몰랐던 일들을 알게 되어야만 했고, 내 일상에 여유가 없어 엄마의 서운함을 받아주지 못할 때에는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어갈수록 나에게 감정적으로 요구되는 것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집안일을 거들지 않고, 거기서 온 엄마의 현타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살지 않았다면 내겐 필요하지 않은 일들조차 같이 산다는 이유로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저녁 늦게 귀가하는 일에도 일일이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조금은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이런 이유들로 독립을 고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집에 붙어있을 수 있을 만큼 붙어 있어. 나가면 다 돈이고,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게 자취더라"라고 정신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물론 나도 안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생필품 걱정 없이, 매 끼니 걱정 없이, 집안일에 많은 시간을 쏟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거.
그러나 자취 비용은 정신치료 비용이라고들 하는데 절실하게 이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졌다. 엄마의 번아웃을 받아주는 것도, 점점 맞지 않는 생활 패턴들을 이해하고 자식이기에 참아야만 하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떨어져 있을 때의 그 소중함을 경험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여행이나 외박을 제외하면 몇 십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붙어 있으니 서로가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부모님에게 잘해야지 싶다가도 한 번씩 어긋나 버리는 감정들 속에서 못된 마음만 커져가는 기분이다.
이번 달 초, 부동산에 연락처와 원하는 조건들을 전달하고 나오면서부터 드디어 독립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 사실 당장 계산기만 두들겨봐도 한숨부터 나오는 현실에 무섭고 떨리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올해 안에는 무조건 나가기로 결심했다. 나 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