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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dy Jul 10. 2018

영화의 공포, 현실로 이어지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리뷰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나는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2013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결혼한 여성의 45.5%가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있거나, 이미 노출된 경험이 있다.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혼 가정의 절반이 겪는 문제지만, 이에 대한 법적/사회적 대책은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이들은 여성과 어린 자녀들이다. 이들은 장시간 폭력에 노출되어도, 경제적 문제로 이혼은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설사 이혼할 의지가 있더라도 상대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긴긴 소송에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어버리곤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양육권 싸움에 아이들은 정서적 불안정을 일상적으로 감내한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첫 번째 영화인 <아직 끝나지 않았다(Jusqu'a la Garde)>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가정들이 마주하고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도 해결할 의지도 갖지 않는 '가정폭력'을 주제로 삼았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판 포스터 (Image© Allo_cine)

영화는 한 부부의 법정 양육권 다툼으로 시작된다. 판사는 부부의 어린 아들인 줄리앙으로부터 받은 진술서의 내용을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읽어내려가고, 아버지는 아들이 왜 그런 말들을 써놓았는지 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며 짐짓 슬픈 표정을 내비친다. 판사의 지도에 따라, 아내와 남편 각각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들의 가정사는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누가 맞는 말을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난하지만 차분하고 엄숙하게 연출된 이 장면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흔한 가정 다툼을 주제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부부 사이에서 영화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이 마치 누가 더 잘못을 했는지를 따지는 판사의 자리에 선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남의 가정사는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지만, 그 누구도 간섭하기는 꺼리는 문제이다. 연출의 일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철저한 방관자이자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Image© 네이버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주 뒤에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판사의 말을 뒤로 한 채, 엄마인 미리암과 성인이 된 딸인 조세핀, 11살배기 줄리앙은 거처를 옮긴다. 성인이 된 딸은 더 이상 부모의 양육권 다툼에 휘둘릴 일이 없지만, 줄리앙에게는 아직 그럴 자유도, 기회도 없다. 엄마 미리암과 줄리앙은 남편인 앙투안을 피해 아파트를 몰래 구해 들어간다. 하지만 어린 아들을 보겠다는 빌미로 자꾸만 집에 찾아오며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아버지를 엄마인 미리암이 막을 도리는 없다. 줄리앙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억지로 아버지와 만나 친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아버지와 조금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하는 아이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관객은 단번에 이 집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이해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뿐, 달리 방법은 없다. '부부의 일은 부부만이 아는 거니까.' '남의 집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건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여태껏 취해 온 스탠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들을 지켜보며, 피로와 불안감에 찌든 아이가 어서 성인이 되길 빌어줄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 뿐, 달리 방법은 없다.
불안에 찌든 아이가 어서 성인이 되길 빌어줄 뿐이다.

1시간 반 남짓한 러닝타임동안, 영화는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 앙투안이 미리암의 집에 찾아오고, 미리암은 눈치를 보고, 아들인 줄리앙은 겁에 질린 채 아버지에게 열쇠를 돌려받는다. 그런데 집주소를 알리고 싶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치는 줄리앙이 무기력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와 아버지의 차를 타는 장면부터, 방관자로서 영화를 지켜보던 관객의 마음에 묵직하고 답답한 무언가가 들어앉는다. 판결이 나기까지 2주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이 모자를 지켜줄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되어서일까. 아버지인 앙투안의 계속되는 폭력과 집착을 법적으로 증명해야만 이 지겨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처음부터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이 모자에게는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버겁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아들 줄리앙과 아버지 앙투안 (Image© 네이버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고대 비극에 해당하는 현대사회의 이야기가,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가정폭력의 문제라 보았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개인적이고 내밀한 영역으로만 치부하는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가부장적인 모델을 바탕으로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는 감독의 문제의식은 이 영화 전반에서 드러난다. 사회가 개개인의 가정 문제에 어떤 식으로 눈 감고 방관해 왔는지는, 법이 폭력의 희생자들을 대하는 방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의 소유물로만 간주된 채 감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폭력에 노출되는 아이들의 인권은 또한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가. 르그랑의 영화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그래서 더 보는 이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소재를 가지고 단순하고 덤덤하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가정폭력으로 11살배기 남자아이가 죽었다'라거나 '남성에게 이혼을 요구한 아내가 끝내 가정폭력으로 살해당했다'와 같은, 흘러가버리면 그만인 9시 뉴스 기사가 아니다. 아버지의 협박에 하는 수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바꿔주면서 불안에 떠는 아이의 얼굴, 새벽에 집 앞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공포에 질려 아이를 끌어 안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 같은 것들이다. 


이 영화가 스릴러 같다면,
그건 이런 상황에 처한 여성들과 아이들의 일상이 스릴러 같았기 때문이다.

- 자비에 르그랑 인터뷰(cine21)

영화가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 아내와 아들이 사는 집주소를 알아낸 앙투안은 새벽에 말도 없이 이들의 아파트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아들을 끌어안고 혹시나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아챌까봐 불도 제대로 켜지 못하는 미리암은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이와중에 남편은 집총을 가져다가 문에다 대고 쏘기 시작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지만, 앞집에 사는 할머니의 신고로 경찰이 그를 체포하러 온다. 하지만 경찰이 오기까지 욕실에 숨어 덜덜 떨 수밖에 없는 모자를 보면서, 관객은 이미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신고한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경찰을 탓하며, 영화가 제발 끝나기를 바라며, 뒷짐을 지고 서서 구경만 하던 우리는 비로소 영화 속에 들어앉아 영화 밖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미리암의 아들 줄리앙 (Image© 네이버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무단침입한 남편을 경찰이 끌어내고,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는 미리암과 어린 아들을 먼 발치서 바라보는 이웃집 할머니의 시선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 폭력의 서사에서 제대로 해결되거나 담판 지어진 것은 어느 것도 없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한국어판 제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인 것은 어쩌면 평온하고 지루하게 시작해서 스릴러로 막을 내린 이 영화가 현실의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남편인 앙투안은 금방 풀려날 것이고, 아내인 미리암과 그의 어린 아들은 한동안 언제 닥칠지 모르는 폭력의 그늘에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번엔 운이 좋아 경찰이 빨리 왔지만, 법적으로 이들이 처한 현실을 증명해내지 못해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정말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가정폭력의 문제가 개인적이고 내밀한 가정사의 일부로만 여겨진다면, 법이 가정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끌어안지 않는다면, 그리고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데에만 급급한 당신이 이웃의 소란에 눈과 귀를 닫는다면, 이 영화가 전해주는 공포는 오늘도 또 다른 이의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영화는 막을 내렸지만, 현실의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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