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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dy Jun 18. 2018

"이 시대의 여성을 봐요."

유쾌한 페미니즘 영화 <현모양처(Potiche)>

어째서 늘 'femme au foyer(팜므 오 푸아이예)'만 있는 거야? 
'homme au foyer(옴므 오 푸아이예)'는 없잖아.


프랑스어에는 가정주부를 뜻하는 단어로 'femme au foyer(가정주부)'라는 단어가 있다. 반대로 집에 있는 남성을 뜻하는 'homme au foyer'라는 단어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가사와 육아는 늘 여성의 몫이었기 때문임을,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여성 또한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 또한 이전보다 조금씩 상승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 또한 경제적 지위를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이 아직까지도 여성에게 전적으로 더 많이 지워지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사회는 점차 발전하고 변화해 나가고 있지만, 여성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편견과 불필요한 차별은 이전과 다름 없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1970년대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프랑스만의 화법으로 재미있게 그려낸 영화 (Image©Allo_Cine)

프랑수아 오종(François Ozon)의 작품 '현모양처(Potiche)'는 이처럼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유쾌하게 받아치는 페미니즘 영화다. 기존의 보수적 사회상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의 변화된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1970년대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수잔(Suzanne)이라는 한 여성이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프랑스만의 화법으로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유명 배우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가 맡은 주인공 수잔은 아버지로부터 우산 공장을 물려받았지만, 남편에게 경영을 맡기고 집에서 남편에게 내조하고 아이들을 키워낸 전형적인 가정주부 캐릭터다. 물려받은 공장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하며, 아침에는 조깅하고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며 동시에 딸에게는 '여성다움'을 강조하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늘 온화하고 풍요로운 마음씨를 가진 수잔과는 달리, 반면 남편인 로베르(Robert)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항상 공장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직원들을 휘어잡기 바쁜 로베르는 결국 노조 문제로 인해 어느날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결과를 맞고 만다. 곧이어 신경성 스트레스로 몸져 누운 남편을 대신해, 변호사는 부인인 수잔이 잠시 동안만이라도 경영을 대신 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한다. 수잔이 세상으로 나오는 출발점이다.


(Image©Allo_Cine)


그러나, 제안을 망설이는 수잔에게 돌아오는 주위 사람들의 날선 편견들은 보는 이마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머니가 경영을 한다고요? 차라리 엄마는 아버지 옆에 앉아서 병간호나 하는 게 나을 거예요." "제게 최악은 엄마처럼 되는 거예요. 엄만 그냥 집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수잔의 경영 방식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전환점이 된다. (Image©Allo_Cine)

얼떨결에 공장 경영직을 대신 하게 된 그녀.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수잔의 경영 방식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전환점이 된다. 남편의 강압적인 경영 방식과는 정반대로, 수잔은 노조 직원들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그들의 비판과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며 함께 가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직원들은 점차 수잔을 신뢰하게 되고, 남편인 로베르와 내연 관계에 있었던(정확히 말하자면 끊임 없이 성추행과 차별을 당해왔던) 그의 비서마저도 그녀의 편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녀의 방식은 모두의 편견을 깨고 완전히 성공했고, 로베르가 경영하던 시절에 비해 공장은 15%나 높은 수익을 냈다. 이전과 달라진 것 하나 없이 3개월만에 돌아온 남편을 향해 수잔이 하는 말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 

여기 사장이 누구죠? 나예요.

수잔은 시장 선거에서도 승리한다. (Image©Allo_Cine)

갈 곳을 잃은 로베르는 사장직을 빼앗길까 두려워 딸인 조엘(Joelle)에게 공장 내 자리를 하나 마련해주겠다며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꼬드긴다. 결국 수잔은 다시금 로베르에게 사장직을 넘겨주게 되지만, 아들인 로랑(Laurent)의 지지를 받으며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다. 끝은 뭐 굳이 말할 필요 있을까? 수잔은 그녀의 첫사랑이자 한때는 법적 조력자였던 모리스(Maurice)마저 제치고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참 청량한 결말이다.


영화의 방점은 수잔이 어머니인 동시에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Image©Allo_Cine)

영화의 시작에 비해 결말이 갑자기 거대해진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주인공은 수잔이 주위 사람들의 온갖 차별성 발언을 헤치고 나아가는 과정은 가히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내의 아버지로부터 공장을 물려 받게 된 남편은 무법자마냥 공장은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서슴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비롯한 폭언을 내뱉고, 정작 상속자이자 아내인 수잔의 의견은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당신한테도 의견이란 게 있어?"라고 말하는 남편을 향해 아무 말도 못한 채 얼버무리는 수잔의 모습은 부당함을 넘어서서 애처롭기까지 하다. 동시에 정성들여 길러낸 아이들로부터 그녀는 "엄마처럼 사는 게 저한텐 최악이에요"라는 말을 듣는다. 생을 바쳐 가정에 헌신했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 여성은, 한 순간에 불필요하고 시끄러운 존재로 낙인찍혀 버린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바로 여기, 수잔이 어머니인 동시에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내가 왜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사과해야 하죠?
맞아요. 전 여자예요.
사람들이 좋든 싫든 전 여자니까요.
(Image©Allo_Cine)

가부장제의 수호자였던 어머니가 페미니스트라니, 언뜻 보면 굉장히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조합은, 영화 속 수잔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다.  대부분의 삶을 가정에서 보내왔던 수잔이라는 여성이 어떻게 해서 사회로 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과연 그녀를 곱게 내버려두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녀의 딸이, 자신을 바라보며 혐오스러운 시선을 내비칠 때, 혹은 공장 경영을 맡게 된 그녀가 남편에 비해 그 어떤 능력도 뒤떨어지지 않음에도 "저는 단지 여성일 뿐이지만..."이라는 편지를 써야할 때,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은 과연 사소한 것에 불과할까. 수잔이 만약 아버지로부터 공장마저 물려받지 못했다면, 혹은 우연히 그녀의 남편이 경영직 자리를 비우는 일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게다가 70년대와 80년대라는 사회적 과도기를 그녀가 지나오지 못했다면, 과연 그런 조건들마저 없었다면 수잔이 부엌에서 나와 그녀의 능력을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질 수 있었을까. 프랑스만의 유쾌한 연출로 한편의 콩트처럼 시작한 이 영화가 이토록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건 단지 영화만을 탓할 건 아닐 것이다.


다양한 장면에서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엿볼 수 있는 영화 '현모양처(Potiche)' (Image©Allo_Cine)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는 단순히 주인공인 수잔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로베르의 비서가 계속해서 로베르에 의해 성차별과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이나, 남편과 이혼하겠다던 딸인 조엘이 아이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는 장면, 혹은 수잔의 아들인 로랑이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칭하면서도 수잔에게 차별적인 말들을 서슴없이 꺼내는 모습 등 다양한 순간에서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영화 '현모양처(Potiche)'는 1970년대의 한 사회의 단면을 생동감 있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여기서 얼마큼이나 달라졌는지, 혹은 정말로 달라지긴 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거울이 된다. 


- 오후에 TV를 보라고?
-'이 시대의 여성'을 봐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수잔이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어 소감을 말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는 로베르 부녀의 모습이다. 사람들 앞에서 수많은 지지를 받는 수잔을 보며 딸 조엘은 "엄마가 결국 나한테 현모양처를 물려준 거네요"라 말하는데, 이에 "그게 꼭 바보 같은 건 아냐"라며 아버지인 로베르가 답한다. 짤막하게 지나가는 이 부녀의 대화는, 수잔의 화려한 결말 뒤에 하마터면 가려질 뻔한 중요한 메세지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영화는 오랜 시간 가정주부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인 것이지, 그 일을 하고 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모두가 다 하릴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여성들이여, 다 같이 집밖으로 나가자!"가 아니라 "여성의 일을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그들에게 차별의 잣대를 덧씌우지 말자"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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