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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ny Dec 03. 2020

최소라를 망치러 온 구원자, 루이비통

루이비통에 버림받고 세계적인 탑모델이 되다



2022. 04. 04 업데이트

이 글 토대로 유튜브 및 2차 컨텐츠를 제작하는 여러 사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제 글을 컨테츠 제작에 참고하거나 인용할 때는 사전 협의가 이상적이나,

부득이할 경우 브런치 글 링크 및 제 이름을 포함한 출처를 명확하게 남겨주시기를 바랍니다.



1편

https://brunch.co.kr/@yennysarchive/11


1편에서는 해외 패션 시장에서의 탑모델의 기준과 최소라의 런웨이 커리어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2편에서는 최소라의 모델 커리어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브랜드, 루이비통과 최소라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루이비통과 최소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선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부터 알아야 한다.

2014년부터 루이비통을 맡고 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2015 루이비통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최소라를 해외에 데뷔시키며 최소라의 해외 커리어의 문을 활짝 열어준 아주 고마운 디자이너. 하지만 니콜라스는 게스키에르는 한국 패션 팬들에게 개새끼에르라고 불렸다. 왜일까. 니콜라스는 최소라를 좋아했지만 굉장히 변덕쟁이 디자이너였다. 니콜라스의 심장엔 방이 아주 여러 개였는데 당시 니콜라스가 최소라보다 더 좋아했던 아시안 모델이 있었다.


바로 분홍 머리 아시아계 호주 모델, 페르난다 리다.

호주 모델 페르난다 리 (FERNANDA LY)

페르난다 리는 최소라와 비슷한 시기 데뷔하여 2015-16년도 루이비통 캠페인 메인 모델, 패션쇼 오프닝 모델 등등 루이비통 월드와이드 독점 모델로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등의 니콜라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 당시 니콜라스의 최애 중 최애라고 할 수 있다. 페르난다를 메인 센터에 세울 때 최소라는 사이드에 배치했고, 페르난다 리는 패션쇼에서 가장 중요한 오프닝 모델로서 루이비통 쇼의 시작을 열었다. 당시 최소라는 페르난다 리에 가려 니콜라스에겐 2인자였다. 아시안 모델들 중 아끼는 게 아니라, 그냥 모델 전체를 통틀어서 니콜라스의 원탑 최애 모델이었다. 그리고 최소라는 니콜라스의 여러 차애 모델 중에 한 명이었다. 


개인적으로 난 당시 루이비통의 무드와 페르난다 스타일이 너무 안 어울러서 두 조합을 안 좋아했었다. 하지만 니콜라스의 페르난다 처돌이 짓은 계속되어 2016년 루이비통 전시인 시리즈4 캠페인에서는 페르난다를 메인 모델로 세우는 것도 모자라 페르난다를 닮은 핑크 머리의 게임 캐릭터까지 캠페인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당시 패션 팬들의 반응이 아주 안좋았고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천재 디자이너 제스키에르의 건축적이고 구조적이고 완벽한 2000년대 발렌시아가 시절의 패션쇼를 보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그를 굉장히 존경했지만... 이땐 제스키에르가 정말 한심한 오타쿠처럼 보였다.


2016년 루이비통 캠페인 모델인 게임 캐릭터
핑크머리와 함께 일본 스타일의 사복으로  유명했던 페르난다 리


그리하여 최소라의 스타일변화가 온 것도 이 시기였다.

사실 페르난다 리의 영향인지, 무대 위에서가 아닌 평소 스타일 또한 모델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일본 만화 <나나>를 좋아한다던 개인적인 패션 취향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수코 때, 해외 모델 데뷔 시즌까지만 해도 평범한 생머리, 밋밋한 전형적인 모델 오프 듀티 룩은 때려치우고 머리도 더 층 내서 자르고 살도 엄청 빼고 빡쎈 고딕, 펑크, 스트릿, 블랙 위주의 사복을 입기 시작했다. 사실 코스프레에 가까운 일본 스트릿 스타일로 변화했다.

사복 스타일 변화 전
최소라 사복 스타일의 과도기...
그 이후 완성된 사복 스타일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와 최소라


그래서 페르난다 때문에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개새끼에르"라고 불렸냐, 묻는다면 아니다.

좋아하는 모델을 뮤즈로 삼고 마음껏 총애하는 건 디자이너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니콜라스 제스키에르가 왜 똥차인지, 최소라가 왜 독기 품고 다이어트를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다른 이유가 있다. 제스키에르가 최소라를 맘에 들어하자 최소라는 루이비통 15크루즈 시즌에 서면서 해외 데뷔를 했고 페르난다만큼은 아니더라도 제스키에르의 사랑을 계속 받으며 15 S/S 파리 패션 위크 독점, 15F/W 시즌엔 루이비통 월드와이드 독점으로 패션쇼를 서기로 계약을 하게 된다. 


세계 4대 패션위크는 뉴욕-런던-밀란-파리 순서인데 최소라는 월드와이드 독점 걸려서 파리 패션위크 루이비통만 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15 F/W 쇼 하루 전에 최소라는 살이 쩠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잘렸다. (실제로 몸무게가 늘지는 않았지만 루이비통 측이 부어 보인다며 쇼 하루 전날 저녁에 캔슬했다고 한다.) 패션위크에서 가장 마지막에 하는 파리 패션쇼, 그중에서도 끄트머리에 하는 루이비통쇼 독점 때문에 패션위크 내내 다른 런웨이는 서지도 못했는데 루이비통이 최소라를 팽한 거다. 신인 모델은 여러 런웨이에 서며 얼굴을 알려야 하고, 특히 최소라는 런웨이에 욕심이 많고 이른바 '해외에서 먹히는 얼굴'이기 때문에 루이비통 독점만 아니었음 다른 큰 브랜드에 캐스팅(오디션)에 갔을 것이고 15 F/W 시즌에 수많은 브랜드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비통의 캔슬로 인해 신인 모델의 황금 같은 한 시즌을, 그것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최소라 같은 황금 신인이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린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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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페르난다와 제스키에르의 영향으로 산독기 독기 독기야를 품고 돌아온 16 S/S 시즌,

최소라는 179cm/ 45kg 극한의 다이어트 후 컴백한다.

다이어트 전) 15 S/S  & 다이어트 후)16 S/S

15 S/S 루이비통 런웨이 사진과 16 S/S 생로랑 런웨이 사진을 비교하면 확 달라진 걸 느낄 수 있다.

평소 179cm에 52kg 정도였던 최소라는 45kg로 감량 후  패션위크 열리는 4주 동안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고 물과 차만 마시는 말도 안 되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런웨이에 섰다. 그렇게 최소라는 사이즈도, 스타일도, 분위기 달라진 모습으로 16 S/S 시즌을 보낸다. 극한의 다이어트로 면역력은 바닥을 치고 하루에 10번씩 쓰러졌지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소라의 커리어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최소라가 지금 특유의 서늘한 느낌을 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슬프지만 패션계가 얼마나 마른 모델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마른 몸을 유지하며 전 시즌 잘렸던 루이비통도 16 S/S 시즌에 복직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변덕쟁이 제스키에르는 슬슬 페르난다를  자신의 최애 모델 자리에서 팽하고 최소라를 캠페인 시티 독점 모델로 묶고 파리의 다른 브랜드와 작업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는 본격 루이비통걸로 만들었다. 아주 루이비통 공무원으로 제스키에르의 사랑을 받으며 16F/W~ 18F/W까지 무려 다섯 시즌 연속 루이비통 캠페인을 함께했다. 그 이후에도 루이비통측에선 독점 계약을 연장하고 싶었지만 다양한 브랜드에도 서고 싶었던 최소라가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최근 2020 F/W 루이비통 캠페인에 오랜만에 다시 등장하며 더이상 루이비통 공무원은 아니지만 여전히 루이비통의 사랑은 받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루이비통 런웨이 공무원
루이비통 공무원 시절 최소라의 캠페인.


루이비통 2020 F/W  캠페인


아무튼 이런 히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패션팬들 사이에선 제스키에르가 최소라한테는 똥차 혹은 영화 <아가씨>들 속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같은 존재가 됐다. 오죽하면 별명이 개새끼에르일까. 해외 패션을 꾸준히 보면서 의도치 않게 최소라의 패션 커리어를 전부 지켜본 사람의 입장에선, 최소라의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 혹은 최소라의 모데루인생을 구원하러 온 변덕쟁이 제스키에르 그런 느낌이다.

루이비통으로 데뷔도 시켜주고 독점도 걸었지만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게 한 장본인도 제스키에르.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으면 최소라도 그렇게까지 살 안 뺐을 거고 어쩌면 그렇게까지 독기 품고 커리어에 욕심내지 않았을 거고 어쩌면 이렇게까지 세계적인 탑모델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최소라의 런웨이
생로랑 런웨이에서의 최소라

아, 해외에서 열심히 모델 커리어를 쌓던 최소라의 장애물이었던 건 루이비통뿐만 아니라 비자 문제도 있었다. 패션 위크 기간에 에이전시의 실수로 워킹 비자가 나오지 않아 뉴욕, 런던 패션 위크 전체와 밀란 패션위크 초반 런웨이 못섰던 적이 있었다. 그 전엔 루이비통한테 캔슬당해서 시즌을 날려먹은 것도 억울한데, 그다음엔 비자 때문에 패션 위크 절반 이상을 날려먹었다. 말도안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보통 모델 같으면 여기서 해외 진출 포기하고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을 텐데도 포기하지 않고 다이어트와 독기와 함께 존버했다. 최소라는 비자가 발급되자마자 밀라노 패션위크의 가장 큰 쇼인 프라다 런웨이에 딱! 서면서 늦었지만 임팩트있게 시즌을 시작해 그 이후 밀란, 파리에서 하는 빅쇼 런웨이를 휩쓸어버렸다. 거의 CJ 배급 영화급 서사를 가진,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최소라 해외 모델 커리어 초반 이야기다.


하나 덧붙이자면 루이비통처럼 캠페인을 찍진 않지만 런웨이에는 꾸준히 서는 브랜든데

생로랑x최소라 조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소라 베스트 이미지는 아니지만 최소라 다이어트 후 분위기와 바디가 생로랑 전 디자이너 에디슬리먼과 현 디자이너 안토니 바카렐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피규어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대충 개말라인간을 좋아한단 얘기다.)


내가 좋아하는 19 S/S 끌로에 런웨이 최소라
루이비통 독점이 풀리고 2019 S/S 시즌엔 다양한 런웨이를 누볐다.













최소라와 버버리 그리고 프라다
버버리 19 S/S 캠페인
버버리 2019 F/W 쇼 후 리카르도 티시의 최애 모델들 단체샷

페르난다가 루이비통과의 계약 종료 후 패션계에서 조용히 사라진 것처럼 최소라도 루이비통과의 독점 계약이 끝나자 일이 뚝 끊겼느냐? 노논노노노노

19 S/S 부터 새로 버버리에 들어온 전 지방시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의 총애가 급 쏟아지면서 버버리 걸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독점이 풀렸던 2019 S/S 시즌부터 버버리, 프라다, 페라가모 등 다른 캠페인에도 등장하며 루이비통 독점에 가려져있던 다른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맘껏 받게 된다. 심지어 19 F/W 버버리쇼에선 오프닝 모델로 서게된다. 버버리 19 F/W는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컬렉션이었다. 리카르도 티시의 버버리 전임 첫 시즌엔(19 S/S) 자신의 색깔을 살리기보다 버버리라는 유서가 깊은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해석하는데 더 초점을 맞춘 옷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인 19 F/W엔 좀 더 욕심을 낸 티시만의 스트릿 무드를 가미한 버버리를 보여주기 시작해 굉장히 의미있는 시즌이었다. 그런데 버버리라는 큰 브랜드의, 그것도 가장 의미있는 시즌에, 그것도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룩(오프닝 룩)을 입고 나오는 오프닝 모델을 했다는 거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실제로 리카르도 티시는 한국 매거진에서 최소라를 모델로 버버리 화보를 찍을 때 직접 관여해서 소라에게 이걸 이걸 입혀라ㅡ라고 지정하며 챙길 만큼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루이비통과의 기나긴 독점 계약이 끝나고 이 땐 정말 제스키에르라는 똥차 가고 티시라는 벤츠가 온 느낌이었다.

최소라의 버버리 화보





그리고 2019년 시즌, 최소라는 버버리뿐만 아니라 프라다걸이 되기도 했다.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의 최애 모델 리스트에도 최소라가 있었던 것인지 루이비통 독점 계약이 끝난 19 리조트 시즌 캠페인에 최소라를 출연시켰다. 프라다는 캐스팅 과정이 굉장히 까다로워서 프라다 쇼에 서는 순간 모델로서 패션계에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델들이 가장 서고 싶어 하는 런웨이 쇼다. 그런 프라다쇼에 최소라는 루이비통 독점이 걸렸던 시즌과, 한 시즌 빼고는 꾸준히 프라다 런웨이도 섰고, 최근까지도 꾸준히 프라다의 부름을 받고 있다.

 프라다 쇼에도 꾸준히 섰던 최소라
프라다 2019 리조트 캠페인



1번째 옷의 상의 + 2번째 옷의 하의를 합쳐 최소라만을 위해 프라다가 만든 검정 웨딩드레스

심지어 작년 최소라가 발리에서 결혼할 당시 입었던 검정색 웨딩드레스도 프라다가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평소 블랙을 좋아해서 결혼식 때 블랙을 입고 싶어 했던 최소라를 위해 프라다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직접 2019 S/S 컬렉션에 나왔던 두 가지 드레스를 합쳐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줬다고 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만들어주는 세상에 하나뿐인 드레스. 이보다 더 의미 있는 드레스가 있을까.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최소라의 하이패션 커리어의 대략적인 요약이다. 중요한 브랜드와의 관계는 언급했지만 이외의 자잘한 커리어들은 (펜디, 디올, 휴고보스, 캘빈클라인, 코치, 나스, 톰포드 등등) 너무 많아서 가볍게 패스했다.

앞선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최소라는 런웨이를 정말 잘한다. 최소라가 워킹을 잘하는 건 말하기 입 아플 정도다. 비틀비틀 아니면 뚝딱이처럼 걷는 서양 모델들 다 쳐부수러 오는 것처럼 걷는 최소라의 워킹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많은 사람들이 최소라가 걸어 나올 땐 "모델이 아니라 옷만 보인다"라고 말한다.

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최소라를 자신의 브랜드 무대에 세우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왜 최소라는 탑모델로서 편하게 단일 브랜드 독점으로 런웨이에 서지 않고 아직까지도 한 시즌에 수십 개의 쇼를 서며 굳이 힘든 일을 자처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런웨이 하는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런웨이에서 가장 빛나고 열정 넘치는 최소라.


+ 2021년 1월 기준 업데이트를 조금 하자면,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정도로 커리어의 최정점을 찍은 줄 알았던 2019년을 지나 2020년도에도 최소라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전년도 보다 더 도약했다. 그리하여 모델 랭킹 사이트, 모델스닷컴이 선정한 2020년 최고의 모델에 선정되었다. 그리고는 따로 순위가 매겨지지않는 (더이상 순위가 무의미할 정도로 업계에서 큰 커리어를 쌓았다는 상징의) 모델스닷컴의 “아이콘 모델"로 분류되었다.  













매거진 화보 속 최소라
국내외 매거진 화보와 커버















참고)

Nicolas Ghesquière의 원어 발음은 제스키에르에 가깝지만 루이비통 전임 초반 당시까지 한국어 표기는 게스키에르였기 때문에 혼용하여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대부분의 매체가 원어에 가까운 '제스키에르'라고 표기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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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04 업데이트

이 글 토대로 사전 협의없이 유튜브 및 2차 컨텐츠를 제작하는 여러 사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사전 협의된 유튜브 어바웃 셀럽 채널을 제외한 타 채널은 컨텐츠 설명란에 브런치 링크 및 제 이름 표기 요청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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