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야키 사세요! 도라야키 주세요!
도라하루 길가에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다. 과거 술집에서 싸움을 말리다가 주먹을 휘둘러 한 사람에게 심한 장애를 남긴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 그는 이곳에서 도라야키를 만들어 팔며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낸다. 도라야키에 올릴 단팥(앙)을 만드는 데 여러 번 실패했기 때문에 공장에서 만든 기성 제품을 사용한다. 작은 가게에 손님이라고는 그나마 수다쟁이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벚꽃 흩날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메모를 보고 작은 가게를 찾아온 도쿠에(키키 키린). 어릴 때 병(한센병)을 앓아서 그녀의 손은 굽은 채로 굳어 있다. 단팥을 만들 때 단팥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그녀는 센타로에게 자신만의 단팥 제조 비법을 알려준다. 한 평생을 일정 지역(젠쇼엔 요양소)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살아가던 도쿠에와 스스로 사회로부터 고립을 선택한 센타로는 단팥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동안 서로의 속내를 말없이 풀어나간다. 도쿠에의 병이 알려지면서 도라야키 가게는 위기를 맞게 되고, 계절이 지나 도쿠에를 찾아간 센타로는 테이프에 녹음된 그녀의 마지막 음성을 듣는다. 다시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공원에서 센타로는 자신만의 도라야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놓는다. 그리고 용기 내어 힘차게 소리를 지른다. 도라야키 사세요! 도라야키 사세요!
도쿠에는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요양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졌지만 낳지 못한다. ‘나도 햇볕이 드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소리라도 쳤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너무나 조용하다. 세상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지만 나는 세상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듯 단팥을 만들며 팥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땅에서 나서 비바람을 견디며 자신의 손에까지 오게 된 팥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젊은 시절과 같은 슬픈 눈을 한 센타로에게 끌린다. 타인의 몰이해 속에 짓밟힐 때도 있지만 지혜를 발휘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생도 있다고 알려준다. 센타로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도록 삶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어머니의 이야기조차 들어줄 여유가 없었던 센타로는 단팥을 만들면서 점차 주변에 귀 기울인다. 세상을 좀 더 보고 세상을 좀 더 듣고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충분한 의미가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단팥을 만드는 과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하얀 김이 렌즈를 가득 채울 때는 달달한 냄새를 맡는 듯하고 팥을 씻는 소리, 뽀글뽀글 단팥이 익어가는 소리는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먼 곳을 응시하는 센타로의 표정, 멍하니 단팥이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도쿠에의 표정은 무료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 모습과 어울린다. 햇살이 쏟아지는 숲 속에서 바람 소리를 듣는 뒷모습이나 정신을 집중하고 입을 약간 벌린 채 도라야키 빵을 만드는 모습만으로도 키키 키린의 연기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조금만 감상을 덜어냈더라면 담담하게 영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을 듯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도라야키 팥만큼, 날리는 벚꽃 잎 몇 개 정도의 환상적인 화면이나 상투적 표현을 덜어냈더라면 어디선가 본 듯한 그저 그런 인생 이야기가 아닌 새롭게 그들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도라야키: 반죽을 둥글납작하게 구워 두 쪽을 맞붙인 사이에 단팥(앙)을 넣은 일본 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