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난다. 엄마답다. 오고 싶으면 왔다가 가고 싶으면 가신다. 부산에 살고 계시니 딱히 아는 사람도 없고 서울 생활이 답답하단다. 3주 후 엄마는 서울에 왔다. 엄마와의 여행 준비는 신경이 쓰인다. 여행 장소와 음식, 숙박 등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두고두고 투덜거린다. 엄마 생각을 미리 얘기하시느냐? 그것도 아니다. 점쟁이가 되어 잘 예측해야 한다. 가만... 선뜻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 초록 기운이 팔팔한 전나무 숲길을 걷기에는 이미 늦었다. 울긋불긋 단풍잎은 거의 다 떨어졌다. 내년에 가자고 할까?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시기라고 우스갯소리 했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적광전’이라고 적힌 현판 아래로 엄마는 혼자 들어가신다. 누가 부르지 않는 한 나는 법당에 들어가지 않는다. 엄마가 기도하는 동안 나는 법당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그날 이후로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듯하다.
마당 한가운데 황토색 옷을 입은 이방인들이 보인다. 예전에 내가 입었던 옷이랑 비슷하다. 머뭇거리는 폼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시선을 따라가 본다. 석탑 주변으로 탑돌이 하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팔각 구층 석탑 끝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한 석조 보살 좌상이 보인다. 월정사는 6•25 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돌로 만들어진 석탑과 석조 보살 좌상은 화마를 견딘 채 긴 시간을 묵묵히 살아냈다. 석조 보살 좌상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두 손을 꼭 맞잡고 있다. 땅에 닿은 무릎이 시려 보인다. 석탑을 향해 꿇어앉아 기도하는 간절함에 불운도 비껴간 건가?
바람이 차다. 전화기를 계속 노려봤지만 울리지 않는다. 엄마는 아직까지 법당에 계신 것이다. 푹신한 방석은 깔고 앉았는지, 코끝은 시리지 않는지 걱정된다. 사람들이 들고나는 문 한쪽 끝에 꼿꼿하게 앉아 계신다. 손바닥이 마주 보도록 두 손을 붙이고 중얼중얼 기도를 한다. 배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다. 자세를 곧추세운다. 발끝에 힘을 주고 무릎을 세운다. 일어선다. 마주한 두 손을 가슴에 품은 채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힌 후 이마를 땅에 붙인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다. 한참을 웅크리고 계신다.
엄마는 절을 하면서 아버지를 기억한다. 나는 아버지가 좋아했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엄마 방식대로, 나는 내 방식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멍하게 하늘만 쳐다봤다. 엄마가 보는 세상은 둥근데 내가 보는 세상은 네모였나. 네모난 세상으로 보니 세상사가 모나게 보였던 것이었나.
녹음이 우거지고 단풍으로 물들었던 전나무 숲길은 마른 몸체를 드러냈다. 스산하다. 왕복 2 km의 전나무 숲길을 걷는 데는 30분 정도 걸린다. 1시간이 넘도록 차가운 법당에 있었던 엄마다. 엄마가 그냥 가자고 하면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엄마, 추운데 괜찮겠나?
엄마의 대답이 단단하다.
춥기는 뭐가 추워. 걷기 딱 좋네. 여기 봐라! 벌써 살얼음이 얼었다. 하하. 개나리가 계절도 모르고 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