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에서
가끔 정전이 될 때가 있었다. 펑 소리를 내며 TV가 꺼지면서 집안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어스름한 빛만 남기고 동네 전체가 어두컴컴한 세계로 바뀌기도 했다. 차단기만 내려졌다면 다행히 금방 전기가 들어오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씩 깜깜한 밤을 보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집안 어딘가에 있는 양초를 꺼내 와서 방과 화장실에 하나씩 켜 두셨다. 지지대 없이 세워놔도 흔들리지 않게 빛을 낼 수 있는 굵고 두툼한 양초였다.
중학교 수련회 마지막 날, 선생님은 작은 초를 하나씩 쥐여주면서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잘못한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보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종이컵에 끼워진 가는 양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은 가라앉으면서 뭔가 잘못한 일들은 하나둘씩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 친구들이 울어서 그렇다고 변명하면서 나도 훌쩍였다.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매번 잘한 일도 없는 것 같은 애매한 기억 속에서 촛불은 흔들렸다.
5월의 그날은 예전 양초가 생각났다. 부처님은 날도 참 좋을 때 골라서 오시는 듯하다.
엄마와 나는 이른 새벽에 낙산사에 들렀다가 곰배령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2017년에 서울 양양 고속도로가 전면 개통되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낙산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차가 막히지 않는다면 2시간 정도다. 2005년에 양양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낙산사로 옮겨 붙어 큰 화재가 났었는데, 그때 목조 건물 대부분이 불탔고, 비좁은 전각 속에 갇혀 있던 동종(銅鐘)은 허무하게 녹아내렸다. 남의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간다. 지금은 화마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고, 낙산사 주변으로는 소나무 숲이 깔끔하게 조성되었다. 예전과 같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생태계로 복원되려면 최소 100년은 걸린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장이었다.
바다 쪽으로는 해수 관음상이 자리한다. 2005년 화재 당시 걷잡을 수 없이 뻗은 불길은 해수 관음상까지 덮쳤다. 두꺼운 돌 모서리를 일부 태우고 바람에 날려 버릴 만큼 불길은 거셌는데, 해수 관음상은 거의 상처를 입지 않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점점 자신에게 번져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혹시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바다로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외롭게 버틴 건가... 나로서는 그 아찔한 외로움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크고 상처 입지 않은 두툼한 양초를 골라, 가족들 이름을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메모지가 붙은 둥근 원형 초에 펜으로 글씨를 쓰려니 자꾸 삐뚤어진다며 속상해하셨다. 맨 처음 쓴 엄마 이름은 그렇다고 치고, 그다음부터 나오는 내 이름부터는 쓰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투덜거리시면서 한 획 한 획 그었다. 양초에 불을 붙이고 물이 깔린 유리장 안에 조용히 넣으면서 중간에 꺼지지 말라고 당부를 한 후 간단히 합장하셨다. 해수 관음상 주변을 몇 번 돌고 나서 복전함에 불전을 넣고 기도를 하셨다. 바깥이어서 기도 시간이 길지 않았다.
걱정이 쌓일 수가 없는 곳이네.
절에서 바다 쪽으로 불어 가는 바람을 맞으며 엄마는 말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들이 항상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다. 낙산사 옛터 위에 새로운 절이 지어졌어도 우리는 그 절을 낙산사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굳이 옛 모습이 아니더라도 과거 그 모습을 여전히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절에는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대부분 나의, 당신의 엄마일 가능성이 높다.
2018. 0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