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학창 시절 얘기다. 또래보다 공부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반대로 공부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싫었다. 싫은 건 확실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친구들을 성적으로 줄을 세웠다. 저 아이는 몇 등, 저 아이는 끝에서 몇 등...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에는 학교 출입문 쪽에 전교생이 다 볼 수 있도록 점수와 전교 등수를 공개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렇게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학교가 하는 일이니까 당연한 줄 알았다. 공부 잘하던 친구는 원하는 성적이 나왔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상상하면 기분이 좋고 성적도 오른다고 했다. 나도 따라 했지만 성적은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라고 했다. 제대로 못 따라 하니 나름의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운동을 하기 전에 먼저 운동 과정을 머리로 상상해보라고 했다. 스쿼트를 할 때는 무릎이 엄지발가락 앞쪽으로 나가지 않게 하고 허벅지와 무릎이 90도를 유지하라고 했다. 등과 엉덩이, 허벅지가 당기는 느낌이 와야 제대로 된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트레이너의 바람만큼 운동 동작은 아름답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트레이너는 고개를 갸웃했다. 본인은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운동 효과가 더 상승했는데, 이 회원은 운동 신경이 없나...라는 트레이너의 눈빛을 읽었다.
남이 하는 행동으로 나를 돌아볼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에게 알려줘야 할 때, 누군가를 가르쳐야 할 때 비로소 이미지 트레이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일정 수준까지 훈련을 통해 실력을 쌓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주변 환경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실력을 쌓는 게 먼저였다.
성적을 올리고 싶으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장소로 나를 밀어 넣고 공부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멀리 했어야 했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끄고 학교나 독서실에서 코 박고 공부를 해서 실력을 쌓은 다음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면, 어쩌면 성적 상승효과를 보지 않았을까.
운동을 해야만 하는 환경 속에 나를 빠뜨리고 이번 주는 10개씩, 다음 주는 20개씩 하면서 내 몸과 싸워가며 실력을 쌓은 다음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하고 있는 데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도 실력이 정체된 것처럼 느낄 때에도 나 스스로를 믿고 계속했으면 어땠을까. 그 일을 해야 하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조카가 낑낑 대면서 힘들어한다. 공부를 하고 있는 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마음만 급한 것 같다. 자신감 뿜뿜 조카였는데, 그 많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해 봤더니 잘 안되더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방이 막힌 벽처럼 느껴지고 울고 싶어 지기만 할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믿을 건 그 장소에서 버티면서 노력하는 나 자신 뿐이라고 말하면 꼰대라고 하려나. 꼰대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말로는 못하겠다. 라떼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