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타는 여여사 Sep 25. 2020

진짜 이미지 트레이닝

일상 이야기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학창 시절 얘기다. 또래보다 공부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반대로 공부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싫었다. 싫은 건 확실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친구들을 성적으로 줄을 세웠다. 저 아이는 몇 등, 저 아이는 끝에서 몇 등...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에는 학교 출입문 쪽에 전교생이 다 볼 수 있도록 점수와 전교 등수를 공개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렇게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학교가 하는 일이니까 당연한 줄 알았다. 공부 잘하던 친구는 원하는 성적이 나왔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상상하면 기분이 좋고 성적도 오른다고 했다. 나도 따라 했지만 성적은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라고 했다. 제대로 못 따라 하니 나름의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운동을 하기 전에 먼저 운동 과정을 머리로 상상해보라고 했다. 스쿼트를 할 때는 무릎이 엄지발가락 앞쪽으로 나가지 않게 하고 허벅지와 무릎이 90도를 유지하라고 했다. 등과 엉덩이, 허벅지가 당기는 느낌이 와야 제대로 된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트레이너의 바람만큼 운동 동작은 아름답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트레이너는 고개를 갸웃했다. 본인은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운동 효과가 더 상승했는데, 이 회원은 운동 신경이 없나...라는 트레이너의 눈빛을 읽었다.      


남이 하는 행동으로 나를 돌아볼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에게 알려줘야 할 때, 누군가를 가르쳐야 할 때 비로소 이미지 트레이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일정 수준까지 훈련을 통해 실력을 쌓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주변 환경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실력을 쌓는 게 먼저였다.      


성적을 올리고 싶으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장소로 나를 밀어 넣고 공부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멀리 했어야 했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끄고 학교나 독서실에서 코 박고 공부를 해서 실력을 쌓은 다음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면, 어쩌면 성적 상승효과를 보지 않았을까. 

운동을 해야만 하는 환경 속에 나를 빠뜨리고 이번 주는 10개씩, 다음 주는 20개씩 하면서 내 몸과 싸워가며 실력을 쌓은 다음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하고 있는 데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도 실력이 정체된 것처럼 느낄 때에도 나 스스로를 믿고 계속했으면 어땠을까. 그 일을 해야 하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조카가 낑낑 대면서 힘들어한다. 공부를 하고 있는 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마음만 급한 것 같다. 자신감 뿜뿜 조카였는데, 그 많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해 봤더니 잘 안되더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방이 막힌 벽처럼 느껴지고 울고 싶어 지기만 할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믿을 건 그 장소에서 버티면서 노력하는 나 자신 뿐이라고 말하면 꼰대라고 하려나. 꼰대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말로는 못하겠다. 라떼는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공간과 장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