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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Sep 26. 2020

희망과 고문

회사 이야기

“A 팀장은 트렌드에 좀 민감할 필요가 있겠어. 그 일은 B 팀장이 하는 게 좋겠어!”


임원의 행동이 이상하다. 평소에 그렇게 예뻐하던 A 팀장인데, 그 날은 면박 아닌 면박을 줬다. A 팀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B 팀장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별 것 아닌 일이라며 금방 처리하겠다고 했다. 겉으로는 일을 맡아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자리로 돌아온 B 팀장은 물밑으로 이것저것 알아봤다. 대놓고 여기저기 묻기에는 본인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지, 관련 부서에 메일을 보내고 이전에 비슷한 일을 처리한 사람에게 조용히 전화를 했다. 임원의 픽을 받았다는 흥분된 마음에 주말 근무까지 자처하면서 일을 처리했다. B 팀장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가 널 키워줄게, 너는 내 라인이야!”


일주일 후 임원은 업무 실적 발표에 A 팀장을 데리고 갔다. 물론 그 소식은 B 팀장 귀에도 들어갔다. 임원의 말과 행동에는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B 팀장은 줄 것 같으면서 주지 않는 임원의 마음을 갈구하면서 희망 고문을 당했다.       



“노력하면 다 된다는 말이 제일 싫어!”


되지도 않을 일에 희망을 품는 일을 진절머리 나게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될 가능성이 있는 일에 올인해도 될까 말까인데 무턱대고 노력만 하면 다 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논리다. 연인을 떠나보낸 후 친구의 생각은 더 굳어졌다. 헤어지지 않으려고 자존심까지 버려가면서 연인을 잡기 위해 노력했는데, 마음을 줄 것 같으면서 주지 않았던 연인은 매몰차게 친구 곁을 떠났다. 그런 생각을 가진 친구가 회사에서 정반대 성격의 팀장을 만났다. 팀장은 딱히 가이드를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될 것처럼 포장해서, 막연한 희망의 말만 남발하면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만들었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친구에게 노력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만 하는 게 말이 되냐며 오히려 비난했다. 끊임없이 노력만 하면 하고 싶은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희망 고문을 당하지 않으려는 친구와 희망 고문을 가하려는 팀장은 그렇게 매일 부딪쳤다.          


‘희망’이라는 긍정의 의미와 ‘고문’이라는 부정의 의미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단어에서 방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된다. 결과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희망의 마음을 갖고 고문의 바닷속으로 스스로 빠질 때가 있다. 남에게 희망을 품고 기대면 기댈수록 내 고문의 총량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남에게 기댈수록 내 마음만 갉아먹는다. 남을 이용만 해 먹으려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아무리 달려 봐도 숨만 가쁘고 땀만 난다. 희망을 품는 것은 내 자유의지이니, 고문을 피하는 것도 내 자유의지다. 굳이 내가 아픈 길을 선택하려 하지 말자. 내 마음을 누가 위로해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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