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눈이 자주 내린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눈삽을 들고 나서게 된다. 대부분 가볍게 지나간 눈이라 치우기 어렵진 않았다. 하얀 세상을 즐기며 멀리 도로까지 길을 내고 온다. 눈 위엔 은밀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음표 같은 고양이 발자국, 깨진 사발 같은 고라니 발자국, 안내표시 같은 새 발자국. 가위손과 닮은 누군지 모를 발자국도 있다.
음, 저기서 건너와 여기 머뭇대다 저리로 넘어갔군.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
고양이 발자국
고라니와 새 발자국
고라니와 새 발자국
가위손 닮은 발자국은...오소리가 아닐까 추정
며칠 전 내린 눈은 다소 푸짐했다. 눈 그친 아침, 동생과 함께 눈삽이며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하얗게 눈길을 가르며 비탈길을 내려가 산 굽이를 돌고, 골짜기 옆 농로까지 눈삽을 밀며 도로에 이르렀다. 지나간 바퀴 자국 하나 없이 고스란히 도로에 남아 있는 눈. 길가 집도 나무도, 멀리 겹겹 산자락도 모두 하얀 세상.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그 길에 우리도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조용조용 걸었건만 이웃 농가 귀 밝은 닭들이 목청 높여 반응하고, 까마귀들도 덩달아 요란한 소리로 휙휙 검은 선을 그어댔다. 숲고양이 밥자리에 도착해 사료를 부어놓고 주변눈도 말끔히 치우고 돌아왔는데, 다음날 또슬며시 흩날리는 눈발.
이틀 뒤 오후 다시 눈보라가 지나갔다.북극 한기가 몰려오는 것인지 세찬 바람을 타고 자욱하게 쓸려가는 눈. 하루의 빛이 사위어가는 시각 무수히 그어지는 하얀 빗금. 자주 보는 눈이건만 또 잠시 창가에 서 있게 되었다. 눈 내리는 풍경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언제나 처음인 듯 낯설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