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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숲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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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Dec 11. 2021

대포를 피하는 방법

    한동안 좀 아팠다. 심각한 병은 아니었지만 '일단 아프니까' 하고 기본적인 일상 외엔 움직임을 멈추게 되었다. 아픔만 없다면 긴 휴가를 맞는 기분이기도 했다. 아는 병이라 불안하진 않았는데 통증이 심해 몸은 꽤 시달렸다. 아픔은 원한 서린 검처럼 뱃속 깊숙이 뜨겁고도 선득하게 선을 그었다. 몸 안에 잠복해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몸이 약해진 틈을 타 활동을 시작한 것이라 했다. 처음 조짐은 두통과 함께 늑골 어디껜가 숨어 있던 바늘이 이따금 을 뜨는 것 같이 시작되었다. 겨울 준비로 집 안팎 일이 많아 몸살 기운이 있나 했다. 통증으로 이틀 잠을 설친 뒤엔 오른쪽 갈비뼈 부위 피부에 모래알 같은 발진이 자잘하게 올라왔다. 그제야 단순 몸살이 아닌 것을 짐작했다. 작년 이맘때 동생도 같은 증상을 보이며 대포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대포, 대상포진을 줄인 말이다. 평소 줄인 말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대포만큼은 흔쾌히 쓰고 있다. 언짢은 병명을 희화시켜주는 효과랄까.     

        

  대포의 주요 증상은 두통과 몸살 기운으로 시작해 몸속 어딘가 바늘 같은 통증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통증은 점차 간격을 좁혀오고, 이틀 정도 시달릴 즈음엔 불그레한 발진이 통증 부위 신경선을 따라 몇 알 올라온다. 그때가 바로 지체 없이 병원에 가야 할 시점이다. 그날부터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대부분 가볍게 지나간다고 한다. 대포는 증상 발현 후 48시간 이내 골든타임이 아주 중요하다. 상태가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고 확신도 없어 긴가민가 미루다 보면, 고통과 치료기간은 몇 배로 늘어난다. 동생은 경험이 없어 그 타임을 놓쳤고, 나는 동생을 통한 간접 경험이 있으면서도 발진  째야 병원행을 했다. 미련하다 흉보아도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학교에서 단체 예방주사를 맞다 기절한 이력이 있는 나로선, 웬만하지 않고는 병원 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감기나 두통 같은 건 약도 안 먹고 그냥 앓는 편이다. 나이 들면서 몸이 산뜻한 날은 드물어지고 늘 어딘가 결리고 석연치 않은 증상이 생겨나는데, 그때마다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일이다.             


  대포는 사실 미련을 떨면 안 되는 병이었다. 초기의 간헐적 바늘땀은 우아한 표현이었다. 증상 발현 삼 일이 지난 뒤엔 복부에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타는 아픔에 쩔쩔매야 했다. 하필 총상을 연상한 건 박완서 작가의 장편 「목마른 계절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픈 동안 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하고 골라 든 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 구입하여 30년도 넘게 지니고 있는, 서너 번 이상은 읽었던 책이다. 늘 심취해 읽었기에 서사가 고스란히 기억나지만 첫 문장만 읽게 되면 어느새 또 빠져들게 된다. 그만큼 얼개가 탄탄하고 서사의 재미를 갖춘, 필력이 대단한 작가다. 작가가 젊은 시절 겪은 육이오를 배경으로, 실제 체험이 녹아든 것이기에 그 시대 청년 지식인이 가진 이념에 대한 갈등과 포화 속에 꾸려가는 생활 묘사가 생생하다. 통증과 통증 사이, 여러 날에 걸쳐 조금씩 읽어 가는 동안 전쟁은 오래전 일이 아니라 현재도 벌어지고 있다는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포화가 터지고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알 수 없는 위협은 내 몸속에서도, 바깥세상에서도 지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삶 자체가 전쟁이니까.”

  내 말을 들은 동생도 말했다. 한 은유지만 사실 그렇다. 살아 있는 한 먹거나 먹히어야 한다. 점령하지 않으면 점당한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연일 7천 명이 넘는 현실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기능이 약해지며 느닷없이 겪는 몸의 이상도,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세상이 되어가는 공허함도, 그 세상에서 벌어진다는 무섭고 이상한 뉴스거리도, 모두 멀리는 들리는 포화 소리 같다. 실제로 몸에 총알이 박히는 일이 아니라 해도 막연한 불안과 우울은 만성이 되었다. 물론 직접적인 전쟁의 참혹에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픈 김에 엄살이다. 이제 진통제도 끊었으니 정신을 차릴 일이다. 내 배의 타는 아픔은 오래전 작가가 체험한 그 전쟁에 비해 그래도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가.     

   

  대포 치료는 의사에게 처방받은 항바이러스제를 하루 세 번, 일주일 먹는 것이 전부였다. 함께 처방받은 진통제도 일주일 분량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픔은 그 뒤로도 잦아들지 않아 집에 상비약으로 두었던 타이레놀과 이런저런 진통제를 계속 먹게 되었다. 꼬박 삼 주를 먹고 난 뒤 어제부터는  중단했다. 통증에서 아주 해방된 건 아닌데 이제는 참을만해졌다. 뱃속 바늘은 사라졌고 누그러진 발진 부위를 따라 찌릿찌릿한 아픔만이 진득하게 남아 있는 상태다.  

  "그래도 너보단 내가 회복이 빠른 것 같아."

  동생에게 줄 콩나물 국밥을 뚝배기에 담으며 내가 말했다. 아픈 중에 이상스레 콩나물만 계속 먹게 되었다.  콩나물 무침, 콩나물밥, 콩나물 국밥. 특정하게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여겨 우체국 쇼핑으로 콩나물을 주문하고 있다.  

  "하, 무슨 소리야. 나보다 언니가 훨씬 심하고만."

  동생이 도전하듯 말했다. 참 내. 우길 걸 우겨야지. 작년에 동생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발병해 해를 넘기고도 자주 움찔거렸다. 새해 첫날 떡국 먹다 말고 아고, 하며 인상 쓰던 걸 기억하는 데 말이다. 지금까지도 몸이 피곤할 때면 이따금 통증이 올라온다고 한다. 겸손도 아니고 자랑도 아닌 실랑이를 하는 동안 마늘종 장아찌며 깍두기까지 곁들인 밥상이 먹음직하게 차려졌다. 병을 이기려면 잘 먹는 것이 우선이다.   

  "얘들도 나름 생명체인데, 왜 하필 남의 몸에 기생해 사는 걸까."  

  번 생긴 수두 바이러스는 전멸하는 일 없이 신경절에 숨어 언제고 때를 기다린다니 참 끈질긴 놈들이다.

 "그렇게 살아가도록 생겨났다면 할 수 없잖아. 걔들도 남는 거 없어."

  동생 말에 기어코 웃음이 터졌다. 맞는 말이다. 누구도 남는 게 없다. 그냥 살아갈 뿐.   

 



날마다 먹고 있는 콩나물 무침


기운이 절로 나는 콩나물 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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