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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Sep 15. 2020

 바다 여행

60조 세포들의 긴밀한 협동작전

     

  물이 그리울 때가 있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물을 보자면 좀 멀리 계곡까지 걸어가거나 폭우가 오는 날 창가에 있으면 된다. 물이 그립다는 느낌은 마음의 정서라기보다는 몸에서 보내오는 전갈 같다. 자아를 인식하는 추상적 내가 아닌, 실질적 구성체로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의 전갈. 60조나 된다는 그들의 연대는 너무나 치밀하고 교묘해서 그 속사정을 알 수 없다. 며칠 전 갑작스레 바다로 여행이란 걸 가게 된 것도 그들의 긴밀한 협동작전일 가능성이 있다. 좀 과한 해석이긴 해도 천체의 운행이나 수열의 법칙 같은, 세상을 이루는 불가사의한 균형도 그렇게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인간 역시 우주를 구성하는 세포로서 그런 알 수 없는 연대에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짐이 있었다. 근래에 오래전 바다의 일이 생각난 것도, 무심코 펼쳐 든 책의 배경이 하필 바다인 것도, 일기 예보에서 평소라면 흘려듣던 동해 쪽 기상상태가 귀에 쓱 들어온 것도 그랬다. 세포들의 연합작전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갑자기 특정 음식이 먹고 싶거나, 어쩐지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현듯 물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막연히 기분이라 여기기도 한다. 상관은 없다. 조짐이든 기분이든 하여튼 그런 분위기 혹은 상황에 힘입어, 집을 여행지라 여기며 사는 우리 자매가 산골생활 처음으로 여행이란 걸 가게 되었다.

     

  장작남의 역할이 컸다. 한동안 소식 없던 장작남이 그날 아침 전화를 걸어왔다.    

 “갑자기 시간이 났는데 장작 패러 갈까.”

  아침이라기 보단 새벽에 가까운 시각,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깬 터였다.

  “글쎄. 요즘은 불 덜 때는데.”

  웅얼거리며 내가 말했다. 그리 반기는 대꾸라곤 볼 수 없었다. 밤을 거의 다 보내고서야 겨우 든 잠이었다.  

  “흐, 자다 깼구먼. 일이 있어서 나서는데 갑자기 취소된 거야. 안 그래도 통 거기 갈 틈을 못 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전화했지.”

  출퇴근이 일정치 않은 광고업계 일을 하는 장작남이라 약속을 잡기보단 시간이 빌 때 불쑥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갑작스러운 일을 반겨 않는 우리 성미를 아는지라 보통은 하루나 반나절을 앞두고 연락을 하곤 했다.

  산골생활에서 물 다음으로 중요한 게 장작이다. 장작남도 그걸 알기에 굳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장작을 패주러 오는 것이다. 어릴 때 한 동네에 살아 오랜 벗이기도 한 친척 아저씨를 우리는 장작남이라 부르고 있다. 집 지은 처음 몇 년은 이웃에서 잘게 쪼갠 장작을 살 수 있었는데 이후로는 파는 곳이 없어 곤란했다. 그 사정을 알고 삼 년째 이곳에 장작을 패러 와주는 고마운 아저씨다. 별다른 통보 없이 나타난다 해도 무조건 반길 일이었다.

  “관둘까.”

  장작남이 말했다.

  “바다나 갔으면.”

  정신을 차린다는 게 오히려 다시 잠에 끌려가듯 중얼거리게 되었다.

     

  도무지 오지 않는 잠을 포기하고 새벽까지 본 영화가 ‘안경(Glasses)’이었다. 푸른 바다와 정갈한 음식을 즐기며 마음 가는 대로 쉬는 것이 전부인 영화. “엄마가 좋아할 영화야.”라고 언젠가 딸 고운비가 외장하드에 담아 준 그 영화를 지금까지 세 번 정도 보았다. 공간도 시간도 흐릿한, 어느 외딴섬이 배경이었다. 특별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몇 번이나 다시 보아도 싫지 않았다.

  “바다? 가지 뭘.”

  뜬금없는 말에 대한 대답이 간단명료했다. 장작남의 특기다. 이런저런 복잡한 계산이 없다. 왜냐고 묻지도 않는다. 얼떨결에 통화를 마치고 그제야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쩐다. 벌떡 자리를 털고 나왔다. 일을 벌였다는 긴장에 잠을 설친 피로감조차도 물러났다. 일단, 하고 나는 전기주전자에 물을 받아 버튼을 눌렀다. 긴급회의를 소집해야 했다.

  옆집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깨어 있던 동생이 신속히 건너왔다. 통화를 할 때 이미 상황은 간략하게 말해놓았다.

  “물 끓여놨어.”

  군더더기 없이 나는 말했다. 동생이 커피를 내렸다. 마음의 술렁임에 비해선 둘 다 침착했다. 수선을 피울만한 여유 따윈 없었다. 받아들일 시간을 최대한 압축해야 했다. 계획에 없던 일엔 당황부터 하고, 기껏 계획한 일은 조감도를 그리는 단계에서 접기 일쑤인 우리였다. 이런저런 부차적인 것까지 생각하다 보면 그만두자는 결론에 번번이 이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오고 가는 여정과 준비할 것들, 다녀온 뒤의 피로감과 신세 지는 것에 대한 부담까지 이미 떠올리고 있었다. 동생도 그러할 것이었다. 왜냐고 묻지는 마시라. 둘 다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제 자잘한 선은 무시하고 전체 그림으로만 판단해야 할 때였다. 장작남이 시시각각 오고 있었다. 물론 다시 장작으로 되돌려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순식간 세상에 그어진 복잡한 선들은 우리를 앞질러 이미 저 나름의 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우기엔 아까운 그림이었다. 흔치 않은 기회인 것도 무시할 순 없었다. 마침 휴일도 아니고 바다에 가기엔 적기라는 계산까지 합세했다. 한겨울 추위는 곤란하고 사람 몰리는 것도 싫으니, 겨울 지나 꽃 피기 직전인 지금이 더없이 적당할 때였다.

  “가자.”

  커피 몇 모금 만에 동생이 결단을 내렸다. 나 역시 막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준비할 시간은?”

  동생이 물었다.

  “한 시간 정도.”

  나는 대답했다. 시계가 여섯 시 삼십 분을 넘고 있었다. 여덟 시는 되어야 장작남이 도착할 테지만 내 계산법은 그랬다. 삼분의 일 정도의 여분은 늘 남겨둬야 했다.      


  막상 정하고 나니 갑작스럽게 떠나는 것이 오히려 괜찮았다. 미리 알았다면 내 성미에 적어도 나들이 도시락 정도는 마련했을 테고, 그 준비로 지쳤을 것이다. 옷을 고르고 비상약과 지갑, 전화기를 손가방에 넣었다. 바구니에 물과 보온병, 간식거리 약간을 담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혹시 몰라 장작남이 먹을 수 있게 냉동실에서 모닝빵 두 개를 꺼내 놓긴 했다. 아침을 먹겠다면 바로 구운 달걀과 냉장고에 있는 샐러드를 곁들여 줄 생각이었다. 동생은 고양이 하루키를 데리고 갈 참이라 다용도실과 벽장문을 열고 닫는 움직임이 부산했다. 현관 앞에 내어놓은 짐을 보니 자취생 이삿짐 수준이었다. 텐트에 돗자리, 등짐 가방, 유모차까지. 나는 그 옆에 플라스틱 의자들과 텃밭바구니를 슬쩍 갖다 놓았다. 어차피 이삿짐 수준인 것이다. 가볍게 겹쳐지는 의자는 아무데서나 꺼내 앉기에 좋고, 텃밭바구니는 모래 목욕을 즐기는 마당 고양이들을 위해 바다모래를 담아올 수 있었다.

     

  장작남이 도착했을 때 나는 느긋하게 밀크티를 마시고 있었다. 장작남은 커피와 모닝빵 하나로 아침을 때우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사이 마당 고양이들 밥을 챙겨준 동생도 하루키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마당을 떠날 때 가볍게 빗방울이 날렸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예보에 의하면 바다 쪽 일기는 맑았다. 운전석 부근에 걸어놓은 스마트 폰이 길 안내를 시작했다. 편리한 세상이었다. 이제 세상의 연애는 그리 심각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마음이 가는 즉시 쉽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 별처럼 빛나는 인공위성이 우주에서 밤낮으로 돌며 연인들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오랜 독신을 접고 장작남도 요즘 열애 중이었다. 집에서 잠깐 커피를 마시는 동안 부지런히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았다. 좋아? 내가 물었다. 응. 순하게 대답이 나왔다. 애인 만나기도 바쁠 텐데 어떻게 우리까지 챙겼냐고 하니 지금 애인은 외국에 있다 했다.

     

  젖은 숲과 도로가 끊임없이 다가와 뒤로 사라졌다. 오랜만의 속도감이 싫지 않았다. 흐린 하늘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바다로 가는 길, 그 느낌이 좋았다. 앞 유리에 떨어지는 비를 와이퍼가 연신 닦아냈다. 굵은 빗줄기는 아니었지만 천지에 가득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을 따라 물을 보러 가는 길. 바다의 일기가 맑지 않아도 좋을 것이었다. 잊고 있었다. 오래전, 비 오는 바다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굳이 폭우가 예보된 바다를 찾아 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머물던 여행객들도 서둘러 떠나버린 빈 민박집에 도착해 주인 할머니의 환대를 받았다. 간간이 감자도 삶아 방에 넣어주고, 미역국 올린 밥상에 불러 앉혀 같이 먹자 청하기도 하던 할머니. 이십 년 가까이 다니던 그 민박집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딸 고운비가 열 살이던 해였다. 딸이 생긴 뒤로 바다에 혼자 가는 여행은 그만두었다. 이제 그 민박집도 없어졌다. 그곳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수 년 뒤, 단 한 번 할머니와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산골에 오기 몇 년 전이었고, 도시에서 동생과 같은 동 아파트에 살 때였다. 초대형 태풍이 오고 있어 뉴스마다 종일 특보를 내보내던 날이었다. 아파트 유리창 곳곳에 신문이 허옇게 붙은 것을 보다 문득, 전화를 걸게 되었다. 여보세요, 한 마디에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기억해주었다. “아 이게 누구래, 반갑구로. 나는 이자 거기 안 살아. 딸네 집에 합쳤어. 거기 물가 있던 집들 마카 다 없어졌거든.” 구수한 강원도 억양. 전화번호는 옛 번호 그대로였는데 할머니가 계신 곳은 시내라고 했다. 방풍림과 모래밭 사이에 있던 건물들이 다 철거되어 산책길이 생기고 공원화되었다는 것이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 민박집이 있던 곳에 가보았다. 할머니 말대로 모래밭 가장자리를 따라 나무판자를 깐 산책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기상 예보대로 바다의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이 사나웠다. 숄을 걸치고 모자를 부여잡으며 바다를 향해 얼마간 모래밭을 걸어갔다. 바람과 함께 추위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오랜만의 바다라는 감흥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차로 돌아왔다. 우선은 밥도 먹어야 해서 가까운 초당마을로 갔다.


  그 마을도 오래전 내 기억 속의 장소였다. 그땐 진또배기 마을이라 생각하며 드나들던 곳이었다. 민박집을 나와 바다를 끼고 남서쪽으로 걷다 보면 길이 계속 이어져 어느 순간 장대 끝에 나무오리 세 마리씩 앉힌 솟대들의 마을이 나타났다. 지역 사람들은 그 솟대를 진또배기라 했다. 삼재를 막고 풍어와 풍년을 기원하는 바닷가 마을의 신앙이었다. 솟대도 보고 가끔은 허균, 허난설헌 생가도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 민박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사실 그 외출의 주목적은 두부였다. 돌아오는 길목에 있던 가게에서 두툼한 두부 한 모를 사와 자주 밥 대신 먹었다. 그게 바닷물로 만든다는 초당두부였다. 초당은 허균 아버지의 호인데 현세에 어쩌다 두부와 만나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그때 내가 두부를 사던 곳은 길가 허름한 점방 같은 곳이었다.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둑한 점방 한 구석에 탁자 두어 개가 있고, 벽 선반엔 라면이나 과자류 같은 것이 보였다. 누군가 탁자 앞에 앉아 두부를 안주로 막걸리를 먹고 있기도 했다. 지금은 워낙 지역 특산으로 두부가 유명해져 초당 마을 전체가 상업화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점방이 있던 곳은 어림짐작도 하기 힘들었다.

 

    

  따뜻한 두부를 잔뜩 먹고 기운을 차려 다시 민박집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바람이 좀 잦아진 듯했다. 유모차에 하루키를 태워 동생과 함께 나무판자 길을 걸었다. 먼 훗날 지금 이때를 또 무척 그리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자 비로소 바다에 왔다는 느낌이 선연해졌다. 하루키는 처음 본 많은 물과 모래에 질려 아주 얌전한 아기가 되어 있었다. 집에서와 달리 말을 건넬 때마다 납죽납죽 대답을 잘도 하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모래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보온병 커피를 마실 때도 실상 바다보다 하루키에 눈이 더 갔다. 바닷바람에 비스듬히 자란 소나무 숲을 따라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걸었던 장면이 이제 새로운 바다의 기억이 될 것 같았다. 괜찮았다. 오랜 기억 속 바다든, 새로운 기억의 바다든 여전히 바다는 그리울 것이었다.  

     

나와 하루키가 든 가방을 멘 동생


  바다를 떠날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골의 비구름이 그제야 우리를 따라온 모양이었다. 하이패스 충전을 위해 휴게소에 막 들렀을 땐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바람을 따라 하얗게 쓸려가는 눈보라는 일순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게 했다.  

  “올 겨울 마지막 눈을 여기서 보는 모양이네.”

  차에서 내려 스마트폰에 눈 내리는 풍경을 담으며 장작남이 말했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깔고 문자와 함께 전송을 했다. 운전대만 놓으면 연인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아저씨였다. 휴게소는 뜻밖에도 별천지였다.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게 워낙 오랜만이긴 했다. 그래도 요즘 휴게소가 이 정도 규모로까지 달라졌나 싶어 놀라웠다. 삼층 높이에 맞은편 도로 건물에까지 공중으로 오갈 수 있게 걸쳐진 특이한 외형부터가 그랬다. 실내엔 고급 쇼핑몰처럼 유명 체인점들도 보이고 어딘가 세련된 공항 대합실 같은 분위기였다. 유리로 설계된 벽면을 따라 의자와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유리벽엔 온통 눈보라가 날리는데 우리는 아늑해졌다. 종일 따라다니던 바람소리와 추위도 비로소 멎었다.

  “여기로 여행 와도 되겠다.”

  동생이 둘러보며 말했다. 장작남이 우리를 위해 체인점 커피를 쟁반에 담아 들고 걸어오는 모습도 근사했다. 산골에선 도무지 맛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하루키를 두고 온 터라 우리는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하하, 완전 촌부들이구만.”

  다시 출발하며 아저씨가 말했다. 기껏 바다까지 가주었는데 휴게소에서 아이처럼 즐거워하던 산골 자매가 웃겼던 것이다. 얼마간 길을 달리자 눈보라는 소소히 흩날리는 눈발로 바뀌다 사라졌다. 집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갑자기 흩날리다 사라진 눈보라처럼 갑자기 시작된 우리의 특별한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꿈인지도 몰랐다. 빗속에 바다로 가던 여정도, 바다의 사나운 바람도, 끊임없이 들려오던 파도소리도, 진또배기 나무오리들도, 첩첩산중 뜬금없이 화려했던 휴게소도.

 모든 걸 흐릿하게 뭉개며,  이제 새벽에 보았던 영화 안경의 섬처럼 저만치 우리 집이 뚜렷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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