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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Sep 13. 2020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눈 내리고 바람 불고 따사롭고

 지난주엔 사흘 동안 눈이 내렸고 나흘은 또 봄날처럼 따사로웠다. 곧 삼월을 앞둔, 지금은 눈의 계절도 볕의 계절도 아닌 바람의 계절이다. 바람이 눈과 볕을 오가며 삼라만상 모든 것을 죄고 풀며 섞어놓는 시기. 사람도 나무도 고양이도 마음이 요상해지는 때다. 요상해지는 마음이 싫지 않아 자주 창가를 오가고 있다. 나물거리를 다듬거나 빨래를 널다 문득 창가에 가서 서 있게 된다. 날이 그다지 춥지 않아 사흘 동안 내린 눈은 부드러운 습설이었다. 연정도 없이 홀린 듯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것이 내 안을 채우고 비우며 돌고 도는 것 같았다. 눈 한 송이의 허공, 나무 한 그루의 숲, 볍씨 한 알의 우주. 눈 내리는 고요는 그 모든 것을 진공처럼 만들기도 해서 어느 순간 나도 주변도 사라지게 했다. 있음도 없음도 아닌 부재, 진정한 쉼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눈이 그친 뒤 며칠 째 따사로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도 마당엔 볕이 환하다. 불과 얼마 전 하얀 눈으로 가득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날마다 다른 세상, 그것도 이곳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다.



  어제는 이웃에 사는 정호섭 씨가 다시 방문했다. 작년부터 말이 있던 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한 찬반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반장님 혼자 다니기엔 일이 많아 나누어 다닌다고 했다. 자매의 아침 시간은 그로써 지난번과 비슷한 사태를 맞았다. 동생은 어느새 자기 집으로 사라졌고 나는 문을 열어주러 나갔다. 이번엔 그다지 당황스럽지 않은 것이 앞치마 정도는 걸친 차림새였다. 게다가 좀 전 난롯불에 찐빵을 기에 대접할 만한 것도 있었다.

  정호섭 씨는 서명받을 용지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동생과 내가 각각 세대주라 두 사람 서명을 모두 받아야 한다고 했다. 들어오시라고 권해 보았다.

  “커피도 내려져 있고 좀 전에 찐 팥빵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어, 그럼. 아침 먹고 커피는 안 마셨거든요.”

  정호섭 씨가 대답하며 성큼 문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차 대접을 받기로 마음먹고 온 모양이었다. 마을 업무를 수행 중인 사람의 떳떳함이 엿보였다. 그런 뚝뚝한 면에 더 신뢰가 가고 친근한 것도 있었다. 좁은 산골에선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서 늘 조심하게 된다. 정호섭 씨를 앞세우고 들어오자니 집안에 커피 향과 찐빵 냄새가 구수했다. 잠시 문밖에 나갔다 들어왔기에 새삼 느끼게 된 기분 좋은 냄새였다. 정호섭 씨가 식탁 앞에 앉았다. 커피를 새로 내려 찐빵과 함께 앞에 놓아주었다.

  “빵도 직접 만드시고, 참 솜씨가 좋으시네.”

  정작 찐빵보다는 그 아래 깔린 밤잎에 더 관심이 가는지 포크로 빵을 슬쩍 들춰보며 정호섭 씨가 말했다. 빵을 찔 때면 나는 종종 칡잎이나 참나무 잎 같은 걸 깔개로 사용한다. 보자기처럼 하나씩 싸서 찜통에 차곡차곡 채우면 한꺼번에 많이 찔 수 있고 향도 좋다. 한창일 때 따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쓴다.

  “동생은 어딜 갔어요?”

  찐빵을 한 잎 베어 문 정호섭 씨가 커피 잔을 들며 물었다.

  “자기 집에요. 이제 곧 나타날 거예요.”

  나도 새로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나 혼자 두기만 해봐,라고 좀 전에 뒷문으로 도망치는 동생 뒤통수에 대고 으름장 놓듯 말해 두었다. 동생이 사라지기 전 한 손을 휙 치켜세운 것이 걱정 말라는 뜻인지 혼자 잘해보셔, 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자로 믿고 싶었다. 동생도 나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 늘 좀 어색한 편이다. 언니와 남동생도 비슷한 것이 자식들 모두 아버지를 닮은 면이 있었다. 정호섭 씨를 친근하게 여긴다고는 해도 둘이서만 있는 자리가 내게 쉬운 건 아니었다.       

  “한 집에서 같이 지내는 거 아니었어요?”

  정호섭 씨가 물었다. 각자 공간이 따로 있다고 말해왔는데도 번번이 놀랍다는 반응을 했다. 밥은 같이 먹느냐, 는 질문이 이제 따라 나올 것이다. 순서가 그랬다. 그 말이 나오기 전 나는 물었다.

  “정호섭 씬 언제 행복해요?”

  못 들었나 싶게 정호섭 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남은 찐빵 하나를 골똘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저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흔한 말이긴 해도 이웃 간에 쉽게 오갈 물음은 아니었다. 나도 이런 종류의 질문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 편이다. 늘 되풀이되는 대화를 벗어나 보고 싶은 심리도 있었을 것이고, 사실 좀 전까지 동생과 나누던 이야기가 있어 불쑥 입 밖으로 나온 것일 뿐이었다.

     


  누가 먼저 행복이라는 모호한 주제를 꺼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범위를 정할 수 없는 감정인만큼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꼬이던 대화였다. “물론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화할 수는 없지. 그래도 묻는다면 언니는 행복해?” 동생이 물었다. “이 불안한 생에서 어떻게 행복이 있을 수 있어. 그런 걸 느낀다 해도 착각이겠지.” 나는 대답했다. “그럼 불행해?” 동생이 또 물었다. “행복이 없다면 불행도 없는 거지. 상대적인 말일 뿐이잖아. 단지 덜 불편한 것, 아니면 약간의 족함. 그걸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하는 거 아닐까. 그게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인 것 같거든.” 이런 대화는 역할 놀이 같아서 동생과 내가 묻고 답하는 처지가 바뀌었다 해도 오가는 말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술 마실 때면 행복하죠.”

  이윽고 정호섭 씨가 답하고 있었다. 아직 생각에 잠긴 얼굴인데 곧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마무리를 했다. 아, 하고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고 보니 정호섭 씨에게서 술 얘기가 안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과 교류 없이 살면 적적하지 않냐, 해서 적적한 게 좋다고 하면 술을 안 마셔서 그렇다고 했다. 자기 아내도 사교적이지 않은데 그 까닭은 술을 마실 줄 몰라서라는 것이다. 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해석을 했다. 술을 안 마시니 다른 낙이 없어 동물들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라 보고 있었다. 정호섭 씨에게 술은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기분 좋게 풀어갈 수 있는 열쇠이자 그 자체로 행복인 것이다.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산골 생활 초기,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때는 늘 양주를 선물로 주었다. 체질상 나는 술을 못 마시는데 어찌하다 모아진 양주가 그 무렵 대여섯 병은 있었다. 이제 남은 게 없는 걸로 봐서 그 몇 년에 걸쳐 정호섭 씨에게 모두 건너간 모양이었다. 내가 준 술로 잠시 행복했을 걸 생각하니 신세 좀 진 것도 괜찮다 싶었다. 조금은 부럽기도 한 것이, 실타래처럼 엉킨 마음엔 행복이 깃들기 힘든 것이다.

     

  현관문이 열리며 동생이 들어왔다. 정호섭 씨는 서명받을 종이 묶음을 펼쳤다. 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해 주민 대개는 반대하고 있었다. 능선이 아름다운 마을에 태양광 발전시설은 흉물이 될 것이고 산사태의 위험도 있었다. 서명을 하고 나는 다용도실에서 직접 담근 포도주 한 병을 들고 나왔다.

  “어떻게 난로만 때고 지내세요? 여자분들이 대단해요.”

  정호섭 씨가 현관을 나서며 동생을 상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웃 간에 되풀이되는 대화도 나쁘지 않았다. 늘 바라보는 풍경처럼 편안하고 정겨운 맛이 있었다. 포도주를 받고 멋쩍게 인사하며 떠나는 이웃 남자를 동생과 함께 배웅했다. 파란 트럭이 비탈길을 내려간 뒤, 나는 잠시 볕이 환하게 쏟아진 마당에 서서 내 집을 바라보았다. 창 안이 어둑해서 실내는 고요히 잠긴 듯 보였다. 새삼 저 공간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가 떠올랐다. 아직 커피 향과 빵 냄새도 희미하게 남아 있을 것이었다. 문득 동생에게 대답하고 싶어 졌다. 잠시 그 자리를 벗어나야 알 수 있는, 행복이란 그런 고요함이나 희미한 향 같은 것이라고. 우리가 행복을 뚜렷하게 말할 수 없는 건 그만큼 불행도 먼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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