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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Sep 12. 2020

손금

사람의 가장 슬픈 뼈마디는 물결치는 저 어깨

   산골에 산 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있었다.

   고작 여드레 정도였지만 오래도록 세상을 헤매다 돌아온 기분으로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한 시간여를 걸어야 하는 집으로 가는 길. 숲 사이로 길게 나 있는 한적한 도로 끝에 내가 도착할 집이 있다는 건 감동스러운 일이었다. 연고도 없이 낯선 산골에 집터를 잡은 것은 그 길고 아름다운 도로를 걷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나는 처음 몇 해 동안 날마다 그 길을 걸으며 감탄을 했고,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였다. 그림길, 갈피길, 장롱길. 완만히 경사진 도로는 바람이 많아 언제나 누가 쓸어 놓은 듯 말끔했다. 잘 구운 숯 빛 바닥에, 비처럼 떨어진 적갈색 낙엽송 잎들을 테두리로 두른 고즈넉한 길. 마치 나니아 연대기 장롱 속 비밀의 문처럼 마법의 세상으로 통하는,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마중 나오는 동생을 그 길에서 만나기 전까지 나는 오래전 썼던 시를 떠올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니러 간 서울에서 성장기의 나를 내내 낯설게 떠올렸던 것이다. 서울에서 보낸 이십 대, 나는 자주 여행을 꿈꾸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원한 건 사실 여행이 아니라 '나만의 방'이었다. 일정한 기간 동안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오직 내게만 허락된 육 면의 폐쇄된 공간. 그랬기에 그 시절의 여행은 견문을 넓히는 것과는 상관없었다.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서 머물렀던 동쪽 바닷가 마을. 그곳이 늘 한결같은 여행지가 되었다.

       


  사람들이 물러난 한적한 계절이면 그렇게 바닷가 마을 끄트머리, 민박집 7호실을 자주 찾게 되었다. 도돌이표가 있는 악장처럼 내 이십 대는 그 바닷가 7호실과 서울을 오갔다. 하지만 삶에서 되풀이되는 건 없다. 같은 음을 반복한다 해도 결국은 변주곡인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한꺼번에 대학교 노래 동아리 패들이 몰려들었던 날이었다. 내가 묵은 끝 방인 7호실을 제외하고 여섯 개의 방에 그들은 빽빽하게 들어찼다. 눈이 내리던 그 밤, 처마 아래 평상에서 왁자하게 노래하며 떠들던 아이들이 모두 들어가고 한참 정적이 지속되었을 때, 나는 방문을 조금 열었다. 담도 없이 바다를 향해 방문만 일곱 개 놓여 있던 민박집이라, 밤이면 나는 불을 켜지 않고 열린 문틈으로 밤바다를 엿보곤 했다. 따뜻하게 일렁이던 호박색 보안등 불빛 아래로 흰 눈송이가 쉼 없이 사선을 긋고, 어두운 모래사장 너머 하얀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던 그 밤, 누군가 남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가랑잎 한 잎 두 잎 들창 가에 지던 날 그 사람 나에게 작별을 고했었네, 로 시작되던 노래. 나는 기척 없이 노래를 들었다. 이 절이 시작되었다. 함박눈 소리 없이 내리던 밤에 그 사람 나에게 작별을 고했었네.

  

 그 새벽에 내가 썼던 시였다.

 

   손금

   E단조 낮은 목소리

  사람의 가장 슬픈 뼈마디는

  물결치는 저 어깨

  고개를 숙이고 음을 불러내는 당신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먼 훗날의 당신

  무명치마 무명저고리

  보자기처럼 펼쳐든 벼랑 끝엔

  날 세운 기타 여섯 가닥 

  내 손바닥에 선연히 배어들고 

  

  마치 그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듯 나는 손금을 걷고 있었다. 사람의 가장 슬픈 뼈마디인 물결치는 어깨로 걷고 있었다. 그 길을 걸을 때면 그렇게 다소 감상적이 되었다. 담담하게 살고자 하지만 감상은 유연한 연골의 기능처럼 나를 서정으로 이끌었다. 긴 소맷자락 날리는 춤사위로 살게 하는 것이다.

동생의 표현은 달라서 ‘낮술이라도 한 겨? 휘청거리기는’이다. 지나친 감상을 정신의 허영쯤으로 치부하는 동생은 때로 내 선생이다. 선생 같은 동생을 그 길에서 만나 말을 섞고 있으려니 바닷가 7호실에서 돌아온 내 목소리가 생경했다. 그럴 때 나는 내게도 타인이다. 내가 좋아하는 백석의 시 한 구절처럼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인 것이다. 내 속의 수많은 타인들. 그렇게 그들과 함께 나는 손금 위를 걸어 동생을 이정표 삼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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