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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숲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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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Jan 28. 2023

겨울 이야기

아무래도 겨울이 좋다. 겹겹이 옷을 입고 몸을 웅크려야 하는 추위는 결코 편치 않고, 사방이 얼어붙어 딱딱해지면 위협당하는 듯 의기소침도 하지만, 그래도 싫지 않다. 일찌감치 저무는 하루도, 막하도록 긴 새벽도.


새벽은 나를 온전히 만나는 시간이다. 아무도 벽을 두드리지 않고 전자음을 보내오지 않는다. 물을 끓 뜨거운 차를 마고, 오래전 읽다만 책 펼쳐기도 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좋은, 더구나 눈까지 내리는 새벽.


내가 사는 강원도 산골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올 겨울은 눈이 더욱 푸짐하다.  번 내리면 10센티 정도는 쌓다. 얼마 전에도 내 어림으론 18센티, 이웃 어른 어림으론 20센티 눈이 밤새 내려 세상을 덮고 있었다. 하룻밤 새 아주 멀리 떠나온 기분이었다. 눈이 흰색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사방이 온통 하얗게 덮면 할 말이 없다. 흰색은 시작이자 끝을 떠올리게 한다. 완전한 채움과 완벽한 비움의 색. 모든 을 모았다고도 모든 빛의 부재라고도 우길 수 있다. 그러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생각도 없다면 좋겠지만 생각은 지금도 이렇게 제 흥에 겨워 흘러나오니.


어둠이 걷히면서 새벽마다 하얗게 드러나는 세상을 본다. 매일이다시피 눈을 치워도 밖은 하얗다. 마당엔 묵은 눈 작은 설산처럼 솟았다.  위로 새 눈이 내려앉는다.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는 귀가 아닌 촉감으로 전달된다. 막 튼 솜이불처럼 가볍고 폭삭하다. 른 하늘이 드러나는 날에도 눈 내다. 나뭇가지 휘도록 묵직하게 얹힌 눈이 푸른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것이다. 허공이 쩡쩡 갈라질 것 같은 한파엔 투명한 대기에서도 하얀 얼음눈처럼 피어난.



겨울이 꾸는 가장 아름다운 꿈라고, 얀 세상을  때면 얼거게 된다. 할 말이 없어도 표현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이 오지 않더라도 산골 겨울은 꿈같은 계절이다. 바쁘게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춘다. 멈춤은 휴식이자 준비과정이다. 들과 숲도 성장을 멈추고 그 속에 깃든 생명들도 다음 을 준비한다. 지난가을부터 시작되었던 마을 하수관 공사도 잠잠해졌다.


지난가을 숲 사이 좁은 이차선 마을 도로에 느닷없이 하수관 공사 알림 현수막이 걸다. 이년 여에 걸쳐 진행되는 공사라 했다. 그 뒤로 마을엔 중장비 차량이 드나들고 흙먼지와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 두어 시간 마을길 걷는 것이 큰 낙이었던 내 생활은 그에 따라 주춤해졌다. 중장비 기계들이 잠시 멈추는 점심시간에 맞춰 고양이 밥자리까지만 바쁘게 다녀오게 되었다. 늘 발전을 도모하는 인간 세상엔 공사가 끊이질 않는다. 신축하고 보수하고 축하고. 굳이 산골에 들어와 사는 사람에게  발전이나 변화는 반갑지 않다. 주어진 것에 조화를 꾀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족하다. 난스레 한파와 폭설이 이어지는 올 겨울도 마찬가지다. 눈을 치우고 우물이 얼지 않도록 살피고 장작을 쪼개고 불쏘시개 마련하는 일과를 묵묵히 이어간다. 기운이 나는 날도 있고 움츠러드는 날도 있다. 극 냉기가 사납게 숲을 휩쓸도 햇볕은 지붕 위 눈을 녹인다. 눈이 조금씩 녹아내린 처마엔 고드름이 투명 창살처럼 줄줄이 달렸다.

우리는 갇혔어.

생이 고드름을 보며 덤덤히 말했다. 동생도 제한을 즐기는 사람이다. 눈길에 차를 움직일 수 없게 된 지 한 달이 넘었다. 래서, 하고 내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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