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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Sep 20. 2020

차 한 잔

살아온 모든 것을 담아

    

 “차 한 잔 하고 가요.”

지난주, 마을 도로를 걸어가고 있는 동생과 나를 누가 부르고 있었다. 길가의 콩밭에서 일하고 있던 문선 씨였다. 나보다 십 년은 연상일 문선 씨. 마을 사람들은 이 여사라고 칭하지만 우리는 그냥 문선 씨라고 부른다. 문선, 그렇게 부르는 게 좋아요 라고 처음 만났을 때 말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경계 따윈 허물어버리는 툭 트인 말투였다.

  문선 씨네 부부는 이 년 전 가을,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도로변의 붉은 벽돌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도 도로를 걸어가다 차 한 잔 하고 가요, 라는 문선 씨의 말에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걷고 있는 우리를 종종 보았다고 했다. 두 사람 걷는 모습 보기 좋아요. 티베트 여인들이 쓸 법한 머릿수건을 쓰고, 검게 그을린 얼굴 가득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문선 씨는 웃고 있었다. 사실 티베트엔 가 본 적도 없고 그곳 여인들이 어떤 머릿수건을 쓰는지는 알지 못한다. 조금은 멀리 가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처럼 첫눈에 비친 느낌이 그랬다. 긴 세월 바람과 태양 아래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결을 드러낸, 바위나 나무 같은 모습이었다. 당연하지만 평소엔 잊고 지내던, 사람도 자연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모습. 그런 결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문선 씨는 일 년에 한두 차례씩 몇 백 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걷고 온다고 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여섯 해가 넘도록 틀어박혀 사는 우리 자매 앞에, 아주 먼 곳의 설산이며 바윗길이며 초원이 성큼 다가왔다.

     

“뭔가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야.”

그 가을, 문선 씨가 우려 준 보이차를 마시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말했다.

“뭘?”

동생이 물었다.

“낯섦과 친숙함이 묘하게 섞인 그런 건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

“뭐 일종의 설렘 같은 거 아닐까.”

동생이 대답했다.

“설렘?”

“언니 그거 좋아하잖아. 떠나고, 머물고, 돌아오는 거. 언니는 자기 방에서 꼼짝 않고 그걸 하는 사람이지만 문선 씨 같은 사람은 실제로 온몸을 움직여 여정을 새기는 사람이지. 그러니까 그 만남이 낯설고도 친숙한 거고, 그런 걸 느낀 게 오랜만이어서 설렘이 있는 거야.”

꽤 설득력 있는 대답이었다.

“그래 그런 모양이다.”

나는 흔쾌히 수긍했다. 다르지만 통하는 만남, 그에 따른 설렘인 것이다. 우연히 스치는 한 번의 만남이라 해도 그런 만남은 세상을 사는 힘이 되어 준다.     

     

“이리 와요. 좀 전에 내린 커피도 있어요.”

지난주 문선 씨는 밭에서 자신의 집 마당으로 부지런히 올라가며 손짓을 보탰다. 멀리서도 활짝 웃는 얼굴 가득 하얀 치아가 보였다. 어쩌면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한 손을 들어 답례를 하자니 내 입도 저절로 벌어졌다.

“안 되겠다. 들렀다 가자.”

나는 옆에서 걷고 있던 동생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에도 지나가는 우리를 불렀지만 사양을 했던 터였다. 산골의 아침, 저마다 한창 밭에서 일할 시각이라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웃과 차를 나누기엔 우리 상태가 좀 그랬다. 왜 그런지 동생도 나도 아침엔 말이 잘 나와 주질 않는다. 잠에서 깨면 서너 시간 정도는 각자 시간을 충분히 보낸 뒤에야 느지막이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나서고 있다. 숲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 모리와 약속이 있는 것이다.

     

모리는 우리에게 각별한 고양이다. 사 년 전 아기 고양이때 우리 마당에 나타난 뒤로 밥을 챙겨 주었다. 하지만 작년 봄에 새로운 고양이 율무가 마당에 자리를 잡자 더 이상 우리를 찾아오질 않았다. 그 뒤 쉽게 볼 수 없더니 다행히 지난달부터 길을 걷는 중에 자주 만나게 되었다. 모리가 자주 나타나는 도로 근처엔 방호벽이 세워져 있어 그곳에서 밥을 주었다. 우리나라 삼팔 선 가까운 지역엔 흔히 볼 수 있는 군용 시설인 대전차 방호벽이었다. 몇 번 그런 일이 거듭되자 모리는 그 방호벽을 밥자리로 인식했다. 길을 걸을 땐 다소 거슬리던 방호벽이 밥자리로는 적당했다. 튼튼한 시멘트 구조물인 데다 고양이가 안심할 수 있는 높이에 터널이 나 있어 위가 가려져 있었다. 비와 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점에선 더없이 좋았다. 그 뒤 되도록 일정한 시각에 만날 수 있도록 시간을 조정해 모리와 약속이 만들어졌다. 야행성인 고양이들과 약속을 잡으려면 아침이 적당했다. 아침 일곱 시에 집을 나서 방호벽까지 걸어가면 삼십 분 정도 걸렸다. 그러니까 아침 7시 30분이 우리의 약속 시간인 것이다. 제시간에 모리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많지만 다음날 밥그릇이 깨끗이 비워진 걸 보면 헛걸음은 아니었다. 약속이 생긴 뒤로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동생도 나도 그런 면에선 꽤 확실한 편이다. 이제 한 달이 좀 넘었다. 그 정도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 모리도 우리도 적응 중이다. 아침 일곱 시에 동생과 마당에서 만나 서로 얼굴만 힐끔 보고 출발해 모리 밥자리까지는 대개 묵묵히 걸었다. 모리를 발견하면 말문은 절로 열렸다. ‘오구 모리야 오늘은 웬일로 마중까지 나왔어?’ 라거나 ‘울 모리는 노래하듯 걷지요. 도도도도도.’ 하고 모리가 앞장서서 걸어가는 모습을 흉내 내게 되는 것이다. 그 잠시의 활기가 지속되는 건 아니어서 돌아오는 길엔 또 묵묵해지기 일쑤였다.

     

  사정이 그랬지만, 지난주 문선 씨의 차 한 잔에 응해 그곳 마당에 들어섰을 때는 새로운 활기에 싸여 마구 감탄을 쏟아내게 되었다. 마당 입구부터 아른아른 환상적인 아마꽃 푸른 꽃무리가 가득했고, 처마 아래 외부 스피커에선 근사한 첼로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갈한 장독대와 수돗가, 사방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들. 마당 안쪽엔 내가 좋아하는 그네도 보였다.

“아, 너무너무 예뻐요, 어머 그네가 새로 생겼네요.”

그네 벤치에 앉으려 하자 어느새 다가온 문선 씨가 맨손으로 급히 그네 위를 쓸어주었다. 아이고, 싶었지만 나는 기분 좋게 그네 위에 걸터앉았다. 누구든 소중히 대하는 문선 씨였다. 집 앞 테라스에 내놓은 작은 냉장고에도 그 마음이 들어 있었다. ‘누구라도 목을 축이고 가세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는 냉장고. 이웃은 물론 택배 기사나 검침원 같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한 시원한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 메모를 보고 있으면 까마귀나 고양이들에게도 냉장고 문 여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졌다.

     

  모든 것이 근사했던 그날의 방문에서 가장 기뻤던 건, 문선 씨도 모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디까지 걷고 오냐는 물음에 모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고양이 밥 주러 다니는 얘기는 좀 조심스럽지만 문선 씨라면 상관없었다. 성품이 넉넉한 반장님이나 고마운 이웃인 정호섭 씨도 알고 있다. 보통 오후나 되어야 이따금 길을 걷던 우리가 아침마다 나서니 무슨 일인가 묻기에 말해주었다. 인간들이 차지해버린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인식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 혹시 내가 아는 고양이 인지도 몰라요. 여기도 가끔 고양이가 오거든요.”

모리 이야기를 들은 문선 씨가 말했다.

“어머, 어떻게 생긴 아인데요?”

저만치서 마당 풍경을 영상에 담고 있던 동생이 다가오며 물었다.

“음, 배는 하얗고 등엔 검은 무늬가 있고… 아, 이마에도 이렇게 검은 무늬가 있어요.”

문선 씨가 자신의 양손으로 이마 위에서 갈라져 내려오는 동작을 했다.

“어머! 우리 모리다.”

동생과 나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지금 만나고 오는 애가 바로 그 애예요.”

우리의 갑작스러운 흥분에 문선 씨가 소리 내어 웃었다.

“아유, 하하 그렇구나. 그 애가 모리에요? 집에 있으면 창 너머로 가끔 보여요. 내가 자주 집을 비워서 한결같게는 못해주지만 있을 동안은 생선 같은 거 챙겨 줘요. 접시 들고나가면 숨었다가 다시 와서 먹더라고요.”

     

  그날 이후 모리에 대한 마음이 얼마간 밝아졌다. 의지할 데라곤 없는 작은 동물 하나가 막막한 숲에서 오직 우리만 기다리고 있다, 는 생각에서도 조금은 벗어났다. 아침마다 사료 한 봉지를 달랑 부어주고 오는 우리의 모리산책엔 그런 무거움이 다소 깔려 있었다.

  “차 한 잔이었어.”

어제 아침 모리산책을 다녀오며 노란 비옷 속의 동생이 문득 입을 열었다. 비가 연일 내리고 있어 나도 우산을 들고 있었다. 영리한 모리는 비를 피해 밥자리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오는지 보려고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던 모습에 동생은 순식간 또 아이가 되었다.

“아고, 울 애기. 비 안 맞고 밥그릇 옆에 있었떠요. 고개만 빼꼼 고로케 내밀고서요. 잘했떠요, 잘했떠.”

불과 십 여분 전인 그때와는 달리 차분해진 말투로 이번엔 무슨 뜬금없는 말이 나올까, 나는 우산 속에서 귀를 기울여 보았다. 동생의 말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재미가 있다.

“우리가 계속 궁금해했잖아. 한참 모리가 보이지 않을 때 도대체 어디서 무얼 먹으며 살아가는지.”

그럴 줄 알았다. 뭔가 골몰한 표정이다 싶을 때 동생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거의 고양이에 대해서다. 막 문선 씨네 집 앞을 지나던 중이라 그 말이 어디로 향할지도 감이 왔다.

“문선 씨 처음 만났을 때 언니가 그랬잖아. 잠시만 스쳐가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그러니까 그때 문선 씨의 차 한 잔에 이미 모두 담겨 있었던 거야.”

동생의 말에

“모리가 어디서 뭘 먹고살았나 그 답이?”

대꾸는 해준다 싶어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심오한 말을 꺼내고 있는데 그렇게밖에 못 받나 그래?”

동생이 말했다. 아직 커피 한 모금도 못 마신 빗속의 아침, 동생은 상태가 괜찮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문선 씨가 걸었던 길과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이 담겨 있던 차 한 잔이었어. 우리 역시 살아온 모든 것으로 그 차를 마셨지. 서로의 삶이 교차한 그 중심엔 우리 모리가 있고.’ 정도의 대답을 기대한 모양인데, 나는 묵묵히 걸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았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노란 비옷 속에서 동생은 혼자 충분히 심오할 것이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동작 하나에도 그 사람의 살아온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건, 우리가 종종 즐겨하는 대화였다. 나는 오직 어서 집에 도착해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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