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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Sep 24. 2020

강아지를 사랑한 고양이

율무와 솜사탕

   율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풀어놓은 이야기에 고양이 한둘은 늘 등장했는데, 정작 지금 우리 마당 ‘고양이식당’ 주인인 율무는 저만치 언저리를 지나가고만 있다. 이야기엔 초점이라는 게 있으니 할 수 없었다.

 

  율무 소개를 하자면 2017년 봄 출생으로 추정, 모리가 낳은 삼 남매 도깨이 허브 하루와 나이가 엇비슷하다. 율무가 처음 우리 마당에 나타난 건 2018년 봄이었다. 마당에서 모종판에 씨앗을 심고 있는데 어디선가 삐야호롱~ 소리가 났다. 처음엔 웬 새가 온 줄 알았다. 한창 딱새들이 날아와 집 지을 곳을 기웃대며 다닐 때였는데 흔히 듣던 새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둘러보니 아담한 몸집의 갈색 고양이가 마당 끄트머리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삐야호롱~ 삐야호롱~ 새처럼 소리 내는 고양이라니. 동생도 나도 일손을 놓고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쟤는 또 어디서 왔을까, 하는 순간 어디선가 하얀 솜털 뭉치가 휙 날아와 고양이를 싸고돌더니 서로 얼싸안고 뒹굴어댔다. 생각지 못한 희한한 사태에 우리는 잠시 넋 놓고 그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이른 봄날 나타난 강아지와 고양이

  “어머, 둘이 사귀나 봐.”  

  동생이 웃음 끝에 말했다.

  “그래. 신기하다. 나 어릴 때 읽은 동화에 고양이와 개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는데 갑자기 그게 떠오르네.”

  내가 말했다. 어릴 때 어문각에서 나온 한국문학 50권 전집을 엄마가 할부로 사준 적이 있었다. 소설과 시, 희곡, 평론까지 한국 근현대 주요 문학을 모아놓은 두툼한 책들이었다. 어찌나 좋던지 깨알 같은 세로줄 문장을 성장기 내내 읽고 또 읽었다. 아동 문학도 두 권인가 있어 그 속에 어느 외로운 개와 고양이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 담담하게 쓰여 더욱 쓸쓸하고 끝도 좀 슬펐던 것이 인상적이었던가, 유독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문각 전집은 성장 후 집을 떠난 뒤 본가에 있던 것이 어느 결에 없어졌고, 오래도록 잊고 있었다. 이젠 지은이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이야기가 수십 년 뒤 봄날 마당의 한 장면으로 불현듯 생각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우리 마당에서 벌어진 강아지와 고양이의 사랑은 쓸쓸한 톤은 아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느낌을 주었다. 서로 냄새를 맡고 핥아주는가 하면 어느새 어우러져 빙빙 돌며 노는 꼴이 신기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얀 솜뭉치는 아무래도 우리 뒷마당과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농장 강아지 같았다. 두어 달 전인가 그 집에서 며칠 째 강아지 소리가 낑낑 들리기에 주인에게 마당 개가 새끼를 낳았나,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진돗개인 마당 개는 수컷이고 친구네 농장 발발이가 새끼를 낳아 한 마리를 얻어 왔다고 했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지만 부부가 한창 밭에서 일을 하던 중이라 마당에 묶여 있는 것만 멀찍이서 보고 왔다. 그때 주먹만 하게 보였던 녀석이 그 사이 제법 자라 솜사탕처럼 부풀어 있었다. 얼굴도 그렇고 몸 전체가 딱 어릴 때 학교 교문 밖에서 팔고 있던 솜사탕이었다. 요즘 파는 건 어떨지 몰라도, 내 어린 시절의 솜사탕은 설탕 한 스푼의 마법이었다. 커다란 들통 같은 곳에서 긴 막대를 휘휘 저어 뭉게구름처럼 하얗게 피워 내던 광경.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던 그 솜사탕이 우리 집 마당에서 구르고 있었다. 그날 즉석에서 녀석은 ‘솜사탕’이란 이름을 얻었다. 자기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야 따로 있겠지만 우리 마당에선 솜사탕인 것이다. 솜사탕이 데리고 온 목소리가 예쁜 갈색 고양이는 덩달아 율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복사꽃 아래, 다정한 율무와 솜사탕

 

 그때쯤 동생은 자신이 돌보던 집 안팎 고양이 말고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숱한 다른 고양이들을 알고 지냈다. 이젠 좀 고양이를 안다는 수준이 되었지만 율무만큼 애교 많은 아이는 처음 보았다고 했다. 목소리도 애교가 넘쳐서 우리는 그 소리를 흉내 내어 이름처럼 부르기도 했다. 삐야호롱∼왔네? 하며 동생이 밥을 주면 답례로 한참을 더 삐야호롱∼ 삐야호롱∼ 동생 주변을 돌았다. 밥보단 당신이 더 좋아요, 하는 듯했다. 하하, 삐야호롱~. 너는 목소리 하나로 충분히 먹고살겠구나. 나도 율무가 나타나면 왔냐 하는 인사 대신 그렇게 말하는 걸로 반겼다.


  하지만 고양이는 영역 동물. 우리 마당의 아이들이 그 사태를 결코 반길 리가 없었다. 그때 마당엔 도깨이와 허브가 고양이식당에서 살고 있었다. 같은 배에서 나온 하루는 암컷이어서 그즈음 발정 기운을 보여 집에 들인 상태였다. 마당의 형제 고양이는 율무가 나타나면 긴장 사태에 돌입했다. 아주 심기가 불편해져 율무가 마당을 떠날 때까지 그 동선에 꽂은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율무는 눈치가 빨라서 위험 경계를 절대 넘어오지 않았다. 고도의 수법 같기도 했다. 딱 필요한 만큼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알게 모르게 그 거리를 좁혀 들어오는 작전. 처음엔 고양이 식당 텐트엔 얼씬도 안 했던 것이, 형제가 어쩌다 자리를 비운 틈은 놓치지 않았다. 잽싸게 텐트 안으로 돌입하는 동시 구석을 샅샅이 탐색하고는 밖으로 나올 땐 느릿해져서 시침 뚝 떼고 멀어져갔다. 밥도 텐트 밖 구석자리에서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얌전히 먹었다. 더부살이는 이렇게 하는 거야, 라는 걸 확실히 아는 자의 태도였다. 그렇지 않다 해도 겨우내 양질의 사료와 간식을 듬뿍 먹고 엄청나게 성장한 도깨이와 허브에게 적수는 되지 못했다. 그런데 마당 형제로서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 율무에게는 누구보다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는 것이다.  

     

마당 형제 허브와 도깨이

  마당 형제가 아무리 늠름하게 자랐다 해도 솜사탕은 무서워했다. 우리가 보기엔 천방지축 유쾌한 솜사탕이 놀자고 하는 행동인데 둘은 혼비백산 지붕 위로 달아나거나 가까운 나무를 타고 올라 내려오질 못하는 것이었다. 그저 반가워서 앞발을 들고 흥분했을 뿐인 솜사탕으로선 억울할 법도 했다. 시무룩해서는 지붕이나 나무 위를 쳐다보는 꼴이 그랬다. 그것도 잠시, 곧 율무나 나비를 쫓아 또 마당을 구르고 다녔다.

  “아니 덩치는 비슷한데 왜 쫓기는 걸까?”

  마당 형제를 아끼는 우리로선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율무 때문에 심기 불편해하는 것도 그렇고, 이웃집 강아지에게 번번이 쫓기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형제가 위험한 건 볼 수 없으니 솜사탕을 오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동생이 나보다는 더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아직 어린 태가 남아 있는 귀여운 솜사탕에게 동생은 또 그즈음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18년이 되도록 함께 살아온 페키니즈 쮸그리와 쮸리를 한 해 전과 그 전 해에 걸쳐 하나씩 떠나보내고, 아직 마음 한쪽이 비어 있던 동생이라 더욱 그랬다. 사실 솜사탕이 자주 올 줄은 몰랐다. 처음 이름을 지을 때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붙이자는 동생에게 “쟤가 여길 오면 얼마나 오겠어.” 말했던 터였다. 그때만 해도 어쩌다 농장에서 풀려나 온 것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점점 찾아오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었다.

     

  고민 끝에 쿠키와 낫을 들고 이웃집 농장을 찾아갔다. 제대로 된 길을 따라가자면 한참 돌아 도로가에 나 있는 농장 입구로 들어가야 하는데, 솜사탕이 다니는 길로 가보니 바로 지척이었다. 뒷마당을 넘어가 낫으로 풀을 쳐내며 경사 심한 비탈을 살살 기듯이 내려가니 이웃집 비닐하우스가 나왔다. 비닐하우스 몇 개를 더 통과해 그 집 안 마당까지 가보았다. 마당에 이르기 전 솜사탕이 우리 기척을 알고 꼬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정신없이 달려와 앞발을 들고 펄쩍 뛰어올랐다.

  “어머 얘 좀 봐. 두 분을 엄청 반기네요. 안 그래도 거기 종종 가는 눈치 더니.”

  하우스에서 일하던 안주인 혜경 씨가 나와서 우리를 상대해 주었다. 마침 푸성귀가 너무 많아 나눠 주고 싶었다며 우리를 하우스로 데리고 갔다. 솜사탕은 혜경 씨와 우리가 같이 있는 게 좋은 지 더욱 신이 나서 따라왔다. 율무는 보이지 않았다. 같이 상추와 아욱을 따서 담으며 고양이도 혹시 돌보는지 물어보았다.

  “아니요. 우린 고양이는 안 키워요. 근데 얘가 웃겨요. 밥을 주면 꼭 고양이를 불러 같이 먹는 거예요.”

  혜경 씨가 옆에서 촐랑대는 솜사탕을 보며 말했다.  

 “어머, 정말요? 오!”

  동생이 감동한 나머지 말을 맺지 못했다.  

  “동물들은 자기 밥그릇 양보하고 그러는 거 드문 일인데.”

  나도 말했다.  

  “그러니까요. 한 달 좀 넘었나, 그때부터 그랬어요. 사료를 그릇에 부어 주면 갈비탕이 바로 안 먹고 컹컹 짖는 거예요. 그러면 어디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오더라고요. 남편이나 내가 있을 땐 가까이 못 오는데 자리를 피하면 얼른 와서는 얘랑 같이 고개 들이밀고 먹어요.”

  “갈비탕이요?”

  동생이 물었다.

  “얘 이름이 갈비탕이에요. 갈비탕을 워낙에 좋아해서 그렇게 불러요. 저기 묶여 있는 큰 애는 곰국이고요. 쟨 곰국을 더 좋아하거든요.”

     

행복한 솜사탕

  “그래도 끝 이름이 같네. 탕이. 어차피 탕이라 불릴 애였나 봐.”

  동생이 말했다. 푸성귀 한 바구니를 얻어 비탈을 넘어오는 내내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갈비탕과 곰국이라니. 사실 웃을 일이 아니었다. 솜사탕, 아니 갈비탕을 우리 마당에 못 오게 막을 길이 이젠 없어졌다. “애가 처음엔 묶어 놨는데 좀 크더니 툭하면 목줄을 끊고 탈출을 하는 거예요. 다시 묶어 놓으면 끙끙 앓아요. 사방 쏘다니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혜경 씨에게 우리 사정을 말할 수도 없고, 솜사탕이 그로 인해 목줄을 하는 건 더욱 싫었다. 난감했지만 대책이 없었다. 좀 시간이 지나면 마당 형제가 솜사탕에게 익숙해지지 않을까,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동생은 그 뒤로 더 열심히 솜사탕과 율무 밥을 챙기게 되었다. 염분 많은 갈비탕을 솜사탕이 덜 먹기를 바랐고, 강아지 사료를 먹는 율무에게도 부족한 영양을 채워줘야 했던 것이다. 강아지 사료엔 고양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타우린 성분이 없다고 했다.  

 

  그 뒤로도 솜사탕은 툭하면 언덕을 넘어 뒷마당으로 굴러왔다.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익 옆 마당을 지나 멋진 코너링을 보이며 앞마당으로 돌진, 갑자기 브레이크를 끼익 밟은 듯 정확히 동생네 문 앞에 정지했다. 올 때마다 동생이 주는 밥맛이 점점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어때 갈비탕보단 이게 더 맛있지 않어?”

  사료를 부어주며 동생은 말했다.  

  “원래 남의 집 밥이 더 맛있는 거야.”

  내가 말했다. 솜사탕에겐 우리 집이 맛집인 셈이었다. 하루 한 끼 정도는 꼭 우리 집에서 해결하고 갔다.


   율무는 점차 마당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솜사탕네 보단 우리 집을 자신의 영역으로 여기는 듯했다. 우리 마당엔 그즈음부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도깨이와 허브의 출타가 잦아졌고, 지난가을 세 아이들을 두고 떠났던 어미 모리는 다시 고양이식당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출산을 앞두고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모리의 등장으로 율무는 태도가 바뀌었다. 더 이상 더부살이의 태도는 없었다. 모리가 나타나면 등의 털을 한껏 세우고 경계를 했다. 모리 역시 율무와 팽팽히 대치해 거의 정지 화면 같은 장면이 자주 마당에 펼쳐졌다. 둘 다 아주 위협적인 소리를 나직이 내지르는 모습에선 낯선 야생의 세계가 보였다. 

 

 고민 끝에 주차장 한쪽에 있던 고양이식당을 눈에 잘 띄는 앞마당으로 옮기고 공간도 넉넉하게 넓혀주기로 했다. 산 아래 쉼터로 이용했던 작은 비닐하우스를 집 앞에 끌어와 바닥을 나무판으로 깐 뒤 그 속에 고양이식당 이층 집을 옮겨 놓았다. 넉넉한 공간이라 계단과 뒷방도 만들고 밥 먹는 탁자도 여러 개 만들어 넣을 수 있었다. 넓은 공간에서 두 어미가 같이 밥을 먹고 새끼를 낳아 함께 기르기를 바라는 동생의 고집이었다. 둘이 아무리 대치하고 못마땅한 눈치여도, 동생은 둘 사이에 서서 꼭 같은 시간에 밥을 주고 둘 다 아주 좋아하는 닭가슴살을 수시로 먹여주었다.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한 가족으로 인식하기를 바란 것이다.


  출산 때까지 두 달가량 긴장을 늦추지 않은 동생의 부단한 노력은 결국 보답을 받지 못했다. 여름 초입 각자 은신처에서 출산을 하고 나타난 뒤로 더 이상 두 어미의 동거는 가능치 않았다. 새끼를 보살피는 예민함이 극도로 발현되어 급기야 서로 털을 뽑아 댈 정도로 싸움은 격해졌다. 결국 고양이식당을 차치한 건 어린 율무였다. 우리가 볼 땐 모리가 좀 더 노련하고 강했지만 보디가드 솜사탕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미 율무와 새끼 고양이들
솜사탕 아저씨를 좋아하는 보리

 율무는 새끼들이 조금 자라자 고양이식당으로 데려와 함께 살았다. 절친인 솜사탕은 돌연 아저씨가 되어 율무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특히 암컷 보리는 솜사탕 아저씨를 유난히 좋아해 엄마 못지않게 아저씨의 부비부비를 즐겼다. 어미가 된 율무는 어딘가 침착하고 사려 깊은 분위기로 바뀌어 어린 딸에게 솜사탕의 애정을 다소 양보했다. 보리를 핥아주고 같이 얼싸안고 빙빙 도는 솜사탕의 꼴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율무의 표정에 딸과 잘 놀아주는 아빠를 보는 만족감 같은 것도 엿보였다.  


“혹시 보리 아빠가 솜사탕은 아니겠지?”

동생이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율무가 낳은 두 아이들은 완전 율무의 판박이였다. 검고 흰 도깨이 허브가 아빠일 가능성은 없었다. 근처에 다른 수컷 고양이도 보이지 않으니 주변의 유일한 수컷은 솜사탕과 그 집 나이 든 진돗개 곰국뿐이었다. 색깔로 봐선 갈색 곰국이 가장 유력했으나 이왕 터무니없는 김에 우리는 솜사탕에게 한 표를 던졌다. 율무는 다음 해 두 번째 출산으로 해와 달을 또 얻었다. 이제는 율무네 가족 모두 중성화를 하여 더 이상 식구가 불어 날 일은 없게 되었다. 솜사탕은 이곳이 여전히 맛집이자 둘도 없는 여친의 집이기도 해서, 날마다 기막힌 코너링을 보이며 뻔질나게 오고 있다.

 '손'  하기를 좋아하는 솜사탕


'손' 할 때면 수줍어하는 솜사탕
율무와 솜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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