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철학

주는 것이 곧 받는 거예요

by 구름나무

가만 보자, 오늘이 며칠이나 되었나. 달력을 보는데 무려 시월이나 되었다. 그것도 거의 중순이다. 물론 오늘이 오늘인가 어제인가, 넋 놓을 때 말고는 그걸 모를 정도로 이상한 상태는 아니다. 그동안 너무 몰렸던 거다. 오늘이 며칠이나 되었나. 이런 말투는 이제 한숨을 돌렸다는 뜻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여름 끝물에 태풍 3개가 연달아 왔고, 세계나 국가적으로는 여전히 코비드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개인적으로는 지하수 설비 고장에 마당고양이 율무가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중 대외적인 일과 지하수 문제는 발등의 불은 아니었고 율무의 부상이 가장 속을 태운 시급한 문제였다.


누구와 한판 크게 싸운 건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건지 율무의 다리 상처는 물린 자국이 처참했다. 날카로운 이빨 자국 네 개가 깊숙이 박힌 다리로 피를 흘리며 마당으로 오고 있는 것을 구월 첫날 동생이 발견했다. 몇 년째 마당 고양이들을 돌보았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웬만한 일엔 침착하던 동생이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병원에 전화를 넣어 율무 상태를 설명하고 예약부터 잡았다.

병원까지 가는 중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율무가 다리를 잃게 되는 건 아닌가, 세균이 퍼져 돌이킬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해님이와 큰딸 보리도 보이지 않는 게 혹시 난투 현장에 같이 있다 다친 건 아닐까. 생각만으로도 지치는 일이었다. 한 시간 반 거리 도시 병원에 도착했다. 마당 아이들 중성화 수술을 했던 K병원이었다. 시티 촬영을 하고 두루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다. 소독을 하고 주사를 맞고 약을 한 무더기 타서 돌아왔다. 이빨 자국은 고양이과의 야생동물로 보이고 상처가 너무 깊어 낙관할 수 없다, 가 의사의 소견이었다.


그날부터 율무를 작은 방에 넣어두고 동생의 간호가 시작되었다. 두세 시간마다 소독을 하고 상태를 살피느라 율무와 한방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중간중간 해님이도 찾아 간식에 항생제를 섞어 먹였다. 병원에서 율무를 데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설상가상 율무의 아들 해님이도 다리를 절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역시 다리에 상처가 있었는데 피를 흘릴 정도로 상처가 깊진 않았다. 우려한 대로 싸움 현장에 같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나마 겁 많은 해님이를 병원까지 데려가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었다.

율무는 정말 낙담스러웠다. 며칠간은 거의 먹지도 않았고 열은 수시로 40도까지 올랐다. 이빨 자국만 있던 상처 부위는 점점 주변이 괴사 되면서 뼈가 참혹하게 드러났다. K병원 수의사가 예견하던 대로였다. K병원 원장은 병원에 다시 올 것 없이 설탕 요법을 하라고 강력히 권했다. 괴사 된 상처에 설탕을 가득 붓고 붕대로 감으면 삼출물을 설탕이 흡수하는 한편 방부제 역할도 한다고 했다. 그것으로 바이러스 침입도 막고 곪는 것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 무서운 상처에 설탕을 어떻게 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당장은 전문가인 의사에게 보이며 상황을 살펴야 할 것 같아 다음날부터 읍내 동물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K병원까지는 왕복 3시간이라 기력 없는 율무가 버티기 힘들 것 같았고, 운전을 자신 없어하는 동생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읍내는 20분 거리라 한결 나았다. N병원은 재작년인가 생긴 읍내 유일한 동물병원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웬만하면 도시의 K병원까지 가는 건 읍내 N병원은 축산 농장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업무라 출장도 잦았고, 작은 아이들을 위한 중성화 수술 시설이나 약품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다만 철마다 진드기 방지제며 구충제를 구할 수 있고 가까이 수위사가 있다는 것으로 위안은 되었다.


N병원에는 한 달가량 다니며 소독을 병행해 율무의 상태에 따라 해열제와 항생제 주사를 일정 기간 투입하기를 반복했다. 괴사 부위는 쉽게 살이 차오르지 않았다. 때로 무서운 생각이 들면 K병원에 전화해 상담을 받기도 했다. 여전히 K병원에선 설탕 요법을 권했고 N병원 수의사는 설탕 요법엔 회의적이었다. 사람의 경우도 의사마다 자신의 관심 분야나 치료 경험에 따라 소견이 다르니, 자칫 중요한 기간을 놓쳐 돌이킬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환자와 가족은 전전긍긍하게 된다. 우리도 그랬다. 날마다 율무 상태를 지켜보며 심각하게 의논 과정을 거치고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동생은 설탕 요법을 시작했다. 율무는 점점 움직임이 적어지는데 도무지 상처엔 살이 차오르지 않으니 주사와 약과 영양제만 의지할 순 없었다. 사고 난지 보름 째 정도였고, 그동안 설탕 치료에 관한 온갖 정보와 방법을 섭렵한 동생이었다. 밤낮없이 세 시간 간격으로 상처를 소독한 뒤 설탕을 붓고 붕대를 감는 참으로 지난한 과정을 하루도 소홀하지 않았다. 설탕 치료 18일째가 되었을 때 비로소 상처엔 얇게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고비는 넘긴 걸로 보이네요.”

드디어 읍내 병원 수의사도 말했다. 아, 참으로 위대한 동생이었다.

1602370513729-2.jpg 읍내 수의사에게 치료 받고 있는 율무

이제는 밀쳐두었던 문제를 마주해야 했다. 율무에게 집중하는 중에도 사건 당일부터 보이지 않는 보리에 대한 근심이 내내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자주 가출을 하는 아이였지만 일주일을 넘긴 적은 드물었다. 한 달이나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 여겨졌다. 그치지 않는 장마에 이어 그 사이 태풍이 연이어 오면서 거센 바람은 수시로 숲을 휘어잡았고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졌다. 그 질척하고 수상쩍은 숲 어딘가에 보리는 숨어 있는 것이었다. 숲 고양이 모리에게 밥을 주러 다녀올 때면 우리는 보리를 찾느라 사방을 기웃댔다. 축축한 숲마다 희미한 피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참으로 우울한 나날이었다. 율무의 회복도 완전히 보장된 건 아니었고, 보리는 생사를 알 길 없고, 어느 날은 지상모터까지 왱왱 미쳐서 돌고 있었다. 그쳤나 싶던 비바람이 다시 몰아치던 날이었다. 그날도 읍내 병원을 가려고 율무가 든 이동장을 들고 막 현관을 나오던 차에 모터 소리가 평소와 다른 것을 알아차렸다.


지상모터는 햇볕방 마루 밑에 장치해놓은 모터로 물탱크의 물을 집안으로 끌어주는 역할을 했다. 도시에선 어려움 없이 사용하던 물이 이곳에선 두루 신경 쓰이는 장치들을 거쳐야 겨우 연결되었다. 지하 깊숙이 50미터가량 심어놓은 수중모터와 장치들을 연결해 주는 컨트롤박스, 수중의 물을 물탱크까지 끌고 오는 물 호스, 물탱크 수위를 조절하는 센서선과 감지기, 물탱크 물을 집안으로 옮겨주는 지상모터까지 참으로 여러 섬세한 장치에 의존해 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물탱크의 수위 조절 센서에 문제가 생겨 팔월 중순부터 삼일에 한 번씩 우물 뚜껑을 열고 수동으로 물 채우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비나 그치고 방법을 찾자고 하던 것이 팔월 내 비가 그치지 않아 미루게 되었고, 율무 사태를 맞아 아예 관심사를 벗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지상모터까지 고장 났으니 당장 물을 한 방울도 쓸 수 없게 생겼다. 낙담이 너무 커서 우리는 차라리 고요했다.

“일단 가자.”

모터의 전원 코드를 뽑아내고 나는 말했다. 병원부터 다녀와야 해서 살펴볼 여유도 없었다. 막 나가던 차에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한 비와 굉음을 그치지 않던 모터까지 모두가 우리를 공격하는 듯했다.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한 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 율무 열이 높아 항생제와 진통해열제 주사를 맞히던 시기였다. 치료를 마친 수의사는 우리 표정이 너무 침울해 보였는지, 짐짓 율무에게 말을 걸었다.

“녀석아 네가 얼른 나아야 나도 발 뻗고 자겠다. 에이 참, 맘이 짠하네.”

그 말에서 얼핏 무슨 희망을 보았던가, 내 입에선 생각지 않은 말이 나왔다.

“선생님! 혹시 지하수 모터에 대해 좀 아세요?”

짠하네, 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수의사의 어둑했던 얼굴이 일순 어리둥절하다 밝아지고 있었다.

“아, 그럼 알죠. 여기서 나고 자랐는데. 왜요 우물에 문제 생겼어요?”

순간 내 눈도 밝아왔다. 수의사는 어느새 메모지를 가져다 우물의 전반적인 구조를 그려 보였다. 아주 적극적이었다. 밭에서 막 일하다 온 것처럼 그을린 얼굴에 편한 차림으로 수더분하게 우리를 맞아주던 선생님이었다. 율무의 상태에 대해서는 장담을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더니 드디어 자신 있게 말해 줄 분야를 만나 신이 난 것 같았다. 우리의 사정 얘기를 듣는 중에는 병원에 구비해 둔 연장통까지 들고 왔다. 무슨 연장이 어떻게 쓰이는지 점검할 사항을 짚어 설명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설명보다는 깔끔하고 규모 있는 연장통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갖춘 장비들이 전문가 수준이었다.

"우물이 계속 속을 썩이면 결국 우리는 이 고장을 떠날 수밖에 없어요."

비장하게 나는 말했다.

"갑시다."

결정적인 내 한 마디에 수의사는 결국 그 듬직한 연장통을 들고 일어났다. 병원 문까지 닫고 자신의 우람한 지프로 자그만 우리 병아리색 차를 따라 우중을 달려 산골짜기까지 와 준 것이다. 모터 이상은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되었다. 파워스위치를 교체하고 압력 밸브를 조이는 걸로 괜찮아졌다. 우물에 필요한 부품들을 항상 여벌로 갖추고 있는 우리 준비성도 한몫했겠지만 수의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무용지물이었다. 출장비를 배로 지불한다 해도 그 정도 일엔 와 줄 사람을 구하기 힘든 동네인 것이다.


기세라는 게 있는지 그 뒤로 일이 좀 풀리기 시작했다. 한 달 여 만에 보리도 결국 찾아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 동네 꽃할머니 집에 있는 걸 숲 고양이 밥 주러 다녀오는 길에 발견했다. 할머니 말로는 이삼일 전부터 산에서 내려와 멸치 따위를 얻어먹고 갔다고 했다. 반가워하면서도 낯설게 경계하는 보리 녀석을 어렵게 유인해 오면서 우리는 모처럼 등을 펴고 심호흡을 했다. 고개 젖혀 하늘도 보고 겹겹이 흐르는 산자락도 둘러보았다. 온통 음산하고 축축했던 숲은 이제 가을바람을 갈피마다 품어 아름답게 부풀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에 우리도 얼마간 들떴다. 모두가 고맙기만 했다. 기꺼이 구원자가 되어준 읍내 수의사도, 마침내 무사히 돌아온 보리도, 보리에게 멸치를 나눠 준 꽃할머니도, 꿋꿋이 치료에 협조하며 기운을 내고 있는 율무도, 놀라운 효과를 보여준 달콤한 설탕까지도.


1602370472776-1.jpg 한 달 여 만에 찾은 보리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동생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그동안은 손을 못 대고 있던 물탱크의 수위조절 센서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팔월에 문제가 생긴 뒤로 지금까지 삼일에 한 번씩 전원을 넣어 물을 받는 걸로 땜질을 하고 있었다. 한 달 보름 남짓 그 짓을 했다. 이젠 더 이상 미뤄놓기 힘들었다.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해결해야 했다. 며칠 전엔 새벽 최저 기온이 2도까지 하강해 밭작물이 냉해를 입었다. 이제 곧 영하의 기온이 닥칠 것이고 물이 정체되어 있으면 땅 속 호스 속에서 얼어 더 큰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이웃 말로는 한번 땅속에서 물이 얼면 다음 해 봄이 될 때까지도 잘 녹지 않는다고 했다. 단순히 물탱크 수위조절을 하는 센서볼 이상이면 우리끼리 궁리해 교체할 수도 있고 안 되면 마을 반장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체를 하고도 지금처럼 물탱크 물이 넘칠 경우엔 센서선 전체를 갈아야 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진다. 그걸 마주하기가 두려워 지금껏 외면해온 점도 있었다. 내일은 꼭 진단을 해 보자. 이틀 전 아침 커피 시간에 동생과 단단히 다짐했다. 그날은 율무를 데리고 또 병원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다. 병원 치료는 이제 멈추었지만 그래도 율무 상태를 정기적으로 검진할 필요도 있고, 소독제와 영양제, 코반도 더 구비를 해야 했다. 코반은 자가 점착식 밴드인데 설탕을 붓고 그걸로 감아 놓아야만 까칠한 율무의 혀를 감당할 수 있었다. 잔뜩 사다 놓아도 금방 모자라게 되어 읍내 약국에 몇 박스나 주문 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이틀 전 율무 병원에 가는 길에 삼거리 국도에 이르러 신호를 받고 서 있을 때였다. 맞은편 도로에도 오토바이 한 대가 신호에 걸려 멈춰 있었는데 진순이 아빠였다. 진순이 아빠는 숲 고양이 밥 주러 가는 아침 산책길에 자주 마주치던 이웃 마을 사람이었다. 어, 하고 동생이 알아본 순간 진순이 아빠도 우리를 알아보았다. 오랜만이었다. 일상이 흔들리면서 산책 시간이 일정치 않아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잘 지내요? 하고 큰 소리로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읍내 가는 중이라 하니, 진순이 아빠는 경로당 싱크대 문짝을 고쳐 달라 해서 다녀가는 거라 했다. 순간 언젠가 그가 말했던 내가 동네 맥가이버요, 하던 말이 신통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소리쳐 물었다.

“우물 센서도 볼 줄 알아요?”

“우물 센서? 아, 그거 내가 전문이에요”

진순이 아빠에게서 반가운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어 두 차량은 움직여 각자 갈 길을 갔다. 이름도 연락처도 사는 곳도 모르니 사실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자매의 커피 타임에 진순이 아빠가 턱 마당에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 집을 가르쳐 준 적도 없었고, 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반갑고 고마워서 당황할 짬도 없었다. 우선 안으로 청해 같이 커피와 빵 한 조각을 나누면서 대략 설명을 했다. 오케이. 진순이 아빠가 바로 자세를 갖췄다. 이내 마당에 나가 물탱크도 보고, 비탈길을 내려가 우물의 컨트롤박스도 보고 올라오더니 지시를 했다.

“나를 우리 집에 태워가서 필요한 거 갖고 같이 옵시다.”

진순이 아빠는 운동 삼아 걸어온 상태였다. 오케이. 우리도 태도를 갖췄다. 진순이 아빠 거처는 삼거리 경로당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길가 언덕바지에 있었다. 집 마당에 올라가 보니 1톤 트럭을 개조한 캠핑카도 보이고, 창고도 두 개나 있었다. 진순 아빠가 창고 두 개를 열어 갖가지 연장을 구경시켜주고는 몇 가지 연장을 들고 나왔다. 집에 다시 와서 그 장치들을 사용해 꼼꼼히 점검해 보고 내린 결론은 센서볼 이상이 아니라 센서선 이상이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바로 그 일이 닥친 것이었다.


센서선이라 함은 지난 칠 년간 우리의 애물이었다. 처음 설치할 땐 토목공사 중이라 굴삭기로 땅을 파서 전선관 전체를 안전하게 묻어 놓았다. 그런데 당시 설치를 맡은 사람이 무슨 점검인가를 하다 무리하게 당기는 중에 끊어져 복구가 힘들었다. 그 뒤 임시방편으로 우물에서부터 마당 물탱크까지 150미터 정도를 길과 비탈을 따라 온갖 나무 위에 걸쳐 연결해 놓았다. 전선관에도 넣지 않은 가느다란 전선 두 개가 긴 세월 무방비 노출되어 비바람과 칡넝쿨을 견뎌 온 것이다.

“아, 이런 거 쓰면 안 되는데.”

전선을 보자마자 진순이 아빠가 말했다.

“이러면 과부하에 걸리기 쉽지요. 사람도 사물도 70프로까지만 채워야 해요. 그래야 여유가 있어 무리가 없는 거예요.”

맞는 말씀이었다. 전선은 그냥 전기가 오가는 선인 줄만 알았지 용도에 따라 굵기가 제각각인 줄은 몰랐다.

“이런 건 굵은 전선을 써야 해요. 외부에 설치할 땐 전선관에 넣어야 더 안전하게 오래 쓸 수 있고요.”

우리는 착실한 학생이 되어 진순 아빠의 말씀을 경청했다. 그리고 이참에 호칭을 정하기로 했다. 처음 산책길에서 마주칠 무렵 데리고 다니던 진돗개 이름이 진순이라 편의상 우리끼리 진순 아빠라 부르고 있던 것이었다. 뭐라 불러드릴까요, 물으니 대뜸 머슴이라 불러 달라 했다. 이어 생년월일이며 자신의 홈페이지도 알려주고, 살아온 내력까지 흥미롭게 펼쳐 보여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응, 맞어요. 난 철이 없어. 철드는 거 싫어요. 철들면 무거워요.”

자유롭고 유쾌한 면이 개구쟁이 소년 같다 말했더니 나온 말이었다. 호칭은 금강 아저씨라 정했다. 홈 페이지 아이디가 금강초롱이었다. 금강 아저씨는 아는 것이 많아 말씀도 많은 편이었는데, 일은 군더더기 없이 척척 진행했다. 우리에게 자잘한 작업 몇 가지를 지시해 놓고, 자신은 신속하게 우물과 물탱크의 거리 측정을 마친 뒤 읍내 철물점에 가서 전선과 전선관을 150 미터씩 사 왔다.


1602370478490-1.jpg 전선관에 전선을 넣고 있는 나

전선관 속에 전선을 집어넣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단순 노동은 자신 있어요, 하고 겁 없이 달려든 우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서로 교대를 했다. 그 사이 금강 아저씨는 우물로 내려가 필요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계속 작업을 바꿔 가며 전선을 전선관에 집어넣었다. 처음엔 그래도 원활하게 들어가던 것이 갈수록 막히고 있었다. 한 사람이 전선관을 들어 올려 줄넘기 줄처럼 출렁출렁 움직여야 전선이 겨우 몇 센티 들어가다 말았다. 백오십 미터나 되는 전선을 한꺼번에 전선관에 넣는 건 거의 무모한 작업이었다. 어릴 때 백 미터 달리기 하던 그 거리를 생각해보라. 결국 금강 아저씨가 올라와 보더니 중간에 두 군데를 끊었다. 나중에 이으면 된다고 했다. 볕이 따끈한 날이라 꽤나 덥더니 작업을 마칠 때쯤엔 시원한 바람이 몰려왔다. 전선을 다 채우는 것만도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남은 작업은 다음날로 넘기기로 했다.

“급히 가면 탈이 나요.”

금강님의 현명한 말씀이었다.

두 사람이 끊긴 부분을 꼼꼼히 여며 검정 테이프로 감고 연장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집으로 들어와 급히 피자를 만들었다. 한꺼번에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둔 도우를 꺼내 놓고 텃밭에서 막 끊어온 고추와 바질을 씻었다. 토마토 병조림이야 언제든 있는 것이라 뚝딱 피자 두 판을 구워냈지만 정신이 없어 간도 보지 못했다.

“와, 나 이런 거 처음 먹어 봐요. 나 정말 여기 머슴 하고 싶네. 맨날 이런 거 좀 먹어보게."

입맛에 맞나 걱정스럽더니 유쾌한 금강 아저씨 말에 마음이 놓였다.


1602370444235-1.jpg 금강 아저씨께 대접한 텃밭 피자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금강 아저씨가 마당에 나타났다. 이제 또 하나의 난관을 넘어야 했다. 우물 컨트롤 박스에서 물탱크까지 어제 작업한 전선을 연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금강 아저씨는 우물로 내려가고 우리는 마당 비탈 위에서 굽어보며 전선관을 잡고 길을 만들었다. 우물에서부터는 차바퀴가 닿지 않을 산기슭 쪽으로 최대한 붙여 비탈길을 따라오게 한 뒤, 중간 즈음엔 비탈로 끌어올려 마당 안쪽 산 아래로 길을 이었다. 그곳엔 전봇대가 있어 전봇대에 걸쳐 허공으로 번쩍 들어 지붕 처마에 고정을 시켰다. 이제 여러 번 못질을 해서 처마를 따라 마당 입구 물탱크까지 전선관을 고정하면 되었다.

“금강 아저씨는 다 좋은 데 말씀이 좀 많아요.”

작업 마무리 단계에서 마당 의자에 앉아 홍차와 옥수수를 먹고 있을 때 동생이 말했다. 동생 입에서 그리 허물없는 말투가 나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맞아. 과부하야.”

나도 맞장구쳤다. 아저씨뻘의 연장자에게 나이의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작업하는 사이 아저씨가 이탈리아를 오가며 한창 사업을 벌인 얘기며, 얼마 전까진 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했는데 사업이 기울어 경매로 넘어간 사정이며, 캠핑카 타고 구석구석 다닌 이야기까지 마구 집어넣은 머릿속이 벙벙했지만, 틀을 벗어난 생각은 신선했고 선문답 같은 말투는 재미있었다.

“내가 좀 그래. 말이 자꾸 많아져요. 아 내 말을 알아들어주니 더 신나서 그랬지요. 보통은 내가 말해도 상대가 알아듣지도 못해.”

하하, 금강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 와중에도 가만 앉아 있지 않고 설치해 놓은 것들이 제대로 작동을 하는가, 몇 번이나 비탈길을 오가며 살피더니 서너 번 테스트 끝에 드디어 합격을 선언했다. 그로써 무거운 우물 뚜껑을 여닫으며 물을 올리던 긴 고역이 마침내 끝났다.


일을 마친 시각은 어제 오후 한 시, 지금은 다음날 새벽 한 시다. 무슨 흥분인가에 싸여 나는 잠을 설치는 중이다. 잔다고 여겼는데 그간의 일이 두서없이 떠오르는 것이 언제부터 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율무를 치료하던 수의사 덕분에 지상 모터를 고치게 되었고, 율무를 데리고 병원 가던 중엔 금강 아저씨를 만나 오랜 근심이던 센서선을 교체하게 되었다. 율무의 부상은 우리에게 시련이었지만 그 사이 귀한 도움을 두 번이나 받았으니 동생의 정성이 어딘가에라도 닿은 걸까.

“평생 걱정 없어요.”

어제 떠나기 전 금강 아저씨가 장담해 주어 속이 후련했다. 이틀을 고생하고도 금강 아저씨는 수고비를 전혀 받으려 하지 않았다.

“아, 나한테 기쁨을 줬잖아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뻐요. 그게 오히려 내가 받은 거예요.”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라는, 그런 아름다운 철학을 책이 아닌 실생활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땅콩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