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놀이

진달래 꽃전, 진달래 꽃차

by 구름나무

우리 마당 옆 나지막한 산에도 진달래꽃이 피었다. 밖에 나가 일을 할 때면 노래가 흥얼흥얼 나온다.

“진달래 꽃피는 봄이 오면은, 나는야 언니 따라 화전놀이 간다.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를 깔고 진달래 꽃전을 같이 지진다.”

어린 시절부터 봄이면 부르게 되는 노래, 화전놀이. 낫으로 묵은 풀을 정리하고 갈퀴로 낙엽을 그러모으다 허리를 편다. 작년에 진달래가 피었던 자리를 어림해보면 언뜻 불그레한 빛이 보인다. 진달래꽃 빛깔은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아득하다. 지나갈 것도 다가올 것도 아닌, 늘 저만치 혼자서*(김소월 詩 산유화 중) 피어 있다. 초록이 섞여 드는 봄 산은 아직 갈색조의 묵은 빛이다. 내가 부르다만 노래를 동생이 이어 부르기도 한다.

“달님처럼 둥그런 진달래 꽃전은 송화가루 냄새보다 더 구수하며, 나는야 언니하고 같이 먹으면, 뻐꾸기도 달라고 울며 조른다.”

기껏 부르고선 노랫말에 괜한 시비를 건다.

“근데 왜 언니랑 동생만 가냐. 골짜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대꾸할 것 없이 나는 다시 연장을 잡으며 새로운 노래를 시작한다.

“산-에 산-에 진달래꽃 피-었습니다.”

골짜기는 조용하다. 키보다 높이 자란 갈대밭에선 수상한 기척이 간간이 들려온다. 마른 참나무 잎들은 수시로 버썩거린다. 소리가 커서 움찔하지만 대부분은 새들이다. 야행성인 멧돼지나 오소리가 나타날 시각은 아니지만 모를 일이다. 막 어둠이 내릴 때나 걷힐 무렵, 갈대숲을 지나가는 멧돼지 가족을 몇 번인가 보았다. 겁 많은 자매는 서로를 의지해 늦은 아침 들일을 나온다. 대파 한 줌에 걸려 넘어진 동생이라도 의지가 된다. 아침에 동생은 내가 마당에서 다듬던 대파를 타 넘다 무릎이 까졌다. 얼마나 시원찮으면 대파 한 줌에 넘어지나, 웃지도 못하고 빨간약을 호호 불며 발라주었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날-저뭅니다. 한 잎 두 잎 꽃 뿌리며 돌아옵니다. 뻐꾹새 먼-울음도 들려옵니다.”

날이 저물려면 한참 멀었지만 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노래 한 곡조로 뿌듯한 마무리가 된다. 꽃물이라도 든 것 같은 발그레한 무릎을 절룩이며 동생이 또 재미 삼아 시비를 건다.

"무슨 꽃을 날 저물도록 따냐. 재까닥 집에나 들어가지."

어릴 땐 노래를 자주 불렀다. 파란색 표지로 된 '세광 동요 350 곡집'을 꽤 오래 지니고 있었다. 책 속에 나오는 노래를 거의 다 불러 보았다. 음을 모르면 피아노로 짚어 익혔다. '해 저무는 냇가에 달맞이꽃이, 외롭게 혼자서 피어 있어요.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버려서 얼굴에 노란 물이 들었나 봐요.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동요라는 게 신나고 밝지만은 않았다. 외로운 곡조도 많았다. 동화도 그랬다. 쓸쓸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도 어린 나날은 봄날의 새싹처럼 밝은 곳을 향했다. 지금은 밝음과 어둠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진달래꽃 따다 꽃전을 부칠까. 며칠 째 생각이 맴돈다. 꽃차를 우리고 꽃전을 굽고. 밝을 땐 낮달처럼 희미한데 잠들 즈음엔 선명해진다. 어둠 속 연분홍 꽃전은 여릿하게 마음을 흔든다. 작년엔 보라색 제비꽃전을 구웠다. 화사한 제비꽃전은 마음을 흔들기보단 사로잡는다. 올해 마당의 제비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지금은 봉긋한 둔덕마다 노란 양지꽃이 한창이다. 볕을 모아놓은 듯 환하다. 생강나무꽃 노란빛은 사그라지고 있다. 생강나무꽃이 사그라질 때야 진달래는 꽃잎을 연다. 꽃이 지기 전 한 줌만 따서 꽃전을 부치자고, 어젯밤에도 여릿여릿 잠이 들었다. 꽃 생각을 하며 잠드는 사월, 화전놀이다.

*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마당 옆 산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꽃


앞 산 진달래꽃


비 오기 전 한 줌 꺾어다...


진달래 꽃전, 진달래 꽃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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