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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Apr 27. 2021

두릅, 머위, 당귀 한 접시

    때를 놓치면 섭섭한 것이 있다. 봄날의 꽃구경과 나물이다. 벚나무 꽃에 초록이 섞여 들면서 마을길은 파스텔 조의 풍경이 되었다. 숲 고양이 밥자리까지 하루 한 번은 그 환상적인 터널을 걷게 된다. 류시화 시인의 시 구절처럼, 보고 있어도 그립다. 한 눈 팔 겨를이 없다. 꽃잎은 흩어지고 초록은 성큼 다가온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벅차다. 오직 지금을 즐기자고, 가벼운 옷차림에 천천히 걸음을 내딛지만 느긋하기란 쉽지 않다. 사방 바람은 불고 꽃잎은 날고 할 일은 많다.


  흙을 뒤집고, 부엽토를 긁어오고. 풀을 맨다. 일이든 산책이든 빈손으로 집에 들어오게 되지는 않는다. 산비탈에선 두릅을 따고, 계곡에선 머위를 꺾고, 들에선 취와 당귀를 뜯는다. 천지에 쑥쑥 오르는 쑥은 에고, 눈으로 훑으며 다음으로 미룬다. 적당히, 가 중요하다. 도를 초과하면 맛도 멋도 즐길 수 없다.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무치는 것도 쉬엄쉬엄.           


  살짝 데친 머위는 된장에 무치고 두릅은 고추장에 무친다. 모양 좋고 여린 순은 따로 모아 머윗잎쌈과 두릅회를 만든다. 당귀는 생으로 옆에 곁들이고 남은 것은 전을 부친다. 당귀 전을 돌돌 말아 썰어 놓으면 먹기에도 보기에도 좋다. 두릅과 머위, 당귀. 봄에 맛보지 않으면 섭섭한 나물들이다.


  두릅은 올해 양이 퍽 줄었다. 울타리 안 비탈진 길가에 몇 줄기 꽂아 놓은 것이 해를 거듭하며 제법 퍼졌는데, 그런 만큼 손도 많이 탄다. 올해도 알맞은 때를 기다리던 중 먹음직한 것들만 하루아침 사라졌다. 안타까울 틈은 없었다. 꼭 그만큼 그날 바로 이웃에게 얻었다. 참 알 수 없는 조화다. 부족하다 싶으면 채워진다. 덤으로 아스파라거스까지 얻었다.   

  

  두릅을 준 이는 가까운 이웃 경애 씨다. 자그마한 몸집에 목소리가 낭랑한 경애 씨. "여기 와 봐요." 부르는 소리에 뒷마당에 가보니 가파른 산비탈 위에서 두릅을 몇 개 던져 주었다. 마당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 동생과 나를 보고 불렀다 한. 거리가 멀어 몇 마디 소리치듯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잠시 뒤 마당까지 와서 산에서 딴 두릅을 뭉텅 내놓았다. 경애 씨는 산을 잘 탄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잘 안다. 작년 봄에도 산을 타던 중 내려와 더덕을 제법 주고 갔다. 아스파라거스는 본인도 이웃에게 얻은 것을 맛보라고 몇 줄기 나눠주었다.


  마운 이웃 덕분에 풍성하게 차린 한 접시.


머윗잎 쌈밥, 두릅회, 데친 아스파라거스, 된장, 두부 구이, 두릅과 당귀 무침


돌돌 말아 썰어 놓은 당귀전, 데친 아스파라거스, 당귀잎, 두릅회, 초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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