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이 무르춤해질 때가 있다. 가끔이라 하고 싶지만 사실은 종종 그렇다. 잠에서 깨어, 할 만한 일을 하고 다시 잠들고.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하루도 같은 날은 없지만 그다지 다르지도 않다 싶고. 같고 다르고도 별 의미 없다 싶고. 이런 게 편안하다는 것이겠지, 나름 갈파 보는 것도 시들하고. 비 올 때면 사물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고, 젖은 숲 휘감는 바람을 본다. 날이 개면 환한 풍경에 시선을 보낸다. 색이 변하고 있는 풀과 나무들, 마당 구석에 핀 구절초, 높은 하늘 푸른빛과 군데군데 흘러가는 흰 구름. 구름을 보고 있으면 하루가 간다. 모여들고 흩어지고. 바람과 해와 물의 작용. 그냥 바라본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 조차 생각이다.
아주 시들하다 싶으면 계절에 핑계를 댄다. 가을이 되어 그런가, 하고. 풀도 시들하고 나무도 시들해지는 계절이니 마음도 시들해지지 않겠는가. 봄엔 봄이라 아득한가 했다. 웬만한 건 계절이 해결한다. 시냇물에 종이배 띄우듯, 흘러가는 것들에 맡겨두면 된다. 계절, 바람, 구름 같은 것들. 구경꾼의 시선으로 보자면 나도 흘러간다.
최근 핸드폰 기본 벨소리를 바꾸었다. 피아졸라의 ‘카페 1930’. 내 폰의 전화번호부는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가족과 지인, 이웃. 분류에 따라 지정곡을 달리 설정해 놓았다. 그중 특별히 자주 걸려오는 전화엔 또 저마다 고유의 지정곡이 있다. 피아졸라의 카페 1930은 그러니까 모르는 번호일 때만 울리는 것이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으므로 제풀에 끊어질 때까지 음악 감상을 하게 된다. 느린 곡조의 쓸쓸한 탱고. 가을에 어울리는 곡이다.
벨소리를 바꾸며 폰에 저장된 음악을 몇 곡 듣게 되었다. 한번 들은 곡은 며칠을 따라다닌다. 그 음악을 즐기던 시절로 어쩔 수 없이 나를 데려가기도 한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걸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이 가장 좋다, 하고 주문을 걸지 않아도 지금이 가장 좋은 것을 안다. 도시에 살던 시절, 그러니까 사십 대까지만 해도 늘 음악을 들었다. 이젠 좀처럼 찾아 듣게 되질 않는다. 피부의 느슨해짐과 함께 무엇엔가 지독하게 몰입하던 팽팽함도 탄력을 잃었는가 싶다. 시가 무서워 꼼짝 못 하는 마음도, 가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사무치는 기분도 없다.
턴테이블은 산골에 오면서 처분했다. 오래된 시디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어딘가 서랍에 들어 있고, 시디와 카세트 라디오 겸용 오디오만 창가에 두고 사용 중이다. 음악 플레이어 기능보다는 주로 라디오를 듣는다. 가끔 듣고 싶어지는 곡이 있어도 폰의 유튜브를 통해 짧게 접한다. 얼마 전엔 파바로티가 부르던 ‘남몰래 흘리는 눈물’, 조수미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찾아들었다. 스메타나의 몰다우,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바흐의 샤콘 같은 것들은 지난봄에 들었던 음악이다. 비슷한 기후인데 봄과 가을은 확실히 기분에서 차이가 난다. 봄엔 문을 열고 나서게 되고 가을엔 문을 닫고 들어오게 되는 그런 차이일까.
이왕 생각난 김에 좋아하던 곡들을 떠올려 본다. Wayfaring Stranger, Dust in the wind 같은 팝송, 영화 음악 중엔 흑인 올훼, 페드라를 좋아했다. 헬러윈과 스틸하트와 이글스의 노래도 좋아했고, 정태춘, 송창식, 전인권, 장사익, 김광석, 안치환 노래도 좋아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었다. 기타 연주도 좋고, 바이올린과 첼로, 해금도 좋았다. 오르간과 북소리도 좋아했다. 쿠바 음악에도 빠져 다섯 장으로 된 부에나비스타 클럽 시디를 사서 듣다가, 이천 년 초기 마침 우리나라에 왔을 때 직접 들으러 가기도 했다. 콘서트에 다니는 취미는 없지만 직접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으면 들으러 다녔다. 송창식 노래는 신촌 생맥주집 라이브를 몇 번 들으러 갔다. 한 번은 좁은 엘리베이터에 송창식 씨와 같이 탄 적도 있었다. 하얀 한복을 걸치고 벙글벙글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종로 부근엔가 있던 전인권 카페에도 노래를 들으러 다녔다. 노래 제목에서 이름을 딴 칵테일 하나를 시켜놓고 기다리면 저녁 무렵 전인권 씨가 부스스한 긴 머리로 나타나, 카페 한쪽에서 멤버들과 느릿느릿 밥을 먹고 노래를 시작했다. '돛배를 찾아서'라는 칵테일을 주문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주방 아주머니 생일이어서 전인권 씨가 걸쭉한 저음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 케이크를 손님들에게 한쪽씩 돌렸기에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양재동 정토 회관에 장사익, 안치환 씨 노래를 들으러 간 적도 있고, 춘천 어느 절에 김영동 국악 연주를 들으러 간 적도 있었다. 전화벨 하나 바꾸면서 이렇게 줄줄이 지나간 일들이 딸려 나오다니. 참 여러 가지를 하고 살았구나 싶다.
음악에 몰입한다는 건 외부를 차단하는 거였다. 지금은 차단할 외부 같은 건 없다. 가을은 앞뒤 없는 계절이다. 붉고 푸르고 노란, 세상의 빛이 다 모여들어도 가을숲은 하루하루 투명해진다. 아침이면 골짜기에 가득한 안개도, 새와 벌레의 자욱한 울림도, 볕과 바람 속에 투명하게 흘러가는 나날. 문득 걸려 온 낯선 전화에 카페 1930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