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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May 18. 2021

시금치 김밥보다 맛있는 개망초 김밥

  오월, 꽃이 피기 전 개망초는 나긋하다. 키가 성큼 자란 개망초. 허리를 많이 굽히지 않고 쉽게 톡톡 꺾을 수 있다. 위의 부드러운 줄기만 꺾는다. 손에 모아 쥐고 바라보면 낱낱의 잎이 모여 싱그러운 초록 다발. 꽃다발 못지않게 어여쁘다. 냄새도 향긋하다. 곧 피어날 꽃을 줄기 속 어딘가에 품고 있나 보다. 유월이 되면 줄기를 꼿꼿이 세워 동글동글 귀여운 달걀 꽃을 피울 것이다.

     

  아무데서나 자라 잡초로 취급받기도 하는 개망초. 나물 좋아하는 사람에겐 망초대 나물이라 불리며 대접받는다. 쌉싸름하고 향긋한 망초대 나물. 아무데서나 자라지만 아무데서나 나물을 하는 건 위험하다. 나물 하기 좋은 시기엔 제초약도 사방 뿌려진다. 생명력 강한 들풀은 약을 쳐도 며칠간 멀쩡해 보일 수 있다. 나도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나물을 한다.

     


  개망초는 벌레도 안 꼬이고 깨끗해서 다듬는 수고가 필요치 않다. 간단히 씻 데치며 궁리를 한다. 무얼 만들까. 가장 기본은 들기름과 소금만으로 조물조물 무치는 것. 개망초 맛을 담백하게 즐기기엔 최고다. 내 입맛만 고집할 수는 없다. 들풀만 봐도 입맛이 도는 나와 달리 동생은 풀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하얗고 부드럽고 기름진 것 선다. 강요하지는 않는다. 각자 체질에 따라 몸에 필요한 것도 소화력도 다를 것이다. 풀을 반기지 않아도 튀김이나 전, 김밥으로 만들어주면 좋아라 한다.        

  

  개망초 양이 많아 김밥도 만들고 나물도 무치기로 했다. 사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같이 나가 개망초 꺾어오자고 동생을 꼬여낼 때 김밥을 들먹였다. 동생은 손이 빨라 금방 바구니를 채운다. 혼자 나물 할 때면 한가히 움직이던 나도 동생과 함께일 때는 손이 빨라진다. 이제 거의 끝물인 개망초.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잔뜩 꺾어왔다. 끓는 물에 소금 한 술 넣어 데친 개망초를  둘로 나눴다. 김밥에 넣을 것은 긴 모양 그대로, 나머지는 잘게 다졌다. 풀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 나물은 되도록 잘게 다져 무친다. 양념도 반반, 소금과 고추장 두 종류로 한다. 동생은 담백한 맛보다는 고추장에 파 마늘을 넉넉히 넣어 얼얼하게 무쳐주는 걸 좋아한다. 이제는 김밥을 만들 차례.

     

  나무도마에 김을 놓고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한 밥을 얇게 편 뒤, 개망초 무친 것을 듬뿍 올렸다.  

  "개망초만 넣는 거야?”   

  옆에서 구경하던 동생이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지난번 시금치만 넣은 김밥도 맛있다 했잖아.”

  나는 대답했다. 보통은 달걀과 단무지, 당근 같은 걸 함께 넣는다. 요즘엔 어째 한 가지 재료만 넣게 된다. 단순한 색과 심심한 맛이 좋아졌다.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으면 영양 균형에도 문제가 없다.

  “괜찮아. 마요네즈 찍어 먹으면 맛있겠네.”  

  동생이 중얼거렸다. 김밥 속을 골고루 넣어줘도 마요네즈에 곧잘 찍어 먹는 동생이다. 바나나 조차도 마요네즈를 뿌려먹는다. 생각만 해도 느끼해서 나로선 도무지 모를 식성이다.

     

   속에 무엇이 들어가든 김밥은 일단 완성되면 근사해진다. 참기름을 발라 윤기가 도는 까만 김밥의 자태. 참기름과 김, 갓 지은 밥과 나물의 오묘한 조화에서 풍기는 냄새는 더 근사하다. 역시 조화란 중요하다. 짱구 머리 동생을 흘깃 보며 나는 무엇과 만나 이런 향을 풍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는 공간, 새벽 시간, 그런 것들과의 조화도 괜찮다. 잘 드는 칼로 김밥을 쓱쓱 썰 때의 나와 김밥이 자아내는 한 순간도 그렇다. 내 기대에 부응해 산뜻하게 썰어지며 알알이 모습을 드러내는 김밥.

     

  “어때, 맛있지?”

  김밥 꼬투리 하나를 동생 입에 넣어주었다. 한참 오물거리고서야 동생은 입을 열었다.

  “먹을만하네. 시금치 김밥보단 못하지만.”

  나도 꼬투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순간 입안에 퍼지는 들판의 향기. 동생은 부드럽고 달큼한 시금치 김밥이 더 좋다지만, 역시 내 입엔 아삭하고 쌉싸레한 개망초 김밥이 더 맛있다!

     


개망초 김밥, 무 오이 피클,  병아리콩 단호박 수프, 개망초 고추장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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