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데 잘 모르는 남자

이상하다, 나 얘랑 사귀는데?

by 체리

프랑스에서 최종 면접을 볼 때였다. 전 사장은 내 남자 친구가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니 이런 거는 취직부터 시켜주고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 프랑스는 이런 거 안 물어볼 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었다. 사장이 면접 내내 내가 졸업한 학교에 가진 관심보다 내게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면서 다니엘의 출신 학교를 묻는 데 보인 관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어이 아저씨, 그 남자는 내 거라고! 갖가지 생각이 머리를 휩쓸었으나 문제는 내가 뭐라고 대답하면 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다니엘이 학부를 마친 학교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다니엘은 학부를 나온 후 석사를 두 번 했고, 그 후에는 변호사 교육기관에서 잠시 공부했기 때문에-면접 시점에 다니엘이 다니던 곳- 나는 그 모든 기관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 세브르 바빌론 근처에 있는 것 같았는데 잘 몰라요"라고 했다. 어쩌면 사장은 내 대답 때문에 내가 3D 남자 친구와 교제 중인 것은 아닌지 염려했을지도 모르겠다. 2년을 사귀고 나니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상당히 많아졌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면접을 보던 당시 다니엘이 다녔던 교육 기관 이름을 모르고, 다니엘은 아직도 내가 졸업한 학교 이름을 모른다. 내가 말해주면 어, 맞아, 거기!라고 하지만 돌아서면 또 잊어버린다. 그래서 다니엘은 내게 잘 알지만 잘 모르는 남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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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안 쓰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어진 이 시대에도 술술 외우는 전화번호 몇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가족 전화번호와 연인의 전화번호. 그런데 사귄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나나 다니엘이나 서로의 전화번호는 못 외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졸지에 프랑스에서 쓸 새 전화번호를 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010-0000-0000이 아닌 06(프랑스 핸드폰 앞자리)-00-00-00-00으로 끊어 읽는 프랑스식 읽기에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에 다니엘 번호를 외울 새가 없었고 다니엘은... 아니 왜 안 외웠지..? 애초에 가족들 번호도 외워서 쓰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을뿐더러 내가 프랑스 번호를 천년만년 쓸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나는 허약체질인지라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다니엘 번호는 핸드폰을 보지 않고도 외우는 편이 좋았지만 '쟤도 내 번호 모르는데 왜 내가 외워야 해'라는 생각이 들어 외우지 않았다. 혹시 2000년 이후 출생인 분들이 '왜 굳이 전화번호를 외우지'라는 생각을 하셨다면.. 제가(91년생) 어릴 적에는 많은 집에 집 전화가 있었고 초3 이전의 어린이들은 주로 공중전화를 썼기 때문에 전화할 일이 많은 친구 집 번호는 외우는 게 편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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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어찌 이뿐일까, 알아야 할 것들은 또 어떻고? 나에게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이지만 다니엘에게는 '마고 할머니', '에릭 할아버지'이다 보니 같은 관계도 더 많은 이름으로 기억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함께 살면서 내게는 다니엘의 친구들을 만나고 얼굴을 익힐 기회가 있었지만 다니엘이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내 친구들을 만날 만큼 충분한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시 다니엘이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도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염려가 된다. 게다가 다니엘은 막 한국어를 배워나가는 단계여서, '~은'이나 '~혜', '~현' 등, 여성의 이름에 많이 쓰이는 글자가 반복적으로 나오면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다니엘은 여섯 명 정도 되는 내 친구들의 이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이며...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더 큰 문제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년까지는 내 친구들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고 그들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지금 다니엘의 한국어는 ㅏ와 ㅑ, ㅗ와 ㅛ, ㅐ와 ㅔ(형태상의 유사성)의 구분 및 ㄷ, ㅌ, ㄸ나 ㅂ, ㅍ, ㅃ(다니엘 기준으로 발음의 유사성)으로 이루어진 된소리, 거센소리에 가로막힌 상태라 쉽지는 않겠지만 둘 사이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니 다니엘이 언제까지나 내 친구들을 헷갈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단계의 갈등과 씨름하고 있지만, 다니엘 이전의 관계에서는 친밀감을 쌓는 데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소개팅을 나가면 '다신 안 만날 사람'이라는 생각에 신이 나서 수다를 떨었고, 소개팅 자리가 너무 길어지면 초조했다. 상대에게 미안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내가 문제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쓰기는 부끄럽지만 누굴 만나든 만나지 않든 상관없이 불안했다. 굳이 내 문제를 나누고 싶지 않은데,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들이 언젠가 내 심층에 닿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왔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떤가. 굳이 내가 벽을 쌓지 않아도 언어며 문화 때문에 알아가는 과정이 험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 천연 요새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고, 역설적이게도 그 언어와 문화 문제 때문에,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문제의 공유가 가능했다. 우리의 관계는 늘 인생의 다른 부분들과 유리될 수밖에 없으며, 나와 다니엘의 세계가 생겼다는 것은 특별한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 부디 올해는 더 많이 알아나갈 수 있길. 순간의 귀찮음 때문에 외로움을 주는 일이 없길. 잘 부탁합니다 잘 모르는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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