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로맨스에서 멀어지는데
연애 초기에는 나름대로 부지런히 연락했던 다니엘이지만-그렇다고는 해도 한국 기준으로 '자주'인 편에 들지는 못했음- 이 연락 횟수는 다니엘이 취업을 하고, 또 내가 취업을 하면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다니엘의 일이 늦게 끝날 때는 상당히 늦게 끝나는 일인 탓에(최고 기록은 자정 즈음) 이런 연락 문제가 좀 불만스러워도 내가 드러내 놓고 서운함을 표출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연락이야 뭐 그렇다 쳐도 집안일 같은 건 필연적으로 먼저 오는 사람이,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집에 더 오래 있고, 위생에 더 많이 신경 쓰고 성질이 더 급한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게 큰 문제였다. 지금이야 한참 멀리 떨어져서 지내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지만 지난 1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집안일도 한 65~70퍼센트 해본 결과 이건 내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무엇보다 성질이 난다- 다시 같이 살게 되는 날 가사의 적절한 분배가 중요 쟁점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연락 얘기로 돌아가면, 각자의 문화에서 연애 시 연락 빈도에 관한 기대치가 무척 달랐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서는 문화의 영향이 60, 성격이 40 정도 되는 것 같다. 예전엔 얼마나 연락을 했는지 생각을 해봐도 '지금보단 훨씬 많이 했지' 이상의 객관적인 수치는 전혀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요즘은 얼마나 연락하는지를 공유하겠다. 주말 영상통화 (2번..? 서로 약속이 있거나 다니엘이 일하러 가는 주말에는 못할 때도 있다.) 하루에 메시지 몇 차례 정도인데 아주 옛날에는 '얘는 대체 왜 이러지?'라고 생각했으나 요즘은 적응이 되어서 나도 연락 빈도에 크게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참고로 나는 절대 '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초탈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이 시리즈 자체가 모든 게 다 정리된 후에 쓰는 글이라 내가 침착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침착할 수 없었다. 내 기본적인 가치를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분노와 눈물 사이를 자주 오갔다.
꼭 연락 문제가 아니어도 같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오늘 저녁 먹고 오면 먹고 온다고 얘기하기', '오늘 일 끝나고 누구 만날 거면 그냥 예의상으로, 내가 안된다고 하지 않을 거 알아도 오늘 파비앙이랑 축구 보고 가도 돼?'라고 묻던지 알려주기. 같은 문제들에 관해 서로 생각이 너무 많이 달라서 여러 번 싸웠다. 주변 프랑스 커플들이랑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아니 거 내가 축구를 보겠다는데 왜 내가 여친한테 허락을 받아? 내가 노예야? 기저귀 찬 애기야? 응애냐고' 라고 반응하고, 나한텐 이게 기본적인 예의 중 하나이다 보니 둘 다 절대 냉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서로에게 기본 중 기본인 가치의 상충이었는데 당시엔 그게 둘 모두에게 '기본'이라는 것조차 몰라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조차 모르고 싸웠다. 개인적으로는 '왜 이 사람들은 즈그 자유라는 가치를 위해 남이 상처 받든 말든 맘대로 해도 된다 생각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몇 번 했지만 이런 생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이별 빼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냥 접어두었다.
처음에는 그저 화가 나서 '니도 당해봐야 알지'라는 생각으로 대응했다. 다니엘이 메시지에 너무 늦게 반응하면 나도 똑같이 하고, 주말 약속은 바로 전날에 터트리듯 얘기하면서 '너도 니 친구랑 놀던가'라는 식으로 대하고. 그런데 오래가지는 못했다. 일단 안 하던 짓을 하니 마음이 불편했고 나는 성질이 급해서 다니엘이 그 과정에서 뭔가를 느끼고-못 느낄 수도 있고- 내게 질문을 하거나 똑같이 화를 내거나하는 등의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싸우거나 언쟁을 하는 건 방법에 상관없이 마음이 불편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중세 사람들처럼 장갑을 바닥에 패대기치면서 '임마, 한 판 뜨자'라고 말하는 게 좀 더 마음이 편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한 판 뜨자고 말할 기운이 별로 없어서 최대한 덜 감정적인 문체로 '다니엘 님은... 모월 모일 모시에-사실 이렇게까지 자세히 기억 못 함- 다음과 같은 행동을 했소.. 님의.. 이런.. 행동은... 내가 바보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뭐라도 좀 해보시오.' 같은 형식의 메시지를 보낸다. 싸움도 체력이 좋아야 할 수 있다. 체력은 국력이라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