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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Oct 20. 2019

연락 그게 뭐죠? 먹는 건가? ②

로맨스의 표지를 한 액션 영화에 대하여

다니엘을 만나기 전까지의 난 진짜로 내가 '쿨' 한 편인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쿨은 커녕 구들장형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말이지. 나는 내 연애가 하하호호 잘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들이 너무 미성숙한 생각이라 부끄럽긴 하지만.. 

일단 나는 덤덤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이라서 참을 수 있는 역치가 나름대로 높다고 생각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상대의 마음도 나와 같다면 뭐 괜찮겠지 싶었고 
여사친 남사친 문제도 나 역시 남자인 친구들이랑 지낸 시간이나 그들의 연인과 쌓은 관계가 있으니 알아서 잘 맞춰가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다니엘과 만나기 시작하니 문화충격이 이만저만 아닌 것이었다. 

 자러 간다 안 간다 말도 없이 자러 가거나 영상통화라고 해봐야 주말밖에 못 하는데 -친구랑 노는 걸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조율에 관한 태도 얘기다-이번 주말에 누굴 만난다 어쩐다 아무 말도 없이 있다가 주말이 되니 평소 통화하는 시간에 띡 메시지로 '지금 나가는 중이라서 오늘 통화 못해'라고만 말하거나, 몇 주 정도 통화도 못 했는데 이번 주말 약속도 미리 말을 안 해서 성의 없이 '아 미안 잊어버렸어 이번 주에도 애들을 만나네..'라고 하는 메시지를 받거나. 

 돌이켜 보면 연락 자체도 문제였지만 그걸 대하는 다니엘의 태도나 시간 약속을 느슨하게 생각하는 모습에 짜증이 많이 났다.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요즘은 저런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초기에는 정말 내가 얘를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아 이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싶기도 했다 (다니엘을 만나기 전에 연락 때문에 비난받는 건 주로 내 쪽이었기 때문에) 

 나도 인간인데 왜, '얘 하는 꼬라지에 이렇게 의욕이 없다니 얜 날 사랑하지 않나' 등의 생각을 안 했겠는가.  게다가 연애 초기엔 분명 이렇지 않았으니까 비교도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는 사안인 게 연애 초기에 다니엘은 학생이었고 그 후에는 여름에도 재킷을 들고 다니면서 넥타이를 매야 하는 보수적인 직장에서 일해야 했다. 7시간의 시차나 사람의 성격도 감안해야 하고. 문화적으로도 우리나라만큼 연애할 때 연락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기 때문에-사람 나름이지만- 나 역시 불만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니엘 이 인간은 널리 인간 세상을 싫어하고 소통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전화는 늘 무음으로 해두는 게 기본이었다-업무 전화가 따로 있어서 일에는 문제가 없고-. 일상적인 연락 자체도 문제였지만 프랑스 생활 기간 내내 '이 자식 전화기 무음으로 해놓는데... 만약에 내가 119에 실려가면서 전화해도 못 받으면 어떻게 해?'라는 불안에 시달렸었다. 이제는 말할 것은 꼭 말하는 우리가 되었기 때문에 파리로 돌아가면 전화기 좀 진동으로 해놓으라고 잔소리를 할 것이다. 

광화문 다 그린 후부터 후회하기 시작 (개선문 그려야 할 때)

 그래도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나도 전화 안 받기로는 어디 내놔도 안 지기 때문에 옛날 직장에서도 상사가 한 소리 한 적이 있고-혹시나 싶어 말하는데 요샌 잘 받는다-, 집에서도 몇 번 혼이 났다. 하지만 나보다 더 심한 가족이 있기 때문에 나 정도면 양호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상황에 핸드폰까지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핸드폰을 바꾼 후로 이상하게 다니엘이 거는 영상통화 수신이 잘 안되었다. 그래도 다니엘은 뭐라고 하지 않았고, 내가 여행을 가거나 중요한 일이 있어 통화를 할 수 없을 때 다니엘이 아쉬워하긴 해도 이게 짜증이나 '연락 좀 제때 받아줄래??'라는 쏘아붙임으로 발전하지는 않아서 그 점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일단 내가 화난 부분에서부터 조율을 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다니엘이 나의 요청대로 연락 패턴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삶이 많이 쾌적해졌다. 만약에 다니엘이 마음이 떴거나 정말로 나를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거였다면, 내게도 그리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계속 관계를 이어갈 수 없었겠지만 다니엘이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었고, 뭐가 문젠지 말하면 나름대로 변하려고 노력을-하다가 곧 까먹긴 했지만-했기 때문에 나도 연락 문제를 다니엘의 마음과 연결 짓지는 않게 되었다. 

 그래도 얼마 전처럼 다니엘이 '야, 너 왜 대답을 안 해, 묻는 말 왜 씹니?'라는 질문에 '히히 축구 보고 있었거든 히히 깔깔'이라고 대답하면 짜증 난다. 다니엘이 더위를 많이 타고 내가 떠난 후로 그 좋아하던 드라마도 잘 안 봐서 월드컵이 열린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사실이지만 축구 보느라 묻는 말엔 대답도 안 하고 나중에 한 대답도 뭐?? 히히 깔깔?? 이런 순간도 있긴 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다니엘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인 셈이니까-불행한 다니엘의 짜증은 나를 전투민족으로 만든다- 행복해하는 다니엘을 보는 건 좋다. 그리고 요즘의 내가 진심을 담아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아, 자기야!'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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