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 줄 알았는데 VO 버전이 멀쩡히 상영하고 있었읍니다!!(댓글을 남겨주신 xinz***님께 감사를..) 저의 무지로 정보에 혼선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더불어 가만히 있다가 욕먹은 프랑스 정부의 디즈니 영화 상영 기준에도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연식 때문에 엘사 코스프레는 무리지만 가방에 엘사 안나 올라프 굿즈 소듕히 품고 관람하고 오겠습니당 히히 신난다 !! 사실과 다른 부분은 빗금 처리하였습니다.
올해 개봉한 알라딘을 기억하는가, 알라딘에 겨울 왕국, 토이 스토리 4가 개봉할 때마다 나는 한국에 있었다. 실사판 라이온 킹 때는 한국에 없었지만 어차피 안 볼 생각이어서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노리는 건 올해 11월 20일에 개봉하는 겨울 왕국의 후속편이었다. 스무 살 때였나, 바에서 술을 먹다가 '바닐라 아이스크림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라고 했다가 같이 있던 친구가 '우리 아빠는 싫어하던데'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죄송합니다 진짜로 다 좋아하는 줄 알고 한 말입니다-, 다니엘이 처음으로 내게 '미안한데 나 디즈니 싫어해'라고 말했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내가 디즈니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차마 커밍아웃할 타이밍을 못 잡았단다. 아니! 진짜?
내 친구들은 나랑 취향이 비슷했다. 디즈니 볼 사람!이라고 연락을 돌리면 극장 3회차까지는 문제없이 돌 수 있었다. 극장 상영 시간대는 또 어떤가, 꽤나 촘촘하다.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는 게 싫은 사람은 심야를 노리면 된다. 디즈니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상영관 확보는 문제없이 이루어진다. 독립영화 볼 때처럼 서울에 부천에 인천까지 넘나들며 상영관을 찾지 않아도 된다. 싱어롱 상영까지 해주는 흥의 나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다니엘과 겨울 왕국을 보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정부의 거대한 손길에 의해 좌절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잠깐만, 설마 상영 첫날에 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겠지?" 기대에 가득 찬 내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다니엘이 물었다. 다니엘은 내일 입고 나갈 셔츠를 다리고 있었다. 순진하기는, 팬이라면 당연히 상영 첫날에 보는 게 예의 아니겠어? 파리의 대형 극장인 Grand Rex에서 상영 첫날에 남자친구와 겨울 왕국을 보겠다는 나의 계획 브리핑에 다니엘이 제동을 걸었다.
"그러니까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어른 두 명이 엘사 옷 입은 어린애들 사이에 껴서, 동반한 어린이도 없이. 상영 첫날에 꽥꽥대는 애들 사이에서 디즈니 영화를 보겠다는 거야? 내가 똑바로 들은 거 맞아?"
1년에 한 번씩 나랑 디즈니 영화를 봐준다는 다니엘의 약속은 유효했다. 우리는 올해 한 번도 디즈니 영화를 보지 않았고, 따라서 이것은 다니엘의 신성한 의무였다. 게다가 나는 다니엘의 말에서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 곧 서른인 사람 둘이 엘사 옷 입은 어린애들 사이에서 동반한 아이 없이, 상영 첫날에 겨울 왕국 보자고(프랑스 제목은 눈의 여왕이다)! 내가 물러서지 않자 다니엘은 상황의 심각함에 압도당한 듯했다. 까딱하면 여자친구 손에 붙들려 르 그헝 헥스의 어린애들 사이에 줄을 설 수도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야, 우리 좀 이상한 유괴범들처럼 보일 수도 있어...', '한국에서 디즈니 영화 어떤지는 아는데 프랑스에서는 애들만 본단 말이야...'라고 호소하기 시작했지만 나의 의지는 굳건했다. 나는 신나게 '유괴범은 무슨!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뿐이야. 러브 유어셀프해라'라고 말하며 받아쳤고, 다니엘이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을 때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기의 섬광이 있었다.
"디즈니가 아이들만 보는 영화라고 말한 건 거짓이 아니야! 그 증거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VF(프랑스어 더빙)으로만 개봉하고 VO(오리지널 버전)나 VOSTFR(오리지널 버전에 프랑스어 자막)으로는 개봉하지 않는다고. 파리가 이 지경이니 어딜 가도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거야."
* 실사판 영화는 VO나 VOSTF도 상영한다. 픽사도 틀어준다. 오직 디즈니 애니메이션만 VF로 나온다.
나는 멍해졌다.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람. 온 가족의 디즈니를 애들한테만 푼다고? 원어 버전을 듣고 싶은 어른은? 다니엘은 한층 안정을 되찾은 손길로 셔츠를 다렸다. 이상한데, 우리가 재작년에 본 미녀와 야수 실사판은 영어 음성에 프랑스어 자막이었다. 애니메이션은 프랑스어 음성으로만 나온다고?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노트북을 열어 프랑스어판 제목인 La reine des neige를 검색했다. VF로 검색했을 땐 예매 페이지까지 연결되었지만 VOSTFR로 검색하자 별 신통한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오늘 먹은 찌개의 생선보다도 더 탁해진 내 눈빛에 다니엘이 말했다.
"거짓말 아니라니까... 디즈니 영화 보는 애기들은 아직 자막을 못 읽어서 프랑스어 더빙으로만 틀어주는걸.. 안됐지만 포기해."
나는 '유로.... 스타... (런던에 가서라도 보겠다)'라고 중얼거렸지만 다니엘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시했다. 그러더니 '런던 가서 볼 거면 혼자 예매해서 기차 타고 혼자 갔다 와. 나는 안 도와줘'라고 했다. 아주 옛날에 엄마가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도 같다. '자꾸 떼쓸 거면 체리는 여기서 살아, 엄마는 엄마 집에 갈 거야.' 결국 나는 극장이 아닌 우리 집 안방에서 유료 결제로 겨울 왕국을 보게 생겼다는 뜻이다. 아직 개봉일까지는 시간이 좀 있는 만큼 '막상 개봉하면 또 다를 수 있다'라는 나의 정신승리는 계속되고 있지만, 어째 내가 파리에서 영어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는 날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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