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왜 버려

신선한 시각

by 체리
요즘 이미지에 신경쓰는 다니엘선생이 이 컷을 보고 뭐라고했다
귀를 긁는 장면이다

이사하기 전 다니엘의 책장에는 몇 년 동안 읽지 않아 먼지가 뿌옇게 앉은 책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다니엘이 선물 받은, 취향에 맞지 않는 책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한 번은 ‘혹시 책을 중고 서점에 팔거나 버릴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라고 물었었다. 다니엘이 아주 진저리를 치면서 ‘책을 버리는 건 개를 버리는 거나 똑같아!!’라고 말하는 거다. 물론 이건 장난하려고 작정을 하고 오바한 거였지만 어쨌든 다니엘은 책을 버리는 행위에 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다니엘이 일부러 격앙된 말투로 말하는 것을 보며 그 말도, 행동도 전부 다 장난이겠거나 생각하고 말았다. 그래서 ‘책을 버린다’는 게 다니엘에게 정말로 어떤 의미인지는 이사할 때까지 몰랐다.


책을 버린다는 문장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나는 책도 사유 재산이라고 접근하는 편이라 별생각이 없다. 특별히 좋을 것도 특별히 나쁠 것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좋은 기억이 있는 편이다. 좋은 기억이라고 하기도 웃기지만.. 어릴 적 아파트 재활용 박스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어 집에 들고 왔는데 그 속에 삼만 원이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는 큰 돈이었다. 아무튼, 내 물건이니 버리든 남을 주든 팔든 그것은 내 자유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니엘이 집 근처에 혹시 책을 기부하는 수거함이 없는지 살피느라 시간을 쓰는 것을 보고 나니 여기서는 그게 그렇게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재활용 수거함을 찾아가기 귀찮아 옷을 버린 내게 다니엘이 짜증을 냈을 때도 그랬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어딘가의 쉼터에 옷을 기부하면서 꼼꼼한 선별 과정을 거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험하게 입은 옷은 오히려 수거함에 넣는 게 민폐라는 생각도 있었다. ‘기부하는 거야 당연히 좋은 일인데 옷을 버린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나도 약간 짜증을 냈지만 그때는 필요가 없어진 나머지 옷을 함께 들고 가 수거함에 넣는 훈훈한 마무리로 유야무야됐었다.


그런데 책을 버리는 건 옷을 버리는 것보다 더 복잡했나 보다. 다니엘은 방문 책 수거 기부 사이트를 한참 들여다 보더니 이사 일정과 방문 일정이 안 맞아 그 사이트 이용은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집 근처 도시 농원 옆에 있는 책 기부 상자를 찾아 필요 없는 책을 거기에 넣을 수 있었는데, 이사하느라 왔다 갔다 하며 보니 그 많던 책들이 하루 만에 사라진 게 아닌가. 한국에서 중고 서점을 여러 번 이용하면서 곰팡이가 피거나 변색된 책은 내 선에서 버리는 게-이런 책은 매입을 안 해줄 확률이 커서- 버릇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기부도 똑같이 생각했었다. 나한테 필요 없는 책이면 상대한테도 필요 없고, 이렇게 오래된 책이면 주워도 별로 안 기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싹 사라진 책들을 내 눈으로 확인하니 사람들이 정말 책을 좋아한다는 실감이 났다-혹은 폐지 수집가의 뒤틀린 욕망에서 태어난 트랩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는 않았다. 이 책장의 책들은 아주 빨리 사라진다.-


“저기 말이야, 내가 만약에 여기서 책을 몇 권 버린다면 그건 사람들한테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 내가 물으니 다니엘이 말했다. 사람들은 네가 외국인인 걸 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한테는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 읽고 싶어도 못 읽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차피 나는 한글로 읽고 싶은 책만 종이책으로 사니까 내가 수거함에 책을 넣어도 들고 갈 사람은 없겠지만, 꽤나 인간미가 느껴지는 고집이었다. 가끔씩 같은 책을 여러 권 사서 도시 곳곳에 뿌린다는 배우 엠마 왓슨도 생각났고. 많은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할 신간을 몇 권 사서 그 농원 옆의 수거함에 놓아 볼까 싶었다.


프랑스에서는 지자체에 신고하지 않고 대형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면 데포 소바쥬(dépôt sauvage)라는 테이프를 붙인다. 거기에 ‘범인 찾는 중’ 같은 메시지도 쓰여 있다. 하지만 이런 불법 투기 대형 쓰레기는 이틀에 한번 꼴로 보인다. 사람들도 그러려니 한다. 책 버리는 사람이랑 대형 쓰레기 투기하는 사람은 동일인이 아니므로 단순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통행을 막아 실질적인 불편을 주는 불법 투기는 그러려니 하면서 책을 버린다는 것에는, 이것은 누구에게도 불편을 끼치지 않음에도 꽤 엄격한 반응이 돌아오니 이건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불법 투기범 = 말해도 안 통함’이지만 ‘책 버리는 사람 = 말하면 들을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해서 그런 건가..? 알수록 신기하다.


글을 쓰고 며칠 뒤에 이사온 아파트 1층에 작은 기부의 장이 열렸다. 누가 1층 계단에 중고책을 내놓은 것이다. 신이 나서 책을 고르는 다니엘을 보며 훈훈해 하던 마음은 책 중 몇 권이 푹 젖어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보고 짜게 식었다. 기부도 좋지만 곰팡이는 아니잖아요!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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