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를 물어븐 것이여

호구가 된 이야기

by 체리

딱 한번 뭐시기 지검 뭐시기 검사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인터넷에서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검찰은 편지를 보내지 굳이 검사가 일일이 전화를 하고 다니지 않는다거나, 전화를 하면서도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쳐봐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대처법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짚이는 구석이 전혀 없었기에 뭐시기 검사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게 한국에서 살면서 딱 한 번 겪은 피싱의 경험이다. 후후 같은 애플리케이션만 깔아 놔도 지금 온 전화가 어디에서 온 전화인지 바로 알려주는 세상이다. 그래서 피싱은 정말 남의 나라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쇼핑을 자주 하는 버릇은 프랑스에 와서도 여전했다. 아마존의 프라임 서비스에 가입해서 필요한 것을 받아보고, 택배 기사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것을 보면서 프랑스에 사는 사람이 전부 다 프랑스 번호로 전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유럽 출신이면 자기 나라에서 쓰던 유심을 프랑스에서 쓰기도 하고, 귀찮아서인지 아니면 아직 새 유심을 살 시간이 없어서인지 비유럽 국가 출신이라도 쓰던 유심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다니엘이야 인터넷 쇼핑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 06(프랑스 핸드폰 국번)이나 01(파리 유선번호 국번)로 시작하지 않는 번호는 안 받아도 상관없지만 받아야 할 택배가 있는 이의 마음은 매우 절박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당시 나는 비자 수속 때문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며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전화라도 올라 치면 ‘혹시 이민 기관이 외주(??)를 줬나?’라는 극단의 행복 회로를 돌려가며 받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에 돌아온 후 내 번호는 마트 회원카드를 만들 때를 제외하면 비자 수속 기관에 밖에 제공하지 않았으니까. 달리 누가 알겠느냐고 생각했다. 특히 처음 생활할 때에 비하면 이번에 받은 번호는 꽤 기억하기 쉬워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민 기관의 편지가 두 달째 안 오고 있었다. 받아야 할 택배도 있었다. 내가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가들, 모리셔스에 말리, 콩고 등지에서 걸려온 전화에 응답을 한 것은 그런 연유였다. 다시 건 전화는 어느 콜센터로 연결되었다. 뭐냐, 대체 뭐냐. 아마존이냐? SFR(내가 쓰는 통신사) 콜센터냐? 대체 뭐냔 말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분은 없냐니까 상담원은 다른 회선으로 나를 연결했다. 나는 통화 대기음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거나-내가 쓰는 은행인 BNP 파리바는 나를 통화 대기 시켜 놓고 30분 넘게 기다리게 한 적이 있어서 흔히 있는 일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때로는 웹툰을 봤지만 그들이 회선 저 너머에서 응답하는 일은 없었다. 와야 할 편지는 여전히 오지 않고, 내 택배만이 우수수 도착할 무렵 다니엘이 나를 불렀다.


“자기야, 핸드폰 요금에 아프리카에 전화한 걸로 99유로가 나왔다는데?”


아니, 왜 … 왜 그러냐 정말… 그랬다. 나는 연길도 마카티도 아닌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국가에 위치한 피싱 조직에게 돈을 뜯기고 만 것이다. 특히 당시의 나는 모리셔스의 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루에도 여러 번씩 그 나라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프랑스에 사는 어떤 호구가 우리한테 99유로나 뜯겼다고 하면 나라도 전화할 것 같긴 하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다들 나에게 왜 그들을 차단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다니엘이 나의 피싱 피해 사실을 알려주기 전부터 그들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저 그들이 매일 뒷자리가 바뀐 번호로 내게 전화를 해왔을 뿐… 그 후로 나는 프랑스 외 국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르는 버릇이 생겼다. 참으로 비싼 수업료에 피눈물을 흘린 것도 여러 날이지만 떠나간 짜장면과 99유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몇 주 전에 이사를 하느라 경험한 어려움에 관해 쓴 이야기를 올렸었다. 그 고통은 새해가 시작되고 내가 다니엘과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까지 계속되어서 우리는 이사한 지 1달이 지난 후에도 집 인터넷을 설치하지 못했다(행정 때문은 아니었다). 결국 테더링으로 데이터를 다 쓰는 바람에 당분간 원래 유심 말고 새로 산 선불 유심을 쓰느라 아프리카의 전화에는 응답하지 못했는데,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다음 날 원래 쓰던 유심을 핸드폰에 끼우자 귀신같이 말리에서 전화가 오지 뭔가. 이틀 동안 다섯 번이나. 오는 족족 차단했기 때문에 매번 다른 번호로 말이다. 하지만 해외 생활은 생각보다 외로운 것이어서 나는 ‘저 아프리카에도 나와의 통화를 위해 이렇게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사랑받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세 번씩 번호를 바꿔가며 나와 통화하려 애쓰다니, 물론 돈이 목적이지만 이렇게 열렬한 성원을 받은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그래도, 당장은 힘들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전화번호를 바꾸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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