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난이도를 높이는 개수작
인종차별 이야기는 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익히 들었고, 또 여기서 사는 동안 종류별, 강도별로 다양하게 당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익숙했다. 처음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는 책에서 배운 개념을 CD나 비디오로 다시 관찰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 비현실적인 느낌 덕분인지 ‘이게 이 사람 수준이구나’ 이상의 감상은 없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인종 차별을 당한 후에는 거의 체념했다. 특히 다니엘과 함께 걷다가도 잠시 떨어져 걸으면 귀신같이-이 프로그램의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자기들한테만 들리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던 투어 그룹의 일원이었다- 다가와 내 나라에서는 하지도 않는 합장을 내게 하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열정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보면 조금 경탄스럽기도 하다. 확실히 세상이 넓어서 그런가 놀라울 만큼 멍청한 애들이 정말 많구나! 하고. 그럴 때면 으레 ‘폭력적인 접근을 하는 놈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싶다가도 ‘아니 시발 내가 왜’로 결론이 난다. 몇 주 전에는 파업이 한창인 파리 거리를 걷다가 앙발리드 근처의 축대 위에서 기묘할 만큼 해맑은 얼굴-친구들은 대마쟁이 아니냐고 물었다-로 내게 손을 흔들며 소리치는 남자를 보기도 했다. 남자의 말은 아주 일부만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확신은 없었지만 기분이 나쁜 걸 보면 저놈이 뭔가 한 게 분명하구나 생각했다. 일행에게 ‘저 새끼가 나한테 욕하지 않았어요? 치와 밖에 못 들었는데.’라고 물으니 ‘곤니치와라고 하던데요?’라고 했다. 함께 걷던 사람도 한국인이었다. 그럴 때면 다니엘이 내 우산이었구나, 싫어도 실감이 난다.
사람마다 인종차별에 대처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나는 겁이 많아서 인종차별을 당하면 그 자리를 피하는 축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다 보면 또 내가 우리 세대 이전에 태어나 동양인의 권리를 신장시킨 조상들의 노고에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럴 때면 침착하게 다니엘과 함께 연습한 프랑스어 욕 18선을 주 기도문처럼 조용히 읊는다. 기분이 아주 약간 나아진다. 지금보다 더 나쁜 일을 겪으면 이 거리가 지긋지긋해지는 순간도 분명히 올 것이다.
비자 취득 때문에 시민 교육을 들을 때였다. ‘우리 프랑스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답니다’ 선생이 말했을 때 다들 피식 웃었다. 법이 그러면 뭘 하나, 독일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인종차별 금지법은 있지만 당장 그 교실에서 인종차별 한번 안 당해본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을. 시민 교육은 4회차까지 이수해야 하는데(원래는 2회였다고), 나 같은 경우 첫 수업과 두 번째 수업의 선생님이 달랐다. 그리고 두 번째 수업의 선생은 성골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마치 회사에서 하는 인종차별 금지 교육 비디오 속 세상에 들어온 기분마저 들었다.
“여기도 김 씨, 저기도 김 씨, 내 앞에도 김 씨. 한국인들 부르기는 참 쉽네”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 수업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 선생은 수업에 단 한 명인 마담 김(김 씨 여자분)이 자리를 비우는 것을 보더니 투덜거렸고 단 한 명인 김 씨 여자분의 공석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나를 김이라고-내 성은 김과는 초, 중, 종성이 모두 다르다-부르며 대답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선생이 수업 중 전화를 받아 본인의 심장 수술 일정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손에 쥔 권력을 남용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병증은 그다지 동정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메이 더 돌팔이 위드 유… 선생은 김 씨 ‘조크’에 맛을 들였는지 수업의 한국인들을 김씨네 가족이라고 부르고, 본인이 열어둔 문 때문에 소음이 들어와 학생의 답변이 들리지 않는 것을 ‘한국 문화에서는 그런 식으로 하나 본데 프랑스 문화에서는 크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고 깎아내리고 한국인 그룹에게 ‘당신들은 식당에서 일하죠? 어디? 한국 식당? 베트남 식당? 캄보디아 식당인가?’라고 말을 걸기도 했다-10명이 안되는 인원 중 요식업 종사자는 전무했다-.
그 선생은 인종차별주의자 주말 집회라도 꾸준히 나가는 건지 차별 발언은 쉬지 않고 나왔다. 한 번은 튀니지 사람과 한국 사람을 부르더니 ‘댁들은 애가 있죠?’라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온 질문은 ‘Vous lui frappez?(댁들은 애를 때립니까?)’였다. 쉬는 시간의 한국인들은 그녀가 인생에서 겪었을 만한 일중 한국에 관한 불쾌한 일들의 조합을 생각해내느라 바빴다.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하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다들 머리로는 이유 없는 차별이야말로 가장 흔한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가 특별히 저열하고 불쾌한 말종인 건 사실이었지만 이게 프랑스에서 당하는 마지막 인종 차별일 리는 없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앞으로의 삶에 이롭기도 하고.
우리는 세 번째 수업의 선생이 그녀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 나라에서 사는 삶에 꽃을 피우는 건 유명무실한 차별 금지법이 아니라 차별의 사이를 걷다 만난 보석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프랑스가 너무 잘난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알파고한테 이긴 건 이세돌이지 인류가 아닌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