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순간
나는 바깥출입을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이후 파리에서의 삶은 눈칫밥의 연속이었다. 어느 순간까지는 '이 무지하고 몽매한 화상들이 미욱해서 하는 짓이니 똑똑한 내가 조금 참아줘야 한다'면서 자기암시를 걸었지만 2월 즈음부터 그마저도 쉽지 않아졌다. 몬트리올에서 한인이 피습당했고, 텍사스에서 동양계 부자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날아들면서 나 또한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마침 그즈음 한국 유학생이 길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인종 차별이 걱정되어 돌아갈 생각은 없었지만 깨어있는 동안은 코로나와 인종차별 관련 뉴스를 검색했고, 스트레스도 점점 커졌다. 어릴 적에 폐렴을 겪은 적이 있는지라 코로나 자체도 무서웠지만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서 마주칠 사람들 시선이 더 걱정이었다. 특히 경제 위기가 오고, 또 그로 인해 실직을 겪은 사람들이 그저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내게 화풀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3월 12일 마크롱의 대국민 담화 이후로 첫 패닉이 오자 나는 그동안 고집해오던 부분을 하나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다니엘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를 욕하고 위협할 수 있다 생각하니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 지금부터 너 없이는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물론 이 말은 6월에 있을 비자 상담 예약(굳이 인종차별까지 안 가더라도 경시청은 악명이 높은 기관인데 코로나 이후라면 오죽할까 싶었다, 물론 운이 좋아 이 예약이 취소되지 않는다면 말이지만)과 간단한 식료품 구입을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다니엘은 내가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다며 안심시키려 했지만 당장 몇 달 전과 비교했을 때 길에 나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다르다. 아이들이 내게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는 어머니나 횡단보도 저 너머에서부터 나를 째려보는 사람, 지하철에 올라탄 나를 흘끔대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며칠 겪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진다. 다니엘과 함께 함으로 인해 이 멍청한 짓거리를 덜 겪을 수 있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그랬는데 지금은 또 많이 진정이 되었다.
2월 말에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만났다. 몽골 친구는 길을 걷다가 '코로나!!'라면서 자기를 가리키는 남자를 봤단다. 친구는 '멍청한 놈아, 매독이 프랑스 병이라고 불렸다는 걸 알고는 있냐? 그러면 내가 너처럼 모든 프랑스인을 매독 보균자로 여겨도 되는 거야?'라고 되받아쳤단다. 나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이 친구만큼만 받아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이전에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게 이렇게 숨막힐 만한 일이 아니었다. 1월부터 지금까지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나를 보고 황급히 스카프를 매는 놈, 자전거에 올라탄 채 나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놈,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끈질기게 나를 노려보는 놈 등 다양한 인간진상..아니 인간군상과 마주했다. 나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던 장 보기도 녹록지 않았다. 까르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신경이 곤두섰고, 파마산 치즈 하나 집겠다고 냉장고 앞에 서있으면 작년과는 명백히 다른 분위기로 내게서 한발 물러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좁은 복도에서 나를 보고 자기 애들을 등 뒤로 숨기는 엄마들은 어떻고, 근데 그 집 아들내미가 기침을 하고 있더라.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었다. 그리고 패닉이 시작된 3월 13일, 나는 마지막 장을 보러 동네에서 가장 큰 모노프리에 갔었다. 파스타와 소스를 몇 개 더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살 것을 모두 골라 계산대로 가는 동안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알에 스쳤다. 서로한테 관심 없기로는 타 대도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파리 사람들이 그것도 마트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 중 누구도 내게 불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서있던 복도를 통과하여 셀프 계산대까지 먹을 것을 들고 가는 동안 나는 드라마 속 '소문의 그녀' 라도 된 듯한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나는 선생님들이 하는 '눈알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에 콧방귀를 뀌었다. 들리긴 뭐가 들리냐면서. 그런데 들리더라. 눈알 굴러가는 소리.
모든 게 현실감이 없다. 집에 갇혀 지내는 동안 날씨가 팍 더워졌다는 것도,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게 새로운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사실도. 또 올해 안에 한국에 못 갈 수도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 많아야 두 번 식료품을 사러 밖에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날이 오늘처럼 따뜻해졌다는 것(25도였음)도 모르고 지냈다. 코로나 때문에 통행 제한령이 내려진 후 처음으로(먹을 거라도 살 겸 해서) 산책을 나갔다. 계절감이 완전히 망가져서 기모 레깅스에 맨투맨을 주워 입는 나를 다니엘이 한심하다는 듯 보며 당장 레깅스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당장 여름 옷을 입어, 그리고 이게 네가 올여름 입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름옷 중 하나일 거야.' 다니엘은 늘 그랬듯 달콤한 만약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며칠 전 여름 옷을 못 보내줘서 어쩌냐는 엄마에게 '괜찮아요, 어차피 나가지도 못해서 입지도 못할 거예요'라고 말하긴 했지만 슬픈 건 마찬가지였다.
통행금지령 이후로 한동안 꼭 통행증을 종이로 소지해야 했다. 손으로 써도 되긴 하지만 어쨌든 신분증과 함께 종이로 된 통행증을 지니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랬던 통행증은 양식이 한번 바뀌더니(두 번째 양식은 외부 통행하는 시간까지 기입해 두는 형태) 며칠 전부터는 핸드폰으로 모바일 통행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통행증과 신분증을 모두 가지고 있던 남자가 경관에게 잡혀 벌금을 물었다. 남자의 이유는 '부인의 생리대를 사다 주기 위해서' 였고 경관의 이유는 '급한 건 마담인데 마담이 나왔어야지 왜 댁이 나와서 설치고 다니냐'였다(웃긴 건 이 경관의 논리대로 본인이 급해서 탐폰을 사러 가다 잡혀서 벌금을 낸 케이스가 있다. 탐폰 벌금 경관의 논리는 탐폰은 삶에 필수적인 항목이 아닌데 왜 이 시국에 나돌아다니냐는 거였다). 남자의 부인은 분노의 SNS를 시전했고 ... 프랑스에 와서 경관과 마주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나는 만약에 대한 아주 작은 두려움이 생겨남을 느꼈다. 그래도 뭐, 경관이 이렇게 많고 전에 없었던 상황인데 경관과 시민의 마찰이 전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