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다운 이후
퇴근 후 지친 마음으로 올라탄 지하철에서는 온갖 상상력이 다 발휘되지 않던가. 특히 내일 회사를 안 가도 될 좋은 이유에 관해서는 몇 번을 상상해도 늘 신선하고 짜릿하다. 언젠가 그런 생각도 했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학생 시절처럼 미친 듯이 매진해서 공부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기 마련이니 누가 날 감금해서 밥도 주고 잘 곳도 주고, 나한테는 하고 싶은 공부만 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나는 기쁠까? .... 그 생각 이후로 5년, 아무도 나를 감금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날의 상상처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실내 활동뿐인 처지가 되었다(4월 4일인 지금 한국 가기는 어렵지 않지만 나는 아래 설명할 이유 때문에 한국행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사망자가 속출하고, 몇몇 국가는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겪게 된다. 많은 국가들이 국가 봉쇄라는 강경책을 선택하고, 나라 간 이동이 어려워진 상황에 저자는 기저질환 보유자가 있는 한국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선택하고, 통행 제한령이 내려진 파리의 집에서 격리 생활을 시작하는데...
아무리 봐도 SF 영화나 소설 얘기 같다. 작년 말에 이런 얘기가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올라왔다면 언제 적 종말론이냐고 욕을 먹고 상상력의 수준을 여러 차례 부정당했을 만한 시나리오다. 글로 쓰니 이게 오늘날의 우리 이야기라는 것이 한층 더 믿기지 않는다. 이 난리 통에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우리 집은 비교적 일찍부터 격리 상황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여기에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코로나 대비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 면역력은 참담하다고 말해도 별로 모욕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준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코로나19에 걸려 2주간 격리되는 것을 상상하며 식료품을 사 날랐었다. 그렇게 2월부터 식료품을 조금씩 사뒀더니 언제 코로나19에 걸려도 닥닥 긁어모으면 한 3주는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었고, 그 즈음부터 유럽과 미국에도 감염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다니엘은 '2주 정도 버틸 물품을 비축하는 건 OK, 그 이상은 좀 유난이다'라는 입장이었지만 나의 면역력만큼이나 참담한 직장동료들의 위생의식을 보고 나니 내가 3주 정도 버틸 물품을 사 모으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3월 12일 경에는 이미 프랑스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난리가 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는데 다니엘의 직장동료 한 명은 이 난리 통에 이탈리아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3월 초에 다녀왔음). 거기에 내가 다니엘에게 손 세정제를 쥐여주고 꼭 쓰라고 신신당부한 것이 1월의 일인데 다니엘의 사무실에 들어온 나이 지긋한 상사가 손 세정제를 쓰는 다니엘을 보고 유난 떤다는 듯 픽 웃으면서 지나간 일도 있고, 다니엘과 함께 사무실을 쓰는 동료는 3월 중순에 스리랑카로 휴가를 간 데다... 마지막으로 감기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출근한 다른 동료까지..... 있었던 터라 나는 통행 제한령이 내려지고 다니엘이 재택근무를 시작한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통행 제한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파리에서 살던 기간을 다 합쳐도 처음으로 마스크 낀 (프랑스) 사람을 본 것이 3월 둘째 주의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그 사람은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기 때문에 고위험군에 속하는 고령자가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은 통행 제한령이 내려지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이 정도이니 마스크 자체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지 어느 정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자기들의 인식이 어떻든 마스크를 착용한 동양인에게 인종 차별을 하는 것은 절대 있어선 안될 일이고 말이다.
3월 초까지만 해도 내 가장 큰 걱정은 시험이었다. 설마 돈도 안 돌려주고 내빼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불안해했다. 그다음으로는 시민교육 마지막 시간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둘 다 취소됐다(시험은 연기해 주기로 했고, 시민교육은 끝까지 연락을 안 해줘서 마지막까지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걱정이란 원래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던가, 그다음으로 생긴 가장 큰 걱정은 6월에 있을 경시청 방문 예약(과 운전면허 교환 건)인데 이 경시청 방문 예약은 비자에 관한 것이며, 내가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큰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 비자는 6월까지이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대사관 또한 남은 비자 기간이 3개월 미만일 경우 귀국을 권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내가 올해 봄에 통행증 없이 나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되리라고 나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저명한 집순, 집돌이들이 이미 지적했듯 아무리 집을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갇혀있어야 하는 상황이 반가울 리 없다. 다만 나와 다니엘이 살던 이전 집은 둘이 살기에도 꽤 빠듯했기 때문에 만약 그 집에서 통행제한 상황을 맞았더라면 나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한국에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다니엘도 어쩌면 르마스다질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가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햇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불만스럽고 격리 상태에 느끼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이사가 한두 달만 미뤄졌더라도 상황은 훨씬 나빴을 것이기 때문에 불평할 처지가 아니라고 느끼는 중이다. 정말로 한국에 돌아갔다면 우리는 서로 오도가도 못하는 채 올해를 넘겼을 테고, 다시 만날 날이 언젠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내가 다시 프랑스 비자를 따기가 요원해졌다는 사실만 직시했을 테니까.
이런 상황에 할 거리가 있다는 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지난 1주일을 오직 게임으로 보냈고(멋진 한주였다) 다니엘은 보고 싶어 하던 공포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몰아봤다. 우리는 비타민 D를 챙겨 먹기 시작했고, 낮에는 같이 요가를 하고 있다. 다니엘 역시 바람을 못 쐐서 답답해하긴 하지만 재택근무가 너무 좋다면서 기뻐하는 중이다. 이번 한주, 게임도 할 만큼 했으니 다시 프랑스어를 잡기 전에 이번에야말로!! 다니엘이 준 보부아르의 책을 다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중이다. 물론 게임도 적당히 해가면서 말이다. 사실 지난 한주 게임을 너무 해서 약간 이명 같은 것이 들리고 있다. 내가 하는 게임에서는 바람소리가 들리면 냅다 달려가서 풍선을 터트려야 하는데 하도 몰두하다 보니 게임을 안 할 때도 그 바람 소리가 들리는 거다. 내 탓만은 아니다... 빔 프로젝터 환풍 팬이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는 실제로 게임 속바람소리와 비슷하단 말이다... 그래도 오늘 샤워를 하면서 이제부턴 게임을 좀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떨어진 식료품을 보충하러 밖으로 나간다. 과연 올해는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지 궁금해 하며 마지막으로 한번 더 햇살을 쬐다가 인터넷에서 본 인공 호흡 기도 삽관 그림이 떠올라(아주 고통스러워 보인다) 햇살이고 뭐고 그게 다 건강해야 쬐는 거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올해 안에는 한국에 갈 수 있을지, 과연 6월까지 사태가 진정되어 내 비자 약속이 취소되지 않고 진행이 될지 하루에도 몇번씩 걱정을 하지만 일단 오늘 건강하니 됐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분께도 부디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