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또 다른 환장의 이야기

by 체리

때는 2월이었다. COVID 19 소식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마스크를 좀 쟁여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하고 다니지 못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대비를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고 마스크가 그렇게 부피를 차지하는 물건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이 프랑스 땅에서 한국서 쓰던 마스크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평소에 N95(KF 94 정도인가) 마스크를 구해본 일이 없어서 그 이전에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2월에는 아마존에서 아무리 N95 마스크를 찾아도 헛수고였다. 아쉬운 대로 덴탈 마스크를 찾아보긴 했는데 그마저도 20일이 걸린단다. 알리 쪽 판매자인가? 생각하면서 살지 말지 고민하다(너무 오래 걸려서) 그대로 잊어버렸다. 그 후로는 여러분도 아는 것처럼 코로나가 유럽 땅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고 나는 3월 3일에 다시 덴탈 마스크 20장을, 20일이 넘게 걸릴 것을 알면서도 주문하게 된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택배가 몇 번 없어지긴 했지만 얇은 덴탈마스크 20장이면 편지함에 쏙 들어가기 때문에 잃어버릴 걱정은 크게 안 했다. 그리고 월 말에나 올 줄 알았던 덴탈마스크는 3월 19일에, 생각보다 너무 빨리 소식을 전해 왔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통행금지가 걸린지 며칠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 돌아오던 나는 편지함에서 마스크가 우체국에 잡혀있으니 알아서 찾아가라는 쪽지를 받게 된다. 마스크 20장을 말이다. 우편함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소포를 말이다. 나는 이것이 마스크가 아니기만을 바라며 아마존 운송장 번호와 대조해 보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아 우체국에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다행히 벌금을 물만큼 먼 거리가 아니라서 장을 보는 김에 우체국에 들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체국이 열었다 한들 방문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 좁은 공간에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 있다는 건 이 시기에 안전한 일이 아니니까. 다니엘은 마스크를 포기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나는 당장 정전기 필터도 못 구하는 마당에 비상용 마스크 20장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실랑이한 보람도 없이 우체국은 닫혀 있었다. 구글 지도에서 평점이 1점을 찍고 대체 열려있는 날이 없다는 리뷰가 코로나 이전부터 있는 것을 보니 전부터 이 모양으로 운영해온 것처럼 보였다. 멀쩡한 업무시간에 닫혀있는 우체국을 뒤로 한 우리는 약국 세 군데에 들러 조금만 얼굴을 움직여도 바로 찢어지는 홑겹 기름종이 마스크를 몇 장 샀다. 그거라도 없는 것보단 나으려니 하면서.


그 후로 마스크를 찾으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하고 다니엘과 실랑이도 몇 번 했지만 결국 슈퍼에서 쓰리엠 정전기 청소포 비슷한 무언가를 찾으면서 내가 직접 마스크를 만드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니엘은 우체국에 가는 게 생계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어서 벌금을 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마스크가 표면에 쓰인 '마스크'라는 품목 때문에 징발이 된 건가? 징발이면 차라리 낫게, 이대로 안 찾으러 가면 필요한 사람들한테 가지도 못하고 마스크가 폐기되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에 시달렸다. 프랑스 생활, 그중에서도 공기관과의 소통은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문제가 없었던 적이 없지만 코로나 시국에 그 거칠거칠한 면면은 더욱 빛을 발했다.


- 우체국에 가는 게 벌금 물 거리가 되면 왜, 멀쩡히 우편함에 들어가는 소포를 우체국으로 가지고 갔나?


- 우체국에 물건을 잡아놓을 거라면 대체 왜 우체국 문은 닫아놓는가?


- 왜 우체국은 코로나 시국 전부터 멀쩡히 집에 있는 사람 없다고 하면서 소포를 인질로 잡는 멍청한 짓거리를 하는가(이 경우 인질 쪽지를 받은 당일 우체국에 가도 소포는 못 찾는다. 인질로 잡힌 소포는 2~3일 후부터 우체국에 입고된다)?


궁금한 점은 많지만 변할 사람들이 아닌 것을 알기에 여기에 화를 내봤자 내 손해 이상의 무엇도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 후로 손으로 만든 마스크를 쓰면서 덴탈마스크 20장을 잊어가던 나는 마스크가 납치당한지 한 달이 지난 4월 18일에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마스크를, 우편함에서 발견하게 된다. 결국 프랑스 우체국이 언제나처럼 멍청한 짓거리만 하지 않았더라면 2주 정도 지나 받아봤을 마스크를 6주의 시간이 지나서야 받아보게 된 것이다. 마스크를 받아서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폭거에 감사해야 하나? 세상에는 용케 안 망하고 돌아간다 생각하게 만드는 조직들이 많이 있고, 프랑스 우체국은 그중 하나다.


늘 내가 집에 없었다고 거짓말하는 용도의 쪽지
우편함에 20개가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을 아담한 소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