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우릴 만나서

그 어느날 이후로

by 체리


새벽 두시의 모습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다니엘이 좋아했다

지금 집으로 이사한 후 하루 만에 이 건물의 벽이 얇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우리 집이 비어있는 동안 옆집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잘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사 온 첫날부터 까다롭게 군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일단 일주일을 참았다. 다니엘이 처음으로 항의하러 갔을 때 옆집 사람들은 무척 협조적으로 나왔다. 미안하다고, 우리가 시끄러우면 언제라도 다시 얘기해 달라고. 실제로 그 방문 이후로 며칠은 조용했다(3-4일). 다니엘 말로는 옆집 사람들이 어려 보인다고 했다. 갓 스무 살이 된 학생 같다고. 그래서 우리는 옆집이 철딱서니는 좀 없어도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DHL 아저씨가 자꾸 옆집 소포를 우리 집에 맡겨놓긴 했지만 뭐 옆집인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 나이대 사람들 치고 파티를 엄청 자주 하는 편도 아니었고 말이다. 자정을 넘긴 시간부터 오늘은 항의를 해? 말아?라는 문제로 다니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다니엘도 학생 시절이 있었으니 너무 모질게 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옆집 사람들은 매번 미안하다고 했고, 항의를 한 후에도 라이터를 빌리러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등 꽤나 쿨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락다운 전까지는 나쁘지 않은 이웃지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니엘이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진정한 문제가 시작되었다! 옆집은 통행금지 이후로도 친구들을 초대했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이들의 친구가 방문할 때면 복도에서 대마 냄새가 났다. 하지만 대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젊은이들이라 체력이 좋아 몇 시간이나 고래고래 노래 부르고 바닥에 발을 구르고 크게 음악을 틀어 춤추고 노는 이들의 흥이 문제였다. 다니엘은 오래 참았다. 내가 프랑스어만 더 잘했어도 교대로 갔을 텐데 매일 자정 이후 스트레스를 받는 다니엘을 보면서 나도 미안함을 느꼈다. 오후에 그러고 놀았으면 자정쯤엔 좀 지칠 법도 한데 이웃은 좀 놀 줄 아는 녀석들이었다. 나는 그 체력이 부러웠다. 문짝은 늘 쾅쾅 닫고, 자정 이후에 배달음식을 시키면서도 문 닫는 소리는 줄지를 않았으며 급기야 몇 주 전부터는 밤낮을 바꾸어 생활하기 시작한-생활 소음은 그대로고- 이들의 소음에 어느 순간 다니엘이 폭발했다. 다니엘은 목소리가 잘 울리는 편이라 조금만 소리를 높여도 목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는 바람에 작정하고 누구한테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본인도 살면서 술 먹고 친구한테 태클 건 것 제외하면 누구한테 소리 질러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기록을 우리 이웃이 깨고 말았다. 나는 잠결에 그 소리를 들었고 혹시 밖에서 고래고래 말싸움하는 저 사람이 우리 집 다니엘인가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리치는 걸 들은 적이 없어서 목소리를 높인 다니엘의 소리는 조금 낯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다니엘이 전날 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옆집의 밤낮이 바뀐(새벽 다섯, 여섯시까지 가끔 친구도 불러 가며 시끄럽게 놀다가 자러 가서 저녁 먹을 때쯤 일어남) 후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욕까진 아니어도 평소보다 훨씬 못되게 말했더니 옆집 사람들은 자기들도 노력하고 있다고, 벽이 얇다고 하소연을 하더란다. 다니엘은 벽은 문제가 아니라고, 문제는 당신들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경찰을 부를 거라고도 했다-지금 시국에 소음 문제 때문에 경찰이 와주는지는 모른다-. 다니엘은 이날 너무 화가 나서 또 새벽에 우당탕거리면 집주인한테-이 건물은 모두 한 법인에서 관리하는 중이라 집주인이 같다- 알리겠다고 말하는 것을 깜빡했지만 이웃들에게는 경찰로 충분했던 모양인지 그 후로도 친구들을 불러 몇 시간 동안 창작 랩을 반복하여 피로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대부분 자정쯤에 정리되고 있다. 벽이 얇은 건 우리도 잘 알기 때문에 청소기도 낮에만 돌리고 주말 아침에 목소리를 줄이는 등 노력을 했던 건데 자주 친구들을 불러 떠들썩하게 노는 사람들이 벽 핑계를 댈 줄은 몰랐다. 다만 이웃이 공격적으로 나온 적은 없고 나이로 보나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으로 보나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살기 시작한 스무 살 같아 보여서 우리도 심성이 나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보통 누워서 5분 컷으로 곯아떨어지는 내가 이 사람들 때문에 며칠이나 두 시간씩 잠을 설쳤으니 귀마개 없이는 못 자는 다니엘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나도 이들이 밉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 어딘지 어수룩하면서 그럭저럭 착한 동네 애들 같은 느낌이지만 이들의 시민의식 고양과 나의 삶의 질 향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아무튼 프랑스에서 이웃과 소음 관련 분쟁이 생기면 17번으로 경찰 신고, 혹은 집주인이 같을 시 집주인에게 항의하는 것을 기억해두시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니엘이 8년간 살았던 이전 아파트 아래층에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슬프게도 라디오를 최대 볼륨으로 틀어 듣는 것이었고, 할머니께서는 연로하여 아침잠이 없었기 때문에 주말마다 5-6시에 쩌렁쩌렁하게 라디오를 틀어 듣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같은 층 이웃들은 별로 항의하지 않았고, 가끔 다니엘이 항의하러 가면 할머니는 '나를 좀 내버려 둬요, 내 삶을 살게 내버려 둬요'라고 했다. 늘 피해를 보는 것은 다니엘인데 어째 본인이 나쁜놈처럼 느껴지는 상황에 다니엘은 신물을 느꼈다. 이사를 오면 그런 스트레스와도 멀어질 거라 기대를 했었는데 하필 바로 옆집이 래퍼 꿈나무 합숙소였을 줄이야.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되길 바란다.


락다운의 좋은 친구 (둘다 맛있습니다 추천)
심통난 고영이
왜저러고 있는지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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