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을 향한 열정

쓸데없는 창의력까지

by 체리

새로 이사 온 집은 햇살이 들지 않는다. 건물 구조 때문이다. U자형이라고 해야 하나, 건물과 건물이 마주 보고 있어 바깥쪽을 향하는 방향의 집들은 햇살을 볼 수 있지만 우리 집은 2층인데 7층 건물이 바로 앞에 버티고 있으니 위층에 있는 집들이 창문에서 창문으로 햇살을 반사시켜 전달해 주지 않는 한 자연적으로 해가 드는 일은 없다. 통행 제한 이전에는 '어차피 나가면 햇살 볼 수 있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했으나 격리 이후로는 햇살이 많이 그리워졌다(비타민 D도 샀고). 우리 집 창문에서 위쪽을 올려다보면 딱 건물 모양대로 오려진 하늘을 볼 수 있는데 적어도 5층부터 7층까지는 문제없이 해가 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한 번은 '다른 층에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까?'라는 이야기를 다니엘과 했었는데 다니엘은 해가 잘 드니 다른 층이 더 나았을 거라는 입장이었고, 나는 반대였다. 우리 동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엘리베이터에 갇힌 이웃을 몇 번이나 봤기 때문이다(이사한 지 5개월이 되어 간다). 게다가 엘리베이터가 별로 빠르지도 않아 기다리는 동안 혈압이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직접 이사를 했기 때문에 몇 번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긴 했지만 이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밖이 소란해서 나가본 다니엘이 '누가 갇혀서 이웃들이 사람 부르러 갔어'라고 하는 걸 듣고 나자 어서(엘리베이터 쓸 일 없게) 이사를 마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긴 겨울이 지나 진짜 봄이 오면서 사람들의 경계가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아직 마스크 쓰는 사람은 많은 편이지만 장을 보러 나가면 아무리 봐도 경찰에 잡히면 벌금을 물 것 같은(스케이트보드를 타러 나왔거나, 잘 차려입고 데이트를 나온 게 뻔하거나, 목적지 없이 나와 해바라기를 하려고 길가에 앉아있는 등) 사람들이 2주 전에 비해 많아졌다. 그래도 우리 동네는 주거지역이라 경찰을 본 적은 없다. 아마 번화가만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한다(번화가라고 해봐야 열은 가게도 없을 테니 그것도 좀 이상하긴 하다). 다니엘은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짜증을 내는데 나도 그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만 심정만이라면 이해가 간다. 햇살이 이렇게나 좋으니 말이다. 겨울엔 햇살 보기도 힘들고. 나와 다니엘도 식료품을 이고 지며 집에 가는 길에 가능한 한 천천히 걸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마스크 너머지만 바깥공기에 산들바람이 늘 짜릿하니 말이다.


이런 매일이다 보니 요즘은 1. 집에 해가 들고 2. 해가 드는 방향에 발코니가 있는 사람들이 매우 부럽다. 장을 보다 보면 근처 아파트 발코니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우리 집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보니... 매번 아련한 시선을 던지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지 다들 평소 같았다면 안 했을 짓까지 해가며 조금이라도 더 햇살을 쬐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아파트는 U자형의 건물이고, 폭주족의 난입으로 인한 수면 부족을 방지하고자 입구에는 관리실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 있다. 결국 아파트 문이 바로 거리로 통하는 게 아니다 보니 벌금 물 걱정은 덜 해도 되는 것인데 그런 점을 이용하여 아파트 부지 내에서 피크닉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마스크 없이! 피크닉까진 아니어도 자기 집 창틀에 걸터앉거나 누워 해바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매우 흔하고, 아파트 문 앞 계단에 앉아 몇 시간이고 햇살을 쬐는 사람들도 많다. 얼마 전에 슈퍼를 가다가 본 화단의 꽃양귀비들이 모두 해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봄(이라기엔 거의 여름) 기운에 기뻐 날뛰는 건 인간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1층에 사는 이웃집 고양이까지 열린 창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마스크 안에 맺힌 습기가 땀과 섞여드는 계절이 왔다. 정부는 모든 가구에 면 마스크 보급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면 마스크 이용 수칙을 지킬 거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당장 쓰고 다니는 일회용 마스크도 담배타임마다 벗어던졌다가 쓰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이니 말이다. 부디 무사하게 겨울을 맞을 수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도 세상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오지 않겠지만.


길쭉한 고영
집근처에서 발견한 또다른 화단
정말 이상하게 앉아있는 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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