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이 신경 쓰이지 않을 때

점점 더 나만의 사람이 된다

by 체리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동안 사람들이 조를 이루어 간단한 시술을 받으러 가거나 병원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우리 엄마도 종종 피부과에 다녀오셨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부정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래도 이런 환경에서 한두 번씩 '나도 팔자주름에 뭘 좀 맞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이 팔자주름을 꽤 오래 신경 썼기 때문이다. 화장을 한 후에도 내 눈에는 잘 보이고 말이다. 그런데 여태 맞지 않은 건 단순히 주사가 무서워서다. 특히 얼굴에 맞는다고 생각하면 약간 오금이 저린다. 그런데 프랑스에 와서 1년, 또 2년이 지나면서 나도 나이를 먹어 약간 주름이 깊어졌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석회물 때문인가? 아니면 건조해서 그런가?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긴 하지만 한국 살던 때처럼 뭔가에 대한 두려움에 떠밀려 '안되겠다, 뭘 해야겠다.', '나도 내일 친구 따라 피부과 가봐야 되나' 같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때 내가 두려워하던 것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언젠가 만나게 될 상상 속 데이트 상대의 비판 섞인 말, 혹은 더 이상 자신을 특별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어떤 상실이었다.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와서 다니엘한테 말했었다. '올해 한국에 가면 나도 이 주름에 뭘 좀 맞아야 할까 봐.' 프랑스야 한국 피부과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접근 가능한 가격에 해주지 않으니 (피부과는 정말 질병을 고쳐주기만 한다) 다니엘은 뭘 맞느냐고 물어봤고, 뭐시기 필러나 뭐시기 히알루론산 같은 거라고 했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붙들고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아니야!! 이건 주름이 아니라 얼굴 모양(?)이야! 이거는 노화의 증거가 아니라 그냥 표정 지으면서 생긴 거야. 자연스러운 거야."

다니엘이 말했다. 사실 지금도 이 말에 대한 내 생각은 좀 다르지만 ...다니엘이 이렇게 말해주니 또 귀가 팔랑거리면서 어, 그런가? 싶어진 것은 사실이다. 다니엘은 네 몸이니까 네 마음대로 해야겠지만 본인은 진심으로 그런 걸 맞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무서워하던 그 시선을 이 남자가 갖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받아서 그런가? 다니엘이 예쁘다고 해주면 정말 그런 것도 같고, 내가 이렇게 귀가 얇았었나 싶다.

신경 쓰이는 주름은 팔자주름뿐이 아니었다. 우리 집의 목주름은 대대로 유전된 것인데, 한국에 이런 말이 유명하지 않던가. 여자 나이를 보려면 목 주름을 보라는 그거. 이 말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굴까. 그 때문에 나는 대학에서 만난 어떤 선배에게 '너 목이 왜 그러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무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어려서부터 약간 망상벽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는 거울을 보면서 '나는 전생에 비극적인 운명을 겪었기 때문에 현생에 이런 자국이 남은 게야..'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도 했고 옛날부터 초커를 좋아해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내 목을 보면 초커처럼 보인다고 좀 좋아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춘기는 무난하게 넘겼는데 20대 진입 이후로는 여자 나이 목 주름 어쩌고 하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다 보니 점점 신경이 쓰였다. 유전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가 뭘 어떻게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 목을 보면 매끈매끈해서 부러웠다. 다니엘을 만나면서 한 번이라도 목주름이 어떻네 하는 얘기를 들었다면 신경이 쓰였을 것 같은데 한 번도 그런 일 없이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여기 와서 겪는 어이없는 일도 가끔 있지만-주로 인종에 관한- 날더러 꺾였네 뭐네 주름이 어떠네 나도 이제 갔네 하는 유해한 시선에 노출될 일이 현저하게 줄다 보니 외모에 대해 받던 스트레스와 막연한 공포가 아주 많이 줄었다. 하긴 피부색 노랗다고 허옇게 뜬 눈으로 쳐다보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좋은 점이라도 있어야지.

입고 싶은 옷을 눈치 보지 않고 입는다. 크림 정도는 발라두지만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주름을 없애야지 같은 생각은 안 들게 되었다. 글로 써두면 간단한데 그것만으로 삶이 아주 윤택해졌다. 인종 차별을 감안하면 전체적인 삶의 질은 프랑스의 삶이 더 낮은 거 아닌가 싶은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인종 차별이 매일 있는 일도 아니라서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트릴 정도는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에 가면 가는 대로 다니엘과 함께인 걸 보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나 여자라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에 완벽한 곳이 어디있나 싶다.

그래도 더는 주름이 신경 쓰이지 않아서, 다니엘이 내 공포에 한 마디를 보태는 사람이 아니어서. 막연했던 공포들이 매일 옅어지고 있어서. 체류증 갱신에 별별 서류를 다 그러모으면서도 여기 생활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 이러고 자는지 모르겠는 아이
남의 집 고양이
세탁방 가면서 세제를 흘리고 간 다니엘 (털은 고양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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