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기란 ..
우리가 10분거리에 있는 예전 아파트에 살던 시절 우리 동에 꼬마 하나가 살았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내가 먼저 안녕~하고 인사를 했는데 그 애는 늘 새침하게 '안뇽' 하고 지나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늘 아이의 뒤를 따라 올라오는 아이의 어머니와 더 인사다운 인사를 나눴었다. 그런데 다니엘이 가끔씩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아이는 다니엘을 무척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는 부끄러운 듯이 훽 지나가버리면서 다니엘에게는 이것저것 말을 거는 게 아주 귀여웠지만 불행히도 직접 본 적은 없다. 마침 꼬맹이의 이야기가 딱 한 화분을 하기에 적당할 만큼 쌓여서 노트북을 열었다.
이사가 결정된 뒤에도 우리는 몇주를 더 이전 집에서 살았다. 10분 거리이니 만큼 이사는 직접 해결하기로 했었고, 가구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어서 못할 짓은 아니었다. 아직 우리 짐차가 길거리에서 분해되지 않았을 적에 다니엘은 5층에 있는 집에서 박스를 하나씩 내려 짐차에 싣고 있었다. 그때 꼬마가 나타나 다니엘에게 물었단다. 나는 이 만남이 약간 어린왕자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다. 꼬마는 '뭐 해?' 라고 물었고, 다니엘은 '박스 실어, 나 이사가거든.' 이라고 했다. 꼬마는 그 후로도 한참을 다니엘이 박스 싣는 모습을 구경했다고 한다. 내심 짐차에 타고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타고 싶었을 것 같다. 아무튼 .. 이 두 친구의 만남은 여기에서 끝나는 듯 하였으나 우리 이사는 몇주에 걸쳐 진행된 만큼 꼬마와 다니엘은 한번 더 마주쳤다. 이때는 짐차가 완파된 이후였기 때문에 다니엘은 짐을 배낭과 큰 타포린 가방에 나눠담아 지고 있었다. 꼬마가 '대박이네, 아직도 이사 안 갔어?'라고 물었단다. 그래서 다니엘은 '응, 천천히 하는 중이야.' 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렇게 이사를 왔고, 그 후로도 한 2주동안 내가 두 집을 오고가며 짐을 나르고 청소를 한 후 부동산에 이전 집 열쇠를 넘겼다. 그래서 더 이상 다니엘과 꼬마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이전 화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이사온 곳에서 적당한 세탁방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옛날 세탁방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건조기가 다 돌기를 기다리던 다니엘 앞에 꼬마가 나타났단다. 꼬마는 이상하다는 듯이 '뭐야 이사갔다며? 안 간거야?'라고 물었다. 다니엘은 켕기는 것도 없는데 왠지 작아진 기분으로 '어 이사가긴 했는데 가까워. 10분 거리인데 세탁방이 괜찮은 데가 없어서 그냥 여기로 오는거야.' 라고 했다. 이하 꼬마는 꼬, 다니엘은 다로 표시했다. 정말 귀여운 대화였다. 꼬마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한 여덟 아홉살 정도 된 것처럼 보인다.
꼬: 혹시 90년대 노래 들어?
다: 아니, 왜? 너는 듣니?
꼬: 아니, 90년대 노래 너무 지루해.. 10초만 들어도 탈출할 수밖에 없어.
다: 어 그래...
(침묵)
꼬: 이것봐라? (한창 탈수하느라 미친듯이 도는 세탁기에 손을 갖다댐) 으드드드드드드드... (선풍기 앞에서 말하는 것같은 소리를 냄)
다: ...
(침묵)
꼬: 근데 왜 이사했어?
다: 어 집이 너무 작아서
꼬: 그래 16제곱미터 너무 작아
다: ??? 어떻게 알어?
꼬: 부동산 사람들이 말하는 거 들었어
다: 아 그래..
꼬: (농담이었음) 검은 고양이 키운다며? 걔는 놓고 갔어 데리고 갔어?
다: 데리고 갔어.
(침묵)
꼬: 어 근데 나 73제곱미터짜리 집에 사는 친구 있다?
다: 와 대단하네 그집에 몇 명 사는데?
꼬: 두 명.
다: 오
꼬: 근데 그 친구 아버지 안 계셔
다: ...
(침묵)
다: 어제부터 주말인데 어때 기분좋니?
꼬: 음~~ 보통. 어제 트램펄린 타러 갔거든. 근데 이거 탈 땐 얼굴로 착지하지 않게 조심해야돼.
다: 왜? 트램펄린인데, 별로 안 위험해. 어차피 튀어오를텐데 뭐.
꼬: (매우 심각) 아냐 얼굴로 착지하면 얼굴 위로 몸이 꽂히잖아 위험해.
다: ...
꼬: 내 친구한테 있었던 일이야.
그 후 꼬마는 다니엘과 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어머니를 설득하여 세탁방에 더 머물려 했지만 어머니는 들어주지 않았고, 어차피 다니엘도 건조기가 다 돌아간 상황이라 대충 다음주에 보자고 했단다. 꼬마는 '어, 근데 나 다음주에 브르타뉴 가야돼서 파리에 없어.'라고 대답했다. 나는 다니엘에게 '꼬맹이한테 브르타뉴 콜라(Breizh라는 이름의 브르타뉴 지역 브랜드) 먹어보라고 했어? 라고 물었지만 다니엘은 그런 말 안 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전 아파트에 사는 동안 그 꼬마가 이렇게 대화를 좋아하는 친구인지 몰랐다. 게다가 이 둘이 대화하는 게 이렇게 웃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부디 둘이 자주 마주쳐서 속편을 쓰는 날이 오면 좋겠다.
다니엘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약간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라 스스로도 자신이 길을 걷고 있으면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아이들한테는 참 인기가 좋다. 지난주에도 다니엘이랑 장을 봐서 돌아오는데 앞집에 사는 꼬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그 댁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다니엘을 가리키며 '저 큰 건 뭐야?(C'est quoi le grand?)' 라고 물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저거는 아저씨야(C'est un monsieur)'라고 하셨고 한동안 '저 큰 건 뭐야'가 우리집 유행어였다-다니엘은 크다는 말 처음 들었다고 좋아했다-. 다섯살이 되어서야 다니엘을 만난 다니엘 조카도 다니엘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았고 말이다. 잘 안 웃는 편인 갓난아이들도 다니엘을 보고 방긋방긋 잘 웃어서 부모를 놀래키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대체 왜일까.. 정신 연령이 비슷해서..?
파리 생활은 특히 행정 면에서 있는 대로 사람 성질을 버려놓지만 가끔씩 생기는 이런 귀여운 일들 덕분에 숨통도 트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기운을 얻는다. 역시 세상을 구하는 것은 귀여움이다.
- 다행히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체류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걱정은 해결이 되었네요. 경시청 관련 업무는 평소에도 쉽지 않았는데 코로나라는 변수가 겹치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수라장이 완성되었네요 .. 평소라면 2-3주 걸렸을 체류증 수령에 2달이 걸리고, 평소에도 1년 6개월까지 걸리는 운전면허 교환은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운전면허는 그냥 잊고 사는 수밖에요 ㅠㅠ 그래도 체류증 하나 해결된 게 어디인가 합니다. 다들 안전하고 건강하게 7월을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