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좋더라

좋으면서 안 좋은척 하지 말아야지

by 체리

예로부터 글을 쓰는 일은 극소수의 성공 사례를 제외하면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취미 정도로, 소극적인 글쓰기를 이어나가게 된 것마저도 어머니는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지금은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학생 시절에는-. 나 또한 이 일이 얼마나 돈이 안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글쓰기에 쏟는 노력은 '너무 좋다고 덤비다가 제 풀에 고꾸라지지 않을 정도로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글쓰기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래 쓰고 싶어서 그렇다. 평생 쓸 것을 알고 있어서 더욱 페이스를 잘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체력이나 시간의 한계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매일 쓰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글쓰기가 무서워질까봐, 좋아하는 건 아껴 먹는 심정으로 쓴다. 굵지는 않아도 길게 사랑하려고.


다니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런 돈 안 되는 창작의 취미를 이해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상대가 '결혼하면 어련히 그만두겠지'나 '쟤가 아직 안 바빠서 저럴 시간이 나지' 정도로 내 취미를 안일하게 생각한다는 걸 나중에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 무서워서 처음부터 이해받지 않으려고 했었다. 다니엘을 만나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꽤 심한 회피형 인간이었다. 그냥 당시에 만나던 게 누구든 덮어놓고 이해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쓰는 글을 설명하는 것에 부끄러움도 느꼈다.


다니엘이라고 해서 내가 쓰는 모든 글을 알지는 못한다. 실제로 내게 어려운 주제, 아직도 소화 되지 않은 과거의 경험을 꾸역꾸역 씹어가면서 쓰던 걸 삼개월이 지나서야 토로하기도 했으니까. 그때 왜 미리 말을 안했느냐고 답답해하기는 했지만 다니엘은 내 글쓰기를 평생의 파트너로 이해해 주고, 나는 이제 무엇에 관해 글을 쓰더라도 다니엘이 싫어하거나 반대하지 않을 것을 믿으니까 숨어 쓰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공모전에 실패했을 때 주변이 보일 반응에 대한 두려움이나 잔소리 회피 등의 이유로 숨어서 원고를 완성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다니엘은 채근도 하지 않고, 결과가 어떻게 나왔다는 것에 크게 실망도 하지 않고 약간 매니저 같은 현실적인 자세로 내 글쓰기를 바라봐 주는 거다. 내가 글쓰기는 지속하고 싶은데 집안일이 부쩍 많아져서 힘겨워할 때는 분량을 줄이거나 잠시 쉬라고 채근하기도 하고, 집안일을 더 같이 해주려고 하고, 공모전에 떨어졌다면 당선된 원고들은 어떤지 내게 물어보고(전부 다 한국 공모전이었으니까 다니엘은 못 읽어서). 널 떨어트리다니 안목 참 없다고 위로도 해주고. 이런 소재는 어떠냐고 직장에서 했던 얘기를 가져오기도 하고.


얼마 전 감사하게도 좋은 제안이 있어 인쇄매체에 글을 쓸 수 있었다. 다니엘은 소식을 듣고 집에 와서 꼭 안아주더니 저녁식사 후에는 '체리야, 너 글을 더 쓰고 싶지 않아?' 라고 물었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 지금의 빈도가 좋다고 대답했다. 머릿속으로는 다니엘이 한 말이 자꾸 울렸다. 지금까지 이제 그만 쓰는 건 어떠냐고 했던 사람이라면 있었는데-그것도 나를 위한 말이었다는 것은 이해한다-, 더 쓰고 싶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랑 같이 사는 지금이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 좋은 소식 이후 다니엘 친구 마티유가 집에 놀러왔었다. 마티유에게 내 칼럼의 PDF 파일을 보여주는 다니엘을 보면서 약간 주책스럽지만 뭉클했다. 나는 가족한테도 내 공연을 보러 오라거나 내 글이 어디에 났다거나,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그런 거겠지. 우린 그런 가족은 아니었으니까. 다니엘은 아직 번역도 안 해준 내 한글 기사 파일을 마티유에게 보여주고, 마티유는 맥주를 마시면서 다른 매체에도 투고해 보라고 했다. '내 편'은 되게 촌스러운 개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니엘이 그러는 게 사랑스럽고 참 좋았다.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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