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구들의 행진

부끄러운 실수들

by 체리

* 핑구라는 표현의 유래는 '격리 기간 사고 사례집' 편에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면 핑구라고 부르고 있다.


프랑스에 와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참 많은 실수를 했다. 몇 개는 다시 생각하기도 몸서리쳐질 만큼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소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나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이 없어질 수 있다면 나의 쪽팔린 실수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지만....


- RDC

이 얘기를 쓴다고 했을 때 다니엘은 정말 그래야겠어?라고 물었다. 그러엄... 나는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으니까..! RDC는 Rez de chaussee(0층 = 한국 1층)의 줄임말이다. 작년 여름에 프랑스가 너무 더웠다는 내용의 만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어떤 독자님이 '저도 RDC(1층)에 산다'라고 해주셨다. 나는 RDC....RDC가 뭐지...라고 생각하다가 아 .. 콩고인가(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지금 생각하면 0층인 게 당연한데 그때는 진짜 이상하게도 콩고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하긴 대부분의 실수가 이런 사고의 흐름을 타고 벌어진다.. 그래서 아 실례지만 콩고 어데 사십니꺼..?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어휴 ... 어휴 .. 아무튼 그분은 많이 웃기셨겠지만 상냥하게도 너무 웃지는 않고 RDC요..그러니까 1층에 살아요!라고 해주셨다. 나는 매우 민망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그리고 며칠 정도 부끄러워하다가 '만약 재취업을 했는데 회사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훨씬 더 부끄러웠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니엘은 퇴근한 후 내 얘기를 듣더니 미친 듯이 웃었다. 정신을 좀 차린 후에는 '나한테 먼저 물어보지 그랬어'라고 했다. 당시에는 공부 좀 하자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 내가 유의미하게 공부를 열심히 했냐면 그렇지는 않다.


-진상 입주자가 되다

프랑스에서는 도어록을 잘 쓰지 않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쇠로 열고 잠근다. 그래서 나는 라디오 스타에 나온 최민용 씨를 보면서 '나도 열쇠를 배우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안에서도 열쇠로 잠근다는 게 좀 번거롭긴 하지만 거기까지는 쓸만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안이나 바깥 중 한 쪽에 열쇠가 꽂혀 있는 상태로 반대쪽에서 문을 열거나 잠그려고 하면 안 된다. 이런 경우 운이 좋게 옆집이랑 친해서 발코니를 타고 자기 집으로 들어갈 수 있거나 집안에 사람이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아니라면 열쇠공을 불러야 한다. 나는 예전 아파트에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 쪽에 열쇠를 꽂아놓고 밖에서 잠그려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안에는 고양이밖에 없었고, 심지어 창문까지 다 잠근 상태였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계단 쪽 창문을 타고 집 발코니로 들어간다 해도 유리 문을 부수지 않는 이상-그전에 누가 경찰을 부르지 않으면 다행이고- 집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당시의 나는 안 쪽에 열쇠가 꽂혀 있다는 걸 까맣게 잊었기 때문에 집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열쇠가 좀 뻑뻑한가? 20분 남짓 우리 집 문을 열려고 노력하는 동안 혹시 도둑인가 싶어 문에 달린 구멍으로 내다보는 이웃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결국 관리사무소에 가서 부탁을 했는데 어찌어찌해서 문을 열어주신 아저씨들이 '마담... 안에 열쇠 있잖아요.. 이러니까 안 열리지..'라고 말하며 나를 보는 눈빛이라니...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땅밑으로 꺼지고 싶었다. 결국 나는 새 집 근처에서 평점이 좋은 베이커리를 찾아가 에클레어를 잔뜩 산 후 관리 사무소에 가져갔다. 이 수치스러운 기억 덕분에 지금도 꼭 문을 닫기 전에 손을 넣어 안에 꽂혀 있는 열쇠가 없는지 확인한다. 이런 기억.. 더는 필요 없는데.. 지금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산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더 분하다.


- 욕쟁이 한국인이 되다

나는 멍하니 있을 때 누가 건드리면 기계적으로 메르시(고맙습니다)라고 하는 알 수 없는 버그가 있다. 미안합니다(빠흐동)도 아니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내가 자주 가는 곳이 주로 슈퍼나 정육점이라서 빠흐동보다는 메르시의 사용빈도가 많기 때문으로 추측하는 중이다. 나는 스스로가 이것 때문에 바보같아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현상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는 메르씨에서 씨만 떼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누가 나를 치면 메흑...이라고 하게 된다는 뜻이다. 도입부가 메흑..인 프랑스어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는 Merci(ㄳ)와 Merde(ㅅㅂ)가 있다. 그러니까... 차라리 메르시머신이 되어 스스로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시절이 나았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나를 쳤는데 내가 메흑...이라고 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은 내가 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테니까. 때는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는 두아니에 루소의 작품을 보러 작은 미술관에 갔었는데 어떤 청년이 나를 살짝 쳐서 나 또한 반사적으로 메흑....이라고 했는데 청년이 내가 욕을 하는 줄 알고 민망한 반, 의아함 반이 섞인 얼굴로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하루 빨리 이 짓을 그만두고 싶다.


- 그 프랑스어는 틀렸다.

옛날에 내가 바게트를 사러 갔을 때 앙 바게트(바게트 하나. 프랑스어의 모든 사물에는 성별이 있어서 관사도 그에 맞는 것을 붙여야 한다. 남성형은 앙, 여성형은 윈)를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윈! 바게트라고 고쳐줬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헷갈리면 무조건 앙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그저께 저녁거리를 사러 이탈리아 음식점에 갔는데 앙 라자냐를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윈! 라자냐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는 아저씨도 나에게 음식을 설명해 주면서 문어 보고 뿔뽀(문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라고 했다. 예전에 누가 고쳐주는 것이 고맙고 민망했는데 요즘은 고맙기만 하고 그다지 민망하지 않다.


- 극단적인 실수

내 친구 라라가 우리집 고양이보고 귀엽다고 할 때 미뇽(Mignon)이 아니라 슈(Chou)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었다. 나는 이것을 기억해두고 다니엘에게 귀엽다고 말하기 위해 써먹었는데 다니엘의 표정이 너무 이상했다. 너 뭐라고? 너 다시 말해봐. 다니엘이 말하길래 나는 아니 너 귀엽다고~ 하면서 원래 말해야 했을 테 슈(T'es chou)가 아닌 테 쇼브(T'es chauve)를 외쳤다. 이후 내가 무슨 영문으로 한 말인지 알아낸 다니엘은 이마를 싸매면서 "슈라는 표현은 잘 안 쓰니까 그냥 미뇽이라고 하면 되고 니가 말한 건 내가 대머리라는 뜻이야" 라고 했다.


- 너의 출신지

다니엘은 믈렁(Melun- 파리에서 1시간)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다니엘의 서류에서 여러 번 이 이름을 본 나는 한국어 '물렁물렁'을 떠올리며 이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 작년에 오베르뉴를 여행 중이던 우리는 Moulin(풍차)까지 5km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와! 너 태어난 도시까지 5km 이래!! 이랬다가 또 미친 듯이 웃는 다니엘을 보며 멀뚱히 서있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까 묻고 싶어진다. 다니엘, 솔직히 나랑 사니까 재미있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