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찾는 책임감
매일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안 먹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채소를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내 세상 속에 비건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도 다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나 비건 친구 앞에서 먹어도 되는 음식의 종류에 대해 생각을 했지 함께 채식을 시작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매년 대두되고, 이미 늦었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지만 얼마 전까지는 굳건하게 버틸 마음 만만이었다.
'내가 할매가 되면.. 고기를 먹는다고요? 웩 역겨워.. 이런 말을 하는 게 당연한 사회 분위기가 될지도 몰라.. 나는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기를 먹다가 고기 섭취가 법적으로 금지되면 그때에 고기를 그만 먹어야지'라고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니엘이 채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는 다니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꿀을 먹는 사람은 진짜 비건이 아니라고 핀잔을 준대.' 나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토종벌 키우는 법을 검색하고 벌통이 한 통에 얼마인지 알고 싶었을 만큼 꿀을 좋아하는지라-벌을 엄청 무서워하면서도-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짜증이 확 났다. 꿀에 대한 사랑 때문에도 그렇지만 신념으로 묶인 집단에서 나타나는 배척이 싫다는 마음에서였다. 각자 자기가 믿는 대로 먹으면 그만이지 진짜 비건이 아니라고 욕을 하는 건 뭐람. 나는 비건도 아니면서 약간 짜증이 났다. 로마 시대 때부터 천연 항균제로 이용된 벌꿀인데..라고 속으로 중얼중얼 거렸다-어떤 맥락에서 비건의 벌꿀 섭취가 비판을 받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냥 벌꿀을 변호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것 뿐이었다-.
우리가 채식에 관한 이야기를 더 깊이 한 것은 그 후였다. 다니엘은 동물들이 너무 불쌍하니까 고기 섭취를 줄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다니엘도 요리를 하지만 요즘 요리를 맡아서 하는 건 나였다. 그리고 우리가 고기를 많이 먹는 편도 아니다. 그것도 주로 국이나 카레 같은 일품요리다. 나는 지금도 먹고 싶은 걸 다 먹지 못하는데, 집에서 하는 요리까지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채식을 생각하면서 더 제약을 받아야 하나? 이번에 짜증이 난 것은 이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플라스틱을 버릴 때 씻어서 말려 버리려고 하면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핀잔을 주면서 모아 버린 건 자기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측면에서 채식에 접근한 나는 지금 다니엘 말이랑은 상관없는 부분까지 곱씹으면서 짜증을 키웠다. 그날 나는 방어적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 사람인데, 프랑스에 온 게 내 선택이지만 지금도 달마다 먹고 싶은 거 생각하면서 끙끙대는 날이 얼마나 많다고.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을 더 나간다? 생각만 해도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니엘은 알겠다고 했고. 나 역시 다니엘이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약간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날 것 같았지만 다니엘이 던진 공은 자꾸만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다니엘이 맞는다는 걸 알긴 알았으니까. 비록 내 근거는 동물권보다는 탄소 배출 쪽이지만. 나는 며칠 끙끙대다가
'소고기를 먹지 말까 생각을 하는 중이야(분명히 소고기라고 했음)'라고 했다. 다니엘은 깜찍 놀랐는데, 곧 그날 저녁에 먹기로 약속한 돼지갈비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럼 예약도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아니 나는 소고기를 얘기한 건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육식주의자에게 소고기부터 점진적으로 확대해볼까?라는 바람이 얼마나 의미 있는 시작인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는 채식에 대해 완전히 다른 부분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다 2050년에 살 곳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생각이었고, 다니엘은 동물권을 존중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고기를 안 먹는 건 어떠냐는 입장이었다. 나는 어차피 1-2년에 한두 번은 12시간짜리 비행으로 집에 다녀와야 하는 입장에 고기를 안 먹고 플라스틱을 전처럼 버리는 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사실 탄소를 신경 쓴다면 소도 버리고 돼지도 버려야 하는데. 나는 정말로 이 고기 줄이기 챌린지를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금방 답을 얻기 힘든 이야기를 이어 하다가 밥을 먹었다. 머릿속으로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요리들이 마구 스쳐 지나갔다.
나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다니엘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면서도 더 나은 길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주제를 던져 준다. 용기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 나름의 상냥함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 번 더 실감하는 대화였다. 다니엘은 내 안의 탄소 저감 궐기 대회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나중에 알려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