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많이 미안하다
비위가 약하신 분은 이번 화를 보시면 안 된다. 무엇보다 썩은 음식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고 거기에 트라우마가 있는 분은 바로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시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다니엘이 싫어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강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건 바로 썩은 음식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잊어버리기를 잘 해서 지금까지 많은 음식을 충격적인 비주얼로 썩혔다. 같이 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다니엘은 내가 냉장고 안에 오래된 음식을 내버려 두는 걸 정말 싫어했다. 그 중엔 내가 산 것도, 다니엘이 산 것도 있었는데 나는 썩지만 않았다면 유통기한이 며칠 지나도 내버려두는 주의여서 처음엔 이것 때문에 싸우기도 했다. 다니엘이 신경질적으로 오래된 샐러드 같은 걸 퍽퍽 버릴 때면 야!! 내가 니 재고 관리자야? 그거 발견한 사람이 버리면 되는 거지 썩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짜증 낼 일이냐고! 라고 생각을 했는데 올해가 되어서야 다니엘이 왜 그렇게 썩은 음식이나 몇 시간이라도 유통기한을 넘긴 음식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취향이 그래서라고 생각했던 거다.
다니엘의 부모님도 나처럼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것을 신경쓰시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린 다니엘이 건더기가 뜬 우유를 마시게 된 걸 보면 말이다. 그 외에도 몇 번인가 냉장고 속 지뢰를 밟고 난 다니엘 어린이는 결심했다. 자신의 공간이 생긴다면 절대 이러한 폭거를 용납하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성장한 다니엘 어린이는 나같은 사람을 만나고 마는데..... 나는 냉장고 속에서 건더기가 뜬 우유를 꺼내 마시는 것보다 더 나쁜 기억을 그에게 선사하고 말았다.
때는 여름이었다. 나는 직장 근처에서 발견한 맛있는 정육점에서 자주 저녁거리를 사왔었다. 얼마 전에 사온 것은 통치킨이었고 말이다. 치킨이 건조해서 다 먹지는 못하고 남겼는데 며칠 후부터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대청소를 했고 다니엘은 여기저기 수색을 했는데 냄새의 발원지는 찾지를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오븐을 쓰는 요리를 해야 했을 때...우리는, 아니 다니엘은 아주 충격적인 것과 마주하게 된다. 수많은 새생명의 젖줄이 된 썩은 닭을.....다니엘은 비명을 질렀고 나는 부엌에 있다가 뭐여!! 하면서 뛰쳐나왔지만 다니엘은 비닐봉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닭'의 실체를 본 적이 없다. 다니엘은 구토를 참는 비장한 얼굴로 닭을 싸더니 버리고 돌아왔다. 다니엘이 얼마나 썩은 음식을 싫어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너무 미안했다.
이후 또 우리 집에서 썩은내가 난 적이 있다. 원인은 내가 남은 감자 한 알이 프라이팬 뒤에 있는 줄을 모르고 방치하다가 감자가 석유를 뿜어내는 기적을 목도할 때까지 일상 생활을 이어나갔기 때문이고 ... 이때도 다니엘은 많이 화내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2-3주의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후 집에 돌아온 나는 회사에 가는 다니엘을 배웅하고 돌아와 완전히 썩어버린 알감자 한봉지를 발견한다 ..이것을 먼저 발견한 것이 다니엘이었다면 그는 더 이상 나의 폭거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을 것이다. 나는 내게 게으름을 줬지만 또 내가 이 역겨운 감자를 먼저 발견하게 해준 절대적 존재에게 감사하며 바로 감자를 내다버렸다. 천만다행으로 이 감자 봉지는 밀봉되어있었고(내가 발견했을 때는 빵빵했고), 나는 감자가 썩으면 똥물을 배출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봉투의 일부는 투명했고 내용물이 무슨 정화조 같았다.
지금까지는 백프로 내 잘못이지만 마지막 것은 완전히 내 잘못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다. 몇 달 전 나는 냉동실에서 소고기를 꺼내 굴소스를 넣고 볶은 적이 있다. 우리는 고기를 오래 냉동하는 편이 아니고, 냉동한지 한 달정도 된 고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평범하게 그냥, 남들 하듯 가게에서 사오자 마자 냉동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기가 익으면 익을수록 여름 캠프장 이동식 화장실 냄새가 나는 것이다. 나는 고기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기 때문에 남의 집에서 들어온 냄새일 거라고 애써 자신을 세뇌했다. 하지만 고기가 좀 식고 나서 팬에 얼굴을 갖다대어 냄새를 맡아도 그 암모니아 냄새가 가시지 않는 것이다... 냄새가 엄청나서 밖에 버리기 전에 이 고기만 비닐에 담에 꼭 묶은 다음에 버렸다. 이것은 완전히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다니엘이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이 또한 다니엘이 없을 때 벌어진 일이라 참 다행이다. 내가 잘 할게, 다니엘아!!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