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반송 사건

프랑스의 환장은 언제나 내 상상을 초월하지!

by 체리

이미 좀 지난 일이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분노를 담아서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학생 비자나 업무 비자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나 나의 비자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먼저 발급받은 후 프랑스에 입국하면서 프랑스 전산에 등록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 250유로(225유로였을 수도 있음, 다년 비자의 경우 더 비싸다) 정도의 비용을 내야 하고, 이놈들은 매년 이 비자 장사로 돈 벌어서 작년에 루브르 박물관을 뒤덮었던 그 흉물스러운 그래피티 설치물 같은 데다가 투자하는구나.. 같은 현자 타임이 잠시 찾아오긴 하지만 거기에 화를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 나중에 가면 화낼 일이 꼭 몇 번은 생기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비자를 등록하고 나면 이민국(OFII)에서 편지가 온다. 지난한 4차시의 시민 교육을 듣기 위한 오리엔테이션(은 그 4차시에 포함되지 않고 오리엔테이션 때 간단한 언어 시험도 본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200시간 정도의 의무 불어 교육을 이수해야 하기도 한다. 테스트 성적과 운에 따라 이보다 적게도, 많게도 이수한다.)과 간단한 신체검사를 실시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고지하는 것이다. 이 시민 교육은 옛날에는 2차시면 됐다고 하는데, 사르코지 때 지금의 형식이 완성되었다고.. 그로 인해 프랑스 정치에 관해서 아는 거라곤 드골, 미테랑, 시라크... 올랑드 불륜.. 사르코지 불륜이 전부였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대통령은 사르코지가 되었다. 작년 여름에 다니엘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화장실에 있던 잡지 표지가 사르코지였는데 그것을 보고 나니 화가 나서 거실에 있던 다니엘에게 '사르코지 잘 지낸대? 못 지내는 뉴스 있으면 꼭 좀 알려줘'라고 했다. 하긴 잘 못 지내는 사르코지가 나보다 훨씬 좋은 밥 먹고 살 테니까 별 의미는 없다.


예전에 시민 교육 2차시에서 정말 끔찍한 강사를 만났다고 한 적이 있다. 이름은 마리안이었고 그녀 자신도 이민자였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누구 사슬이 더 빛나는지 경쟁하는 노예와도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어서 수업 내내 한 공간에 있던 한국인들을 차별하는 말들을 계속했다('차별 사이로 걷기'에서 말한 적이 있다). 하필 시민 교육에서 배우는 프랑스의 상징 중 하나가 '마리안'이라는 여성이어서 나는 수업 시간 내내 이 마리안은 우주 방사능을 듬뿍 쬔, 지옥에서 온 버전의 마리안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집에 와서 '그 인간은 지 권력이 뭔지 아주 잘 알던걸'이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에 가서 (읽히지 않을) 항의 편지를 쓰거나 당일 반기를 들고나간 후 2차시를 다시 듣기 위해 예약을 잡아달라고 이민국에 메일을 쓰는 것뿐이라 참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때문에 힘들게 그녀의 방귀 같은 말들을 참아넘긴 후에 얻은 2차시 이수 확인서와 3차시 일정 안내서는 값질 수밖에 없었다. 마리안보다 더 최악인 일은 일어나기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여기가 어딘가, 프랑스다.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상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더 나쁜 상황이!


3차시 일정을 잡기 전에 이민청 건물 사람들은 나에게 물어봤었다. 다음 차시에도 통역을 원하느냐고. 당연히 그렇다고 했고, 마침 한국어로 통역되는 시간대가 있으니 그걸로 잡아주겠단다. 그래서 알았다고 했는데, 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3차시 당일에는 통역사가 오지 않았다. 바로 저번 시간에 자기들이 먼저 한국어 통역 시간을 열어주겠다면서 한국 사람들을 특정 시간에 밀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사는 '미안하지만 통역이 오지 않는 이상 댁들이 앉아있어 봐야 의미가 없으니 돌아가라'라고 했다. 이미 오전 수업을 대충 들은 후였는데도 말이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을! 별로 할 일도 없는 파리 외곽에서! 3차시까지는 거의 같은 사람들끼리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고 말도 안 해봤다 해도 얼굴 정도는 대충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교실에서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한국 사람) 뿐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사람들은 물귀신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교실에 남고 싶은 거였다. 우리는 아래와 같이 항의했지만 강사는 끝내 '니들이 지금 떠나기를 거부해서 다른 사람들의 수업까지 방해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다. 원해서 이 수업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최소한 불어를 더듬더듬하는 사람들이라도 남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했으니까)


- 영어 통역이 있는 방으로 보내기라도 해달라

-> 오늘은 영어 통역도 안 온다.


- 내 비록 더듬더듬 말하지만 듣기에는 문제가 없고 당신들 하는 행동은 정당치 않다. 우리는 소환장을 받아서 왔고 통역이 있다고 해놓고 못 구한 건 당신들 잘못이다. 이건 무책임하다

-> 그래 유감이고 집에 가라.


- (한 분은 불어를 잘 했다. 이건 그분이 한 말이다.) 내가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주겠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니냐

-> 그러면 당신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못 듣는다. 안 된다.


완전히 막무가내였다. 교실에서 쫓겨난 후에는 3차시를 다시 듣기 위해 소환장을 다시 받느라고 입구 쪽 데스크에서 직원과 말싸움을 했고, 우리 중 몇몇이 직장에 연락해 좀 더 유창한 불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을 구했지만 그 또한 통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이건 인종차별이라고 말하면서 뛰쳐나갔지만 데스크 직원은 꽤 익숙한 일인 듯 별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백수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업이 있는 상태에서 하루 온종일(보통 9시에서 오후 5시까지)을 투자해야 하는 만큼 더 막막했을 것이다. 영어로 통역을 받을 수 있는 다음 3차시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한국어 통역 날은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아슬아슬하게 통행금지 이전에 시민 교육을 모두 마칠 수 있었는데, 내가 4차시까지 모두 마친 건 올해 6월 3일의(그마저도 바로 전날에 알려줬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수업날 물어보니 다들 그랬다고.) 일이다. 오리엔테이션은 작년 9월 말이었으니까, 굉장히 오래 걸렸다. 겨우겨우 코로나라는 악재에도 체류증을 갱신하러 갈 수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해쳐 나온 후에는 내가 만약에 장기간 프랑스 밖에서 머무느라 체류증 갱신 기간을 놓치고 다시 처음부터 비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프랑스 거주 자체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통역사가 연락을 받는 것 역시 교육이 이뤄지기 바로 전날이나 심하면 당일 아침이라고. 그날 나와 같이 쫓겨난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 차시까지 잘 진행을 했을까? 코로나 때문에 지금껏 혼돈 속에 있는 체류증 예약은 다들 잘 잡았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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